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ETEL Dec 16. 2020

저녁에 인생이 시작되는 사람들

잠을 미루는 습관을 가진 현대인에 대한 고찰

<BBC Worklife>에 실린 Lu-Hai Liang의 "The psychology behind ‘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을 번역(일부 생략)한 글입니다.



엠마 라오(Emma Lao)는 거의 3년 동안 중국의 악명 높은 '996 스케줄'을 지내왔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을 일하는 스케줄이다. 난징 출신인 라오는 약 5년 전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금융 중심지인 상하이로 이주했다. 직업은 곧 그의 삶을 집어 삼켰다.


엠마는 "저는 거의 우울했어요. 개인적인 삶을 몽땅 빼앗겼으니까요."라고 말한다. 가끔 야근을 수반한 업무가 끝나면 먹고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작은 여유를 가졌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는 잠을 포기했다. 엠마는 자정 훨씬 넘어서까지 인터넷 서핑, 뉴스 읽기, 온라인 비디오 시청을 계속 했다.


라오는 중국어로 '바오푸싱뎅 아오예(bàofùxìng áoyè)'라는 것을 하고 있다. 잠자리 미루기다. '늦도록 자지 않는 보복'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이 문구는 지난 6월 다프네 케이 리(Daphne K Lee)라는 기자가 올린 글이 트위터에 급속도로 퍼지며 알려졌다. 이 현상에 대해 "낮 시간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자유를 되찾기 위해 늦은 밤까지 잠 드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 게시물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케네스 쿽(Kenneth Kwok)이라는 트위터 사용자는 4,500번 이상 '좋아요'를 받은 이 글에 "일반적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를 사무실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면 오후 10시가 된다. 바로 잠을 자지 않고 같은 일상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댓글을 달았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빼앗긴 내 시간을 되찾고 싶다


이 용어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기자가 용어를 가장 처음 발견한 곳은 2018년 11월에 작성된 한 블로그 포스트였지만, 이 용어에 대한 기원은 이보다 앞서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게시물의 저자인 광둥성 출신 남성은 근무 시간 동안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소유된다"면서 집에 돌아와 누울 때만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썼다. 그는 잠을 미루는 행위(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가 슬프지만, 조금의 자유를 얻기 때문에 좋다고 한다. 


이 문구는 중국에서만 대중화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이 문구가 묘사하는 현상은 널리 퍼져있을 것이다. 전 세계의 많은 노동자들이 본인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인 시간을 위해 취침 시간을 미루고 있다.


경계가 흐려지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수면 부족이 세계적인 공중보건 전염병이라고 경고했다. 12개국으로부터 1만 1000여 건의 응답을 받은 '2019 필립스 글로벌 수면조사'에서 전 세계 성인의 62%가 충분한 수면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면 권장량인 8시간 대비 일주일 동안 평균 6.8시간의 수면 시간을 기록하며 턱없이 부족한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에서는 2018년 전국 조사 결과 1990년 이후 출생자의 60%가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대도시 거주자가 가장 많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96 문화'를 만든 기술 회사들은 대도시에 거점을 두고 있고, 이들의 업무 관행은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다. CCTV와 중국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근로자들의 평균 근로 시간은 출근하지 않거나 잠에 들지 않는 자유 시간이 하루 2.42시간으로 전년 대비 25분 감소했다고 한다.


상하이의 한 디지털 에이전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렌터인 구빙(Gubing)은 종종 늦게까지 야근하며 새벽 2시 이전에 잠자리에에 드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다음날 피곤해도 일찍 자고 싶지 않다"면서 "20대에는 늦은 밤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정상적인 수면 습관을 들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건강해지고 싶지만, 고용주들이 시간을 빼앗았다. 빼앗긴 시간을 다시 갖고 오고 싶다"고 덧붙였다.


셰필드 대학 경영대학원의 직장 심리학 강사 시아라 켈리(Ciara Kelly)는 "오랜 시간 근무는 차치하고서라도 현대적인 근무 패턴은 일과 가정 사이의 경계를 짓는 것을 어렵게 한다"고 언급했다. 이메일과 메시지는 고용주들과 항상 연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우리가 항상 직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일을 언제든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광저우 남부 대도시에 있는 게임 개발 회사의 분석가로 일하는 지미 모(Jimmy Mo)는 비디오 게임에 대한 열정이 양날의 검이 있음을 깨달았다. "일이 취미고, 일을 위해 여가 시간을 희생할 수 있다"고 말하며, 퇴근 후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게임을 해야 직업 스킬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요가와 노래 부르기를 포함한 다양한 취미를 지닌 지미는 새벽 2시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그는 수면 부족이 건강에 잠재적인 위협 요소가 되고, 잠을 더 많이 자면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더 많은 것을 하고 성취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수면 '캐치-22'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짜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낄 수 있지만, 잠을 줄이는 것은 최고의 보복이 아닐 것이다. 특히 장기간에 걸친 수면 부족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매튜 워커(Matthew Walker)의 책 '우리가 자는 이유: 잠과 꿈의 힘 풀이'에서 "수면이 짧을수록 수명이 단축된다"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며, 인터뷰를 한 모든 사람들이 수면 패턴에 대해 건강하지 않다고 느꼈지만 그들은 여전히 늦은 밤을 지새웠다.
 

심리학은 왜 사람들이 잠을 줄이면서라도 여가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지에 대해 설명하며, 업무압박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지적한다. 일과 여가를 분리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으며 건강을 악화시키고 번아웃을 초래한다. "일에서 회복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수면이다. 하지만 잠은 우리가 삶을 얼마나 잘 분리하느냐에 영향을 받는다"고 셰필드 대박의 켈리가 설명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일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이 사람들이 일과 후 여가를 위해 수면을 포기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것이라 말했다. 


켈리는 "사람들이 잠들기 전에 직장에서 분리할 시간이 없을 때 '캐치-22(Catch-22)' 상태에 갇히게 되는데, 이는 수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진정한 해결책은 개개인이 일과 분리된 활동에 참여할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켄트대의 정희정 노동사회학자는 직장 유연성을 옹호하며, 수면 수면 미루기의 관습을 고용주의 잘못으로 해석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효율적인 직장 환경을 보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사실상 생산성을 위한 조치"라며 "여가 시간이 있어야 긴장을 풀 수 있다. 일 외에도 할 일이 필요하고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 평가했다.



유연성 향상


코로나 19의 대유행 이후, 회사들이 재택근무 제도를 도입했고 업무에 큰 유연성을 두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일과 집에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문화가 노동자가 자유시간을 되찾기 위해 수면을 미루는 것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중국에서는 기업들이 코로나 19로 인한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초과 근무를 더욱 권유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베이징의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크리스타 페더슨(Krista Pederson)은 이런 트렌드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회사들은 더 적은 시간을 일하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자신의 노동 문화를 이점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전진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워커홀릭 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업무 문화에도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엠마는 '996 직업'을 좀 덜 힘든 직업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늦은 잠자리에 들며 "나를 위한 시간을 되찾기 위해"라는 이유를 덧붙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는 아기는 깨우지 말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