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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Aug 09. 2021

손목시계가 주는 아날로그 향기

시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휴대폰을 분신과 같이 여기는 요즘 시대에 문득 시간이 궁금할 일은 없을 터이고, 옛날같이 길에서 시간을 물어보는 어린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요리를 할 때 3분 뒤에 라면을 냄비에서 꺼내야 할 때는 인공지능 스피커에 알람 설정을 부탁하게 된다. 아침에 나를 깨워주는 자명종은 '헤이 구글, 내일 아침 7시에 깨워줘~'라고 말한다. 


가만히 시계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니, 중학교 입학할 때 부모님께서 선물한 카시오 전자시계를 마르고 닳도록 차고 다녔던 학창 시절에는 그것이 내 몸에 부착된 물건들 중 최고가를 차지했었다. 시계 말고는 교복과 손수건 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카시오 시계는 즉시 까까머리 중학생에게는 보물 1호가 되었고, 이것을 애지중지 하면서 차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시계는 시곗바늘이 있는 오리엔트 아날로그시계였는데, 아침마다 용두를 돌려가며 시계에 밥을 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라디오에서는 매 정시마다 '오리엔트시계가 알려주는'이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던 것 같다. 


다시 세월이 흘러 흘러 내가 결혼할 때 산 예물 시계는 라도 브랜드였는데, 이후에 그것을 차고 다니기도 했지만 어느덧 나의 생활에서 시계는 사라지고 휑한 왼쪽 손목을 날 것 그대로 한 채로 살아왔다. 


시계 마니아인 회사 동료의 영향이 컸다. 가끔씩 해외에서 배송되는 그의 시계가 사무실로 배달되어 박스를 뜯는 그의 모습을 보다가 그만 나도 시계 사이트를 찾아 헤매는 일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파랑새를 쫒는 심정으로 틈만 나면 나의 이상형 시계를 찾고 있다. 엊저녁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올림픽 여자 배구 동메달 결정전을 가슴 졸이며 보고 나서도 유튜브로 시계추천 방송을 훑어 보았다. 부모님 댁을 방문해서 콩국수를 시원하게 먹고 나서도 말없이 시계 정보를 찾아 헤맸다. 

범위가 많이 좁혀졌다. 화이트 페이스에 메탈 밴드이면서 미니멀리즘이 반영된 시계가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다. 이에 가장 가까운 M사 시계를 한참 서칭 해보았다. 골격이 반듯한 남성 연주자가 또랑또랑한 음색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느낌이 확 왔다. 


해외 사이트에서 세금과 배송비를 확인하고 국내 사이트에서는 얼마나 하는지를 알아보는 방식이었다. 일단 3개 정도로 모델을 골라놓고 다른 일을 하려는데... 


다른 사이트로 빠져나왔는데도 내 쿠키 정보를 감지한 시계 광고 이미지가 감나무에 흔들리는 마지막 감처럼 대롱대롱 흔들리며 나를 유혹하고 있다. 쉽게 지워버리기 힘든 유혹이다. 오십 대에 찾아온 시계의 유혹이란... 참  


오십 대 남자에게 시계란 무엇일까? 맘 같이 움직이지 않는 회사일과 점점 권위를 잃어가는 가장의 쓸쓸함을 보상받으려는 일종의 몸부림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그저 디지털 홍수에 지친 나머지 아날로그의 축복으로 위안을 삼고 싶은 현대인의 반응 정도로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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