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무 말 메일에 이틀 뒤 받은 답메일
방황하던 저의 아무 말 메일에 대한 답 메일입니다.
저의 편지를 먼저 읽고 오시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https://brunch.co.kr/@kamari/24
미라야
지금 네가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답은..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사실은 나도 아직 극복 못 했거든 ^^:ㅎㅎ 나는 그걸 찾는 거 자체가 인생이라고 생각해
자꾸만 비기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네 마음에는 백번 공감한다 특히 실망의 연속인 나날에는 절대로 실패하고 싶지 않아 도전도 안 하게 되는 게 당연한 자기 방어지..
나란 사람이야 말로 실패가 싫어서 도전을 안 하는 성격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도전은 아름다워 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
그런데 미라야..
산다는 게 결국엔 도전의 연속이야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넌 지금 취준생으로서의 삶에 도전하고 있는 거고 난 이 멀고도 먼 땅에서 살아남으려.. 엄마로서의 삶을 살려 도전하고 있는 거고..
어느 도전이든 쉬운 건 없지 하다못해 해리포터 전권 읽기 같은 도전도 실패하잖니..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처음 널 면접을 봤을 때 나도 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
사실.. 헤어스타일이 젤 싫었고.. 그다음엔 원피스가..ㅋㅋㅋ
사실 좀 말하는 게 딱딱해 보여서 무서웠거든 ^^: ㅋㅋ
포폴이 좀 평범해 보였는데 너무 자신만만한 것도 좀 꼴 보기 싫었고 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너란 사람을 경험하고 난 생각은 너는 내가 본 중 제일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거야
수많은 팀원을 경험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뿐이지 행동하지 않아..
게으르거나, 너무 성급하거나, 너무 준비만 하다가 결국엔 행동의 타이밍을 놓치고 말지..
하지만 너는 준비하고 시작하고 어떻게든 결론 내고 그리고 다시 시작을 준비하는 그런 사람이야..
너는 지금 준비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준비가 지치고 힘들고 외롭겠지..
하지만 결국 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면접관이 한 번 보고 너의 장점을 파악 하긴 힘들겠지..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너를 몰라 봤잖니 ㅋㅋ 니 잘못이 아니야.. 그냥 인연이 없었을 뿐..
결국에 그 사람 손해지..ㅎㅎ그 사람은 좋은 팀원인 동시에 인생의 친구를 잃은 거야
너란 사람이 얼마나 그 회사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 넣어줄지 미처 몰라 봤고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도 알 기회를 놓쳤으니.. 그 멍청한 사람을 위해 울어 줘야 할 정도네.
우리는 많은 실패를 경험해 보지 않았어 그러니 면역력이 없고.. 그러니 당연히 실패가 너무 아프지..
무심하게 들리겠지만.. 그건 아마 삶면서 계속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일 거야..
직장 말고 모든 면에 있어서.. 말이야
그러니 정통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달리 편법으로 치료하는 방법 따위는 없어..
흔한 말이지만 딱지가 아물고 굳은살이 생기면 다음엔 덜 아픈 정도가 아마 최선이겠지..
미라야
디자인 적인 능력이나 스킬 아이디어 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솔직하게 말하면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내가 지금까지 18년을 일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게 뭔지 아니?
난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하지? 난 왜 이렇게 그림을 못 그리지? 란다..
나도 사회 초년생 때는 안 그랬어 ~ 상도 많이 탔고 그때 당시 가장 핫하다는 회사에 특채로 입사했고 특별한 팀에 배정받았지. 할 때마다 칭찬받았고 30살이 되기 전에 팀장을 달았지..
그래서 내가 디자인을 못하는지 몰랐어 ~ 그런데 그때는 말이야.. 진짜 눈만 뜨면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어
데생을 처음 배울 때.. 길에서 사람들 보면 막 면을 쪼깨고 그러잖아~ ㅎㅎ 그런 것처럼 주말에는 당연히 팬시 전문점 구경하는 게 놀이었고 휴가 때는 일본에 가서 귀여운 거 잔뜩 보고 오는 게 당연했지..
어찌 보면 그때는 그냥 그게 제일 좋았고 재미있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오로지 그 안에서 생활했던 거 같아
그러다 우리 부서가 망하고 나도 회사에서 나오면서 평소에 꿈꾸던 프리랜서 생활을 했지..
그리고 나에겐 잘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너와 함께 했던 회사와 인연을 맺기까지..
얼마나 좌절하고 힘들었는지 몰라 ~ 그 몇 달이 내가 세상에서 땅을 파고 그 속에서 또 땅을 파도 더 깊은 바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였지..
처음 우리 회사에 왔을 때도 내가 너무 못하는 거 같아서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나 몰라..
( 상무님은 내가 맘에 들었는데 내가 그만둘까 봐 명품 화장품을 선물로 주고 막 그랬는데.. 말이지.. )
그런데 그때 그냥 좌절하고 그만두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야..
지금의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다녔던 그 회사가 너무도 훌륭한 회사라서가 아니라..
지난 회사에서의 생활은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 즐겁게 일하고 생활하고 행복했던 삶이었거든
너라는 좋은 친구이자 동료 덕분이기도 하고~ 정말 즐겁게 힘들고 즐겁게 일했지 ^^
그냥 내가 회사를 처음에 나랑 안 맞다고 쉽게 포기했거나 니 헤어스타일이 맘에 안 든다고 너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거나 했다면.. 나에게 그 소중한 시기는 없었겠지..^^:ㅋㅋ
그러니 미라야..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아라..
만약 갑자기 네가 너무도 해보고 싶은 게 생겼고 그게 가령 헬스 트레이너 같이 말도 안 되는 거라 해도
난 너를 지지하고 응원할 거야..
하지만 뭔가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뭔가를 못할 거 같아서 포기하는 건 하지 마..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니 커리어나 니 경력에 맞는 스킬 같은 건 사실 기준이란 게 없어..
그냥 네가 느끼기에 만족하냐 못하냐야
만족 못하면 더 하고.. 그리고 만족 하렴..
미라야
사람들이 보는 나와 내가 느끼는 나 의 갭 같은 건 신경 쓰지 마
아무도 너에게 속지 않아
넌 그만한 능력이 없어
ㅋㅋㅋㅋ
그저 사람들은 본인들이 보고 싶은 너를 보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냥 네가 좋은 너 하렴..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니 주변의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 그러니 너라도 행복 하렴..
그것만도 어렵다는 걸 불행하여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잖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에 시대에 이런 말이 나와~
인생이란 비스킷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버리면
그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과 같다고,
나의 친애하는 미라야.. 다 좋아질 거야..
* 비단 취준뿐 아닌 인생의 불확실함에 대해 내게 상담을 요청했던 친구들에게 매번 어쩐지 이 답메일이 생각나서 늘 전달해 주었었다. 메일 내용 공개에 대해 차장님은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읽을 때마다 눈물이 왈칵왈칵 나오는 차장님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