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로컬 시설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
친구 우현이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이다. 과제는 '로컬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쓰시오'이다.
조금 긴 글이 될 것 같아 이곳에 생각을 정리해 본다.
전면에 배치된 넓은 유리문을 보면 오래된 구조이지만 화이트 컬러 페인팅을 하여 깔끔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세월을 머금은 흰머리를 감고 단정하게 빗질 한 모습과도 같다. 겨울에는 외부의 냉기가 안으로 많이 스며들 것 같은데, 지글거리는 연탄난로 위에 양은 주전자가 칙칙 거리며 수증기를 내뿜고 있을 것 같다.
성실이용원이라는 상호는 아마도 주인장이 청운의 뜻을 품고 이발소를 오픈했을 때부터 변치 않고 반세기를 함께 했을 법한 이름이다. 국민교육헌장의 이런 문구를 떠올리게 된다.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운다.' 그 시대에는 근면과 성실이 최고의 가치였을 거고 거기에 하나 더 붙이자면 반공정신이었을 듯하다. 좌측 벽면에 반공 관련 포스터 하나쯤은 붙어 있었을게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고, 대한민국은 일본을 추월할 정도의 GDP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제 붉은색은 더 이상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컬러가 아니다. 일찍이 붉은 악마가 월드컵을 뜨겁게 달구었고 이제는 보수정당의 상징색도 붉은색이다. 새롭게 단장한 붉은 지붕과 깔맞춤 한 이용원의 간판은 자세히 보니 베니어합판에 배경색과 글씨를 넣은 뒤 못 몇 개로 이어 붙였다. 원래 표현하고자 했던 글씨체는 유리문에 있는 하얀색의 글씨일 듯하다. 40년 전 유행하던 한글 글자체다. 국민학교 시절 잠깐 다니던 수유리 성실교회 글자체와 같은 것이다.
붉은 지붕의 가장 하늘과 닿은 곳에는 행운을 기원하는 '복'이라는 글자가 주인장의 염원을 담고 우뚝 서있다. 그는 자식이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기를, 오시는 손님들 농사의 풍요로움을, 조국이 부강해지고 세상이 평화롭기를 빌었겠지.
오래된 시멘트 바닥에 삐죽 튀어나온 끝부분이 불규칙한 모습으로 깨져있는 플라스틱 우수관이 정겹다. 잘라진 면이 너무 반듯하면 안어울릴 뻔 했다. 익어가는 메주 덩어리 표면처럼 울퉁불퉁한 가게 앞 바닥에는 인조잔디 느낌이 나는 푹신한 재질이 덮여 있다. 주인장의 따듯한 배려가 느껴지는 웰컴 사이니지가 아닌가 싶다. '무겁고 힘든 짐을 진 자들이여, 이곳에서 안식과 위로를 한껏 받으소서'
뷰티숍이나 헤어살롱이 아닌 바버샵... 영어식 표현이지만 세월이 느껴지고 성실이용원과 딱 들어맞는 듯하다. 휴대폰 번호가 표시된 이용원을 서울에서는 보기 쉽지 않다. 아마도 주인장이 잠시 텃밭에 간 사이에 이용객들이 오면 전화를 하라고 표시해 둔 것 같다. 붉은색 휠의 자전거가 있으면 금방 돌아올 것이고 자전거가 안 보이면 좀 멀리 마실 간 거일 게다. 그래도 문은 열려 있을 거고, 이용객은 오래된 잡지나 신문을 읽으며 주인장이 돌아오기를 여유 있게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오래된 로컬 시설물이지만 옛 것을 버리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만 고쳐 사는 주인장의 지혜와 고집이 30년마다 멀쩡한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짖는 욕망 덩어리 재건축 아파트의 주민인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