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 쓰고 있던 매킨토시를 개조하며 느낀 점
2011년에 구입한 iMac이 요즘 말을 듣지 않는다.
시동 걸고 좀 만지려고 하면 마우스가 멈춰 움직이지 않거나, 뭐 하나 파일을 열기가 무섭게 속도가 느려졌다.
왜지?? 수명이 다 한 거 인가?
새로 나온 iMac을 찾아봤다. 27인치 조금 괜찮은 사양에 살려면 40만 엔(400만 원 정도) 가량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집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매우 줄어들었다.
iBook이 있어서 간단한 작업이나 인터넷 조사하거나 메일 보내는 정도는 거실에 앉아있으면서, 거의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말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데스크톱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400만 원까지 줘가며 데스크톱을 새로 교체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컸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놈을 제대로 움직이게 하고 싶은데...
RAM 메모리는 몇 년 전 최대 용량으로 빵빵하게 교체해서, 손을 대려면 하드디스크이다.
요즘 HDD보다는 SSD라는 새로운 저장매체가 생겨서 엄청 빠르다 한다. 가격도 옛날보다 저렴해진 타이밍이라, SSD로 교체하기로 결심!
한 번도 iMac의 뚜껑을 열어본 적이 없던지라, 사전조사를 하며 교체할 장치와 도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드디어 재료가 다 모이고 뚜껑을 여는 그날이 왔다.
마치 사람의 심장 이식 수술하듯, HDD를 끄집어내서 새로 산 SSD로 교체했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재시동을 하려 했으나, 당연히 새로운 하드디스크는 백지상태이니 시동마저 불가능한 상황. 최신 OS를 다운로드하고 시동 디스크를 만들어 부팅을 시켰다. 아니 이놈이 꿈쩍도 하지 않는 거다. 다시 이리저리 찾아보니 최신 OS는 10년 묵은 내 컴퓨터를 서포트하지 않는 것이다. 난 그것도 모르고 최신 OS이면 다 좋은 줄 알고 여태 썼던 거다.
다시 조사해서 힘들게 2017년에 나온 High Sierra를 다운로드하고 시동을 걸고, 하나씩 셋업을 했다.
(사실, 애플 제품은 다운그레이드란 경우의 수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 마케팅이긴하다...)
이게 웬걸, 10년 된 나의 올드 맥에서 최신 프로그램들이 초스피드로 날고뛰는 것이다.
400만 원 주고 새 컴퓨터를 사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었고, 내가 OS를 업그레이드만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몇 년 동안 사용해도 문제없을 것 같다.
내가 컴퓨터를 쓰는 목적은 휘황찬란한 기능을 가진 시스템의 스펙이 아니라, 하고자하는 작업이 스트레스 없이 움직여주기만 하면 되는게 아닌가. 어쩌다 보니, 컴퓨터를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를 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우리 삶에서도, 높은 학력, 연봉, 좋은 집, 차 등 스펙에만 집중해 업그레이드만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가끔은 상황에 따라서 다운그레이드가 필요할 때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행복이니까. (참고로, 브런치의 키워드에도 '업그레이드'는 있는데 '다운그레이드'는 없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다리 찢어진다'라는 옛말이 있다. 분수에 맞지 않게 힘겨운 짓을 하면 도리어 해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가끔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상황을 부러워하며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없는가. 한번 시선을 밑으로 봐 보자.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 힘들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면 현재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가 깨우치게 된다.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어떤 것을 따라잡으려고 아등바등하며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무리하게 스펙을 올려야 한다며 힘들어할 때도 있다. 그럴 때 한 계단만 내려와 보자. 그러면 생각지 않았던 여유가 생기고 오히려 더 빨리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사는 방식은 업그레이드만이 정답이 아니다. 가끔 다운그레이드도 해 가며 다른 중요한 것을 되새김이 필요한 때도 있다.
코로나 19로 많은 것을 잃은 사람들. 경기 불황으로 허덕이는 지금 우리 사회. 살짝 다운그레이드도 해 보면서, 다음의 업그레이드를 꿈꾸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