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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y 07. 2024

그대도 오늘

쉰일곱 번째 시

2023. 9. 21.

이훤, ‘그대도 오늘'


[그대도 오늘]


무한히 낙담하고

자책하는 그대여


끝없이 자신의 쓸모를

의구하는 영혼이여


고갤 들어라

그대도 오늘 누군가에게 위로였다




   이 시는 작년 가을에 시 필사 모임에서 받았던 시인데요. 마침 그 당시에 뮌헨 한글학교 도서관(제가 맡아서 꾸리고 있는 작은 도서관입니다!)에서 빌렸다가 그 전날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들에게 자기 전에 읽어준 그림책이 이 시에 딱 들어맞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첫째가 표지를 보더니 귀엽다고 골라온 책

   애벌레 꼬물이와 지렁이 꿈틀이는 사이좋은 친구인데요.

토실토실

   어느 날 꼬물이가 나무 위 세상이 궁금하다고,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며 나무 위로 올라가기로 해요. 하지만 시원하고 축축한 땅이 좋은 꿈틀이는 남기로 하죠. 꼬물이는 열심히 올라가서 잎을 맛있게 먹고 한잠 자고 나서 나비가 됩니다. 그동안 꿈틀이는 땅 속으로 깊이 내려가서 즐겁게 땅 속을 헤집고 다니지요.


   그러다 서로가 보고 싶어진 두 친구는 각각 다시 땅으로 내려가고, 땅 위로 올라와서 오랜만에 만나게 돼요. 아래 사진이 바로 재회한 두 친구의 모습입니다.

꿈틀이와 비슷해 보이는 제 손가락 무엇…

   친구에게 날개가 생긴 것을 본 꿈틀이는, 함께 올라가서 날개를 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슬퍼합니다. 네가 날개를 다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자기는 그저 흙이나 헤집고 다녔던 기다랗고 퉁퉁한 지렁이일 뿐이라고요.

저 힘없이 처진 대가리(…)가 넘나 귀엽고요.

   하지만 꼬물이는 네가 땅속을 헤집고 다닌 덕분에 흙이 폭신해졌고, 그래서 뿌리가 물을 쭉쭉 빨아들였고, 그래서 나무가 쑥쑥 자라고 잎을 파릇하게 달았고, 그래서 덕분에 나뭇잎을 실컷 먹었다고, 그래서 날개가 생겼다고 말해요. 다 네 덕분이라고, 너는 그냥 지렁이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내 친구라고요.


   참 따뜻한 이야기지요. 네 덕분에 나는 내가 되었어. "네 덕분에 나는 내가 되었어."라고 말하는 꼬물이처럼, 모두가 그곳에 있어준 덕분에 우리가 있는 거겠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최근에 저희 아이가 한국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그림 편지를 썼는데, 나무를 그리고 땅 밑에 지렁이를 열심히 그려놓았더라고요. "지렁이는 왜 그렸어?" 물었더니 "지렁이가 똥을 싸야 나무들이 잘 자라니까, 지렁이가 꼭 있어야 돼!" 하고 답하더라고요. 그 대답을 꿈틀이가 들었다면 좋았겠지요.

짚신벌레처럼 생긴 해님이 매력 포인트...

   19세기 독일 철학자 니체도 《이 사람을 보라》라는 책에서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라는 말로 모든 존재의 필연성을 이야기해요. 세상 만물이 그렇듯, 우리 역시 한 명 한 명 모두 세상에 없어도 좋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작은 힘을 줍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우리 모두가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꼭 쓸모가 있거나 엄청나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두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듯이요.

   올여름쯤에 공저로 나올 책이 한 권 있는데요. “삶에 꼭 필요한 쓸모 한 가지를 내가 이야기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네 명의 저자가 각자가 생각하는 답을 제시하는 책인데, 저는 거기서 답으로 '철학'을 이야기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글의 마지막 부분이 다음과 같아요.

   “삶에 꼭 필요한 쓸모 한 가지를 내가 이야기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네요. 그 답으로 이 글이 철학이라는 선택지에 새발의 피(…의 헤모글로빈…) 만큼의 흥미라도 느끼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흥미를 통해 여러분이 언젠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면 저는 여한이 없겠습니다. “쓸모와 인간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라는. 인간을 쓸모로 판단하고 파악하려는 거대한 움직임에 콧방귀를 뀌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철학의 쓸모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거거든요.


   저는 철학의 쓸모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의 쓸모를 따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인은 말합니다.


   끝없이 자신의 쓸모를

   의구하는 영혼이여


   고갤 들어라

   그대도 오늘 누군가에게 위로였다

    

   제가 앉은 자리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큰 나무 한 그루가 보입니다. 저희 옆집과 그 옆집의 경계에 있는 나무라서 제가 특별히 그 나무 밑에서 쉴 것도 아니고 그 나무의 열매를 취할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 나무가 그냥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 제겐 늘 위로가 됩니다. 우리도 그럴 거예요. 누군가에게는 그냥 존재 자체로 위로일 겁니다. 그러니 쓸모라는 단어를 손에 쥐고 낙담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스스로의 평안을 찾고 타인에게도 평안을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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