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go Sep 22. 2021

커피, 고것 참...

내게 월요일을 가져다주는 묘약


언제부터인가 하루의 일과가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호수의 잔잔한 속삭임과 같이 평온하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설문, 인터뷰, 자문단 회의에서의 발표 등 소소한 이벤트가 있지만 난이도가 높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평소 계획에 따라 찬찬히 준비한 것들의 집합 또는 표현이기에 그저 잔물결 정도의 일렁임에 불과하다. 사실 이런 현상은 조만간 폭풍과 같은 일거리가 몰아칠 거란 암시이기도 하다.

  

주말 척추가 없는 문어와 같이 거실 바닥에 착 들러붙어 지내다가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하려다 보면 멘털을 업무 모드로 전환시키는데 주술과 같은 음료가 필요한데 이럴 때 쌉싸름한 커피가 떠오른다. 스타벅스의 달달하면서 흠잡을 데 없는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스타일의 부드러운 맛도 좋지만, 월요일 아침에는 동네 1인 커피숍의 개성있고 칼칼한 야노스 슈타커를 닮은 커피 향이 더 어울린다. 공영주차장을 나와 골목 어귀에 있는 나의 참새 방앗간 '글래머 커피'로 향한다. 장난 좋아하는 직원들이 글래머의 의미를 다르게 곡해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곳의 글래머는 풍부하고 매력적인 커피맛을 뜻한다. 아마 그럴 거다. 아마도...(사실 glamour의 사전적 의미는 '매력 있는'이다.)


맞은편에 잘 알려진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있지만 같은 값이면 동네 커피숍을 키워주려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는데, 더 앙칼진 맛도 맛이지만 프랜차이즈숍 아르바이트 원이 따라올 수 없는 오너 바리스타의 따듯한 미소가 더욱 이곳을 찾게 만든다. 사실 나는 항상 마이너를 응원하는 편이다. 국민학교 시절에 남들 다 사는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의 동아전과(전과=참고서)를 마다하고 마이너 출판사 전과를 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이 커피숍에 현금 칠만 오천 원을 넣어놓고 나니 원두 이백 그람을 서비스로 받을 뿐만 아니라 일일이 카드를 커내지 않아도 돼서 더 자주 들리게 된다. 내가 아침마다 이곳을 찾아 혼미한 주말의 데이 드림을 벗어나듯이 아침 여덟 시 반에 이곳을 찾는 이들이 제법 많다. 회사 선배들의 명을 받아 부리부리한 눈매의 신입사원 대여섯 잔을 받아가기도 하고, 강아지를 품에 안고 들른 여성분도 있고, 금목걸이와 팔목에 문신이 살짝살짝 보이는 근육질의 헬스클럽 코치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나는 회사까지 3분 정도 거리를 커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걸어갈 요량으로 전용 텀블러를 내밀며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 언제부터인가 ' 에스프레소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는 주인에게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한방울이라도 흘릴까 에스프레소를 신줏단지 모시듯 품에 안고 와서 회사 탕비실에서 얼음과 냉수를 넣고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비로소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월요일'이 내게 다가온다. '월요일이 사라졌다'라는 영화를 참 재미있게 봤는데, 사라졌던 월요일이 내게 온 셈이다. ㅎㅎ


비록 평온하고 재미있는 일과의 시작이지만 커피가 전투식량처럼 나에게 힘이 되어 준다. 지구 상에서 석유 다음으로 여행을 많이 하는 최대 이동 물질 커피,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검게 그을려지고 한국 복정동에서 뜨거운 에 녹아내린 향기가 새삼 묘약과 같다. 월요일에는 더욱더 그렇다.


달콤한 것 같지만 쌉싸름한 커피, 우리네 인생과도 같은 맛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Chicken or Beef?'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