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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canso YUN Sep 02. 2020

일본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준비운동

굿바이. 샐러리맨 생활!

2008년에서 2010년은 리먼 쇼크에서부터  3.11 동일본 대지진까지 일본 광고계는 물론 일본 경제는 엄청난 침체의 시기였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지진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자금이 돌지 않아 흑자도산으로 해체되었었다. 거기다 지진...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2011년 후부터, 일본도 조금씩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회사에 온갖 열정을 바쳐도 몇 번 시련은 겪은 나는, 다시 시작한 정규직 사원에 대한 마인드는 예전 같지 않았다. 이제 나의 목표는, 파견사원도 아니고 정규직도 아니고, 무조건 빨리 프리랜서로 독립하는 것이었다. 회사나 사회의 변화에도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리얼한 '내 일'을 찾고 싶었다.


영주권은 발급받았고, 디자인 일은 자본이 없어도 바로 독립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독립을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었다. 여긴 한국도 아니라 혹시 잘못되었다고 쪼르륵 부모님 밑에도 갈 수도 없고, 당장 내일 먹고살 것도 어떻게든 본인이 책임져야 되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의 성격이 독립에 맞는 타입이냐도 아주 중요하지만, 독립이란 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혼자만의 싸움이기 때문에 어떠한 리스크에도 본인 혼자 대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이나 능력은, 한 번에 갑자기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준비운동을 하듯 서서히 하나씩 키워나가야 한다. 여기에서, 일본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독립하기 위해 내가 준비한 '준비운동'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해 보겠다.


준비운동 1. 마이홈 구입

나의 경우, 준비운동에 가장 필요한 첫 번째 요소였던 것은, 내 집을 사는 것이었다.

30살 때 일본에 적을 둔 상태로 잠시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간 적이 있었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월세였다. 일본에 적을 두고 언제든지 바로 돌아갈 곳을 유지하려면 비싼 월세를 계속 내야 되는데, 마치 빈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었다. 당시 호주에 직장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으로 집세를 내다보니 금전적으로 굉장히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계획보다 빨리 호주를 접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생각한 건, 향후에 어디를 가고 싶으면 집을 사야겠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일본은 주택대출 금리도 굉장히 싸기 때문에 집을 사놓으면 조금이라도 심리적인 압박은 덜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일본은 주택대출 금리가 싼 대신에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워서, 회사원이 아니면 은행에서 주택대출을 받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가더라도, 최소 연속 근무 3년은 되어야 주택대출이 잘 나오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려면, 무조건 회사 다닐 동안 주택대출로 집을 사고 나서 회사 그만두는 게 좋아”라고 독립한 선배들은 조언을 한다. 


준비운동 2. 클라이언트와 인맥 만들기

그만두기 전에, 고정 수입을 위해서 어느 정도 클라이언트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가능한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일이 있으면 베스트이다. 

예전에 일을 했던 회사에서는 일본에서 내놓으라 하는 유명 대기업들의 일을 했었다. 그때 나의 보스는 꽤 능력이 있으신 분이었는데, 내가 왜 독립을 하지 않는가 물었다. 그러자 그 보스는 독립해서 망하는 동료들을 많이 봐와서 자기는 겁이 나서 독립 못한다고 했다. 유명 대기업의 디자인 일을 하면 이름값이 있기 때문에 독립하면 잘 나갈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특히 일본 대기업들은 리스크를 꺼리기 때문에 개인사업자에게는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한다. 개인적으로 일로서 인정받고 신뢰가 쌓여있더라도 개인사업자로 독립하는 순간,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상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태 동안 일해 왔던 대기업들의 일들은 작품으로서는 보기 좋지만, 작은 회사의 경우가 더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회사에서는 다행히 중견 중소기업이 대부분이었는데 여태까지 일하는 스타일도 틀렸고 예산도 많이 틀렸다. 오히려 일당 백의 마인드로 일을 했기 때문에 많은 점을 배울 수도 있었으며,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자신감도 들었다. 친구 중에 생수사업을 시작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생수의 브랜딩부터 프로모션까지 전반적인 것을 나하나만 믿고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SNS에서도 조금씩 내가 한 일들을 조금씩 홍보를 하자, 아는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의뢰가 오기도 했고, 단발적으로 부탁받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둘 때는 어느 정도 수입의 그림이 그려졌을 때였던 것 같다.


준비운동 3. 웹디자인 마스터하기

솔직히 웹디자인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란 게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긴 했다. 

다행히 할로 워크 교육원에서 6개월 공부한 것도 실무로 웹디자인도 5년 동안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실무 경험이 없었더라면 혼자서 독립했을 때 아주 힘이 들었을 거라 생각된다. 또한 팀워크로 어떻게 일을 하는 지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아웃소싱을 써서 디렉션할 수 있는 근육을 키운 것 같다.


준비운동 4. 혼자서 견적 낼 줄 알기

독립하면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해 내야 한다. 특히 견적은 그중에서 아주 중요한 실무이다. 하지만 회사의 조직 안에 있으면 영업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은 디자이너들은 아주 문외한이다. 게다가 대행사에서 일을 받는 디자인 프로덕션의 경우는 본인들이 종이의 종류나 두께마저 결정할 선택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의외로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종이에 대해 모르거니와 가격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독립하면 당연히 본인이 직접 영업도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거 만들고 싶은데 얼마 정도면 돼?"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립에서 견적은 필수 업무이기도 하다.

직장생활 동안 다양한 외부 거래처와의 견적내기와 자신의 서비스에 대한 가격 책정의 노하우는, 정말이지 단시간에 얻기 어려운 필수 운동이지 않을까 한다.


준비운동 5. 외부 네트워크의 확보

프리랜서로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혼자이기에 오히려 같이 할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이 안심이 된다. 기본적으로는 혼자 해결하면 좋지만, 본인이 약한 부분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외부에 부탁하거나 믿고 부탁할 사람들은 확보해 놓는 것이 힘이 된다. 그럴 때 외부 네트워크를 얼마나 가지고 있고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가도 일을 소화해내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나 같은 디자이너들은 인쇄업체, 카메라맨, 카피라이터, 일러스트레이터, 웹프로그래머 등 한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외부 네트워크를 핸들링을 할 수 역량이 필요하다. 회사 다닐 때처럼 수동적으로 자기 일만 하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준비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나는 돈보다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진 이후에 들어간 회사는 연봉이 전 회사에 비해 100만 엔 이상 적게 협상이 되었으나, 독립을 위한 몸만들기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선뜻 승낙하였다. 뭐 5년 동안 피트니스 클럽에 다녔다고 생각하면 되니 말이다. 또한 여태까지 고생했던 나의 직장생활들의 경험들은, 지금의 프리랜서 커리어에 필요한 단단한 근육이 되어 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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