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함을 어디에 쓸 것이냐의 문제
지난 월요일 동기를 만났다.
이직을 여러 번 하면서 다양한 사회경험을 한, 무엇보다 내게 늘 바른 말을 해서, 내가 좋아하는 동생이었다.
"언니, 우리같이 바른 말 하는 스타일은 임원되면 집에 빨리 갈거야 아마.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러니까 언니도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고, 쉬엄쉬엄 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말과 행동이 두각을 나타내거나, 남들과 달라 눈에 띄는 사람이 미움을 받는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해야할 말을 참지 못한다.
위에서 지시하는대로 따라주었으면 하는 수많은 일들 앞에서, 내 생각을 숨기지 않는 편이다.
운이 좋게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상사를 만난 편이고, 우리는 일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갔다.
사회생활 이 정도 경력이면, 어느 정도 바운더리에서 적당한 수긍과 맞춰주는 센스는 탑재되니까.
그런데 요즘들어 그 사회생활 짬은 어디갔는지, 입이 트여만 갔다.
아니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일들은 한두가지가 아니고, 방향을 못 정한채 이리저리 뱅뱅 돌아서 보고서 ABCD버전을 만들었는데,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짬시키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어떤 지시가 내려와도,
어차피 보고한들, 어차피 빠르게 한들...
'어차피' 병이 도졌다.
다행인지, 나만 그런건 아니었다.
순하디 순한 우리 팀원들 전체가 그러했다.
아... 나 왜 안심되지.
나만 모난 돌인줄 알았더니,
다들 한계치에 부딪힌 순간이었다.
팀장도 한계에 도달했는지,
좀처럼 안하던 쓴소리를 했다.
모두가 모난 돌처럼...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리더,
쓴소리 하는 주변인의 부재,
이러한 상황이 직원을 모난 돌로 만든다.
애초에 모난 돌은 아니었을 것이다.
블록체인 공부를 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보의 싱크를 맞추는 것처럼, 조직의 위-아래도 생각의 싱크를 맞출 수 있을까.
정해진 가설과 그에 대한 답을 만들어내는 일은, 불편하다.
말할 수 없는 진실과 다른 목소리는 애초에 닿지 않는다. 내 목소리는 숨겨야 한다.
사실 모난 돌은 치열하다.
그러나 치열함은 어느 수준에서 수렴되거나, 멈추거나.
치열함이 분출되지 못하고 가라앉을 때,
과연 조직도 침전하는건 아닐까.
세상은 옮은 말과 옳은 말의 싸움일 가능성이 높아요.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도 본인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그 사람이 악해서도 아니고 그 사람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틀렸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들의 옳은 말과 나의 옳은 말 사이에서 나의 말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나가는 겁니다. 그런 노력을 해보는 것이죠.
-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 박웅현
그런 노력이 부족해서일까.
모난 돌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 외에
어떠한 것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난 언제나 그렇듯,
사라지지 않는 치열함을 다른 곳에 분출한다.
나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