2021.02.20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주말은 항상 일로 바쁘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매일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짬을 내어 읽었습니다. 오늘은 이 책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던 2부를 완독 했습니다.
1부에 일어난 '그 일' 이후에 라스콜니코프가 겪는 심리 상태를 굉장히 실감 나게 묘사하는 부분들이 인상 깊어요. 그래서 더 몰입하기 쉽고 작품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2부 과정에서 느낀 점은, 라주미힌과 같은 친구가 나에겐 있는가? 나는 라주미힌처럼 헌신적인 친구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무언가로 인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심지어 자신을 몰아세우고 가시 돋친 말을 뱉는 아픈 친구를 위해 자신의 기분이나 사정은 뒤로하고, 진심으로 간호하고 마음을 쓰는 라주미힌의 인격에 감동했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전개를 보아야 더 잘 알겠지만요.
아래에는 책의 일부분을 인용하여,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초반부는 책에 표시를 하며 읽지 않아,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훑어서 찾아가며 기록하였습니다. 사실 이 책은 특정 구절이 인상 깊다기보단, 연결된 문장들의 흐름과 주인공의 심리 묘사 등이 인상 깊습니다.
[죄와 벌](상) 중에서
-1부-
'"(마르멜라도프는 갑자기 몸을 떠는가 싶더니, 고개를 번쩍 들고 상대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온갖 공상을 했던 바로 다음 날(꼭 닷새 전의 일이오) 저녓녘에 밤도둑처럼 교묘하게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트렁크 열쇠를 훔쳐 내어, 전부 얼마였는지 기억은 못 하지만 남아 있는 대로 봉급을 몽땅 빼냈소. 자, 모두들 나를 봐주시오! 집을 나온 지 닷새째인데, 집에서는 나를 찾고 있을 거요. 직장도 끝이고, 제복은 이집트 다리 옆의 술집에 잡혀 먹고, 대신 이 옷을 얻어 입고 왔소...... 모든 게 끝장났소!"' - 40p
★ 마르멜라도프의 행동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니, 딸까지 치욕스러운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도중에 운 좋게 얻은 좋은 일자리까지 얻어놓고, 곧바로 술독에 빠지다니. 답답하고 한심했다.
'자기 방에 들어서자, 그는 그대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 잠이 든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자기 망각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만약 그때 누군가 들어왔다면, 그는 벌떡 일어나서 마구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머릿속에는 걷잡을 수 없는 상념의 조각과 파편들이 들끓고 있었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어느 하나도 붙잡을 수 없었고, 어느 하나에도 머무를 수가 없었다......' - 148p
★ 노파를 살해하고 돌아온 라스콜니코프의 정신 상태를 묘사하는 1부의 마지막 단락이다.
-2부-
'"하여튼 만일 네가 바보가 아니라면, 공연히 구두만 닳게 돌아다니느니 차라리 오늘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 앉아 있는 게 나을 거야. 이왕 이렇게 나왔으니 별 수 없잖아! 널 위해 푹신한 안락의자를 끌어 내올게, 주인집에 있으니까...... 차라도 마시면서 함께 어울리는 거야...... 그게 싫다면, 베개가 달린 긴 소파에 눕게 해 줄 테니, 어쨌든 우리 곁에 누워 있기만 하면 돼...... 조시모프도 올 거야. 올 거지, 응?" "안 가." "거, 거, 거짓말!"' - 282p
★ 친구랑 싸우고도 츤츤거리는 우리의 의로운 라주미힌씨.
''이제 됐다!' 그는 단호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신기루 따윈 없어져라, 공연한 공포도 없어져라, 환영도 없어져라......! 삶이 있지 않은가! 과연 내가 지금 살아 있지 않단 말이냐? 내 삶은 그 늙은 노파와 함께 죽지 않았다!' - 316p
★ 마르멜라도프의 죽음 이후, 무언가 깨달은 라스콜니코프. 노파를 살해한 후, 죄책감, 공포, 불안 등에 시달리다가 정신이 명료해지는 지점이다. 현재 살아있다는 것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