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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May 19. 2021

깨진 유리조각

보일 듯 말듯한 위태로움

며칠 전의 일이다. 점심 식사 후 책상에 앉아 다시 업무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휴대폰이 부우웅 몸을 떨었다. 아내로부터 카톡이 온 거다. 항상 그렇듯이 별일 아닌 걸로 연락이 왔나 보다 했다. 저녁 찬거리는 뭘 준비해놓았으니 일찍 오라던지, 요즘 잘 나가는 주식은 이런 거라고 누구에게 들었다던지 그런 내용인 줄 알았다.


유리그릇을 떨어뜨려서 산산조각이 났다는 이야기가 여러 번에 걸쳐서 뉴스속보를 전하듯이 날아왔다.

'유리그릇 박살남. 완전 가루로 산산조각이 나서 혼이 나감'

'치우다가 손, 발바닥에 유리가루가 밤하늘 별빛같이 촘촘하게 묻어버림. 완전 심각한 상황'

'작업장갑을 다 썼으니 집에 오는 길에 여러 개 사 오길 바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잠시 쉬었다가 다시 문자가 줄줄이 사탕같이 날아들어온다.

'지금도 와인셀러 밑에 물티슈를 넣어 닦을 때마다 유리파편과 가루가 닦여 나와'

'들어올 때 잊지 말고 마트 들러서 작업장갑 사다 줘~'


그 이후로 몇 주간 깨진 유리가 아내의 생활을 온통 점령해버린 듯했다. 실내화를 3켤레 사서 싱크대 앞에서는 그것을 신어야만 했는데,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혹시 유리가루가 튀었을 수 있다며 천으로 된 빨래 바구니를 버리게 됐고, 유리가 박살 났던 근처에 있어다는 죄로 쓰레기통을 교체해야 했다.


아내는 엄청난 양의 물티슈로 바닥을 훔쳐내고서도 발바닥에 유리가루가 박힌 거 같이 따끔거린다고 정형외과를 찾았다. 정형외과에서는 발견하지 못해서 돌아와서도 계속 발이 콕콕 쑤신다고 했다. 나는 정신적인 충격 때문이라는 판단을 슬쩍 내비쳤다가 거의 유리그릇처럼 박살 날뻔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마치 대한민국이 '코로나 때문에...'라고 시작하는 말이 많아졌듯이 '깨진 유리그릇 때문에...'로 시작하는 말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깨진 유리그릇 때문에 앞으로는 유리그릇을 쓰지 말아야겠어"

"깨진 유리그릇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버려서 무슨 설탕을 뿌려놓은 것 같았어"

(이 말은 거의 며칠 동안 반복되었다)

"깨진 유리 때문에 욕실 신발을 신을 때마다 왼발가락 위에서 유리가 느껴져"

".... 그래서 다이슨을 못 돌리겠어"

"... 그래서 원인이 됐던 코너에 있는 와인셀러는 갖다 버리면 좋을 것 같아, 망가지면 새로 사지는 말자"


'어, 유리그릇 때문에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구나.'


사실 내가 새삼 알게 된 것은 우리 집이 그동안 참으로 잔잔하고 평화로웠다는 점과 우리 같이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는 이런 일도 육이오 때 옆집에 폭격 맞은 것 같은 심리적 충격을 주는가 보다 하는 점이다.


우리가 참 포시럽게 살고 있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그냥 든다. 나 혼자 입 밖으로 말은 못 하고 그냥 그런 생각을 한다. 일단 당분간 맞장구쳐주면서...

살아 생전의 유리그릇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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