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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친구에게 질투를 느낄 때

플라톤과 장자 할아버지가

by 이진민

이모네 철학 상담소 6월호 원고 올려둡니다.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 문단에 모아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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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네 철학 상담소 6월호] 잘 사는 친구에게 질투를 느낄 때: 플라톤과 장자 할아버지가


크고 좋은 집이랑 자동차, 툭하면 떠나는 해외여행... 우리 집보다 잘 사는 것 같은 친구가 너무 부럽고 질투 나요. 이게 잘못된 걸까요?


비교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숙명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함께 사는 이상,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고 비교당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둘만 모여도 당장 생김새와 입은 옷에서부터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부터 눈에 띄기 마련이니까요. 붙어 지내며 일상을 나누는 친구라면 우리가 꽤 다르구나 하는 순간을 종종 만날 거예요.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취미나 취향이, 혹은 경험이나 배경지식이 다를 수도 있지요. 그중에서 유독 질투를 느끼는 부분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 여유의 차이는 하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많은 여러분에게 꽤 민감한 이슈가 될 거예요. 놀러 갔더니 친구네 집에서 막 빛이 나는 것 같고, 우리 집은 맨날 방콕인데 친구네는 방학 때마다 세계일주를 할 기세라면 부럽고 속상할 수 있어요. 질투 때문에 우정에도 금이 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요.


비교로 인한 마음의 고통이라면 여러분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철학자들이 많은데, 특히 돈 때문에 생기는 질투라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가 어떨까 합니다. 플라톤은 부()라는 가치를 목표로 삼았을 때의 문제점을, 장자는 ‘없음’의 쓸모에 관해 알려 줄 거예요. 아니 이렇게 반짝반짝한 게 넘쳐나는 21세기에 기원전 3-4세기의 고대 할아버지들을 모셔 오다니, 그 영감님들이 해외여행과 명품과 맛집에 관해 뭘 알고 조언을 하겠냐고요? 전기차는 고사하고 자동차도 몰랐을 테고, 기껏해야 수레나 타봤을 거라고요? 물론 시대가 다르면 인간의 삶이 다른 틀에 놓이기 때문에 생각의 범위나 감각의 질감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할아버지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 바라볼 가치가 있으니, 여러분도 잠시 두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함께 바라봐 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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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멘토인 고대 할아버지들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사용으로 생기는 우울감을 뜻한다고 해요. 여기에는 알리고 싶고 자랑할 만한 것을 주로 올리기 때문에 그런 것을 누리지 못하는 나, 저런 걸 하지 못하는 내 처지가 한층 또렷하게 비교되지요.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나도 유행하는 비싼 신발 갖고 싶어요!” “우리 집은 왜 해외여행 안 가요?” 여러분이 시위에 나서면 부모님께서 한두 번쯤 들어주기도 할 거예요. 그런데 그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여러분은 그것으로 평생 만족할 수 있나요?


아마 아닐 거예요. 이번에 일본에서 맛있는 초밥을 먹고 귀여운 캐릭터 상품을 잔뜩 사 왔다면, 다음에는 독일(웰컴 투 젊은이! 제가 사는 곳입니다.)에 가서 바이에른 뮌헨 팀 축구 경기도 직접 보고 우리나라에 없는 하리보 젤리만 골라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자랑하고 싶을 거예요. 그다음에는 오로라를 보러 아이슬란드에, 그다음에는 눈앞에 걸어 다니는 코끼리와 코뿔소를 보러 케냐에 가보고 싶겠죠. (상품 수량 충분해요 고객님. 전 세계에는 200여 개국이 있답니다!) 유행은 바뀌고, 신상품은 끊임없이 새로 나타나 우리를 현혹할 겁니다. 작년에 거금을 들여 산 패딩이 올해는 왠지 촌스럽고 뚱뚱해 보이고, 더러워질까 아무 데나 놓기도 조심스럽던 가방은 다른 색상과 디자인이 출시되면서 금세 시들해지고 맙니다. 만족감이 1년이라도 가면 다행이지요. 내가 새 걸 사 온 날 친구가 더 비싼 걸 갖고 나타나면 당장 내 것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물질이 주는 만족감은 너무 짧게 지속되다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는 계속 새로운 것, 더 좋아 보이는 것을 원해요. 돈 걱정 없이 펑펑 쓰는 것 같은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세상에는 더 고급스러운 것, 더 독특한 것이 있을 테니까요. 제가 자주 드는 예지만 VVVIP (a very, very, very important person인데 빅토리아 비빔면 비비빅 1세 같지 않나요.) 눈에는 VIP도 거지일 걸요.


그렇게 조금씩 더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바라던 경험을 하는 것이 삶의 재미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원하는 마음 때문에 늘 고통스럽고 질투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어머 이건 사야 해’ ‘어머 저긴 가봐야 해’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야 할 거예요. 돈은 바라면 바랄수록 불만이 쌓이는 물건입니다. 돈처럼 끝없이 계속 늘어날 수 있는 가치를 바라보고 살면 우리는 틀림없이 불행해져요. 도저히 채울 수도, 따라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지요. 플라톤은 그러므로 계속 변해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가치보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생각해 보자고 합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데아’라는 것이 있어요.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상적이고 완전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관념을 말합니다. 플라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계속 덧없이 변하는 그림자에 가깝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순수하고 영원한,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가치로 눈을 돌려보려 했지요. 이를테면 정의라든가 선() 같은 것 말이죠. 예를 들어 나는 작은 동물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감사와 여유를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가치를 설정하고 추구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돈은 추구할수록 불만과 갈증이 쌓이는 가치이지만, 이런 정신적 가치들은 노력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불만이 폭발하거나 나를 갉아먹을 일은 없습니다. 추구하면 할수록 만족감이 따라오는 가치이기도 하지요.


경제적 여유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려는 건 결코 아닙니다. 돈은 우리 삶의 굉장히 중요한 토대이기도 하거든요. 다만, 돈처럼 우리 욕망이나 본능이 가리키는 것 말고 다른 가치를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런 가치를 추구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면, 돈이 좀 부족하더라도 고통과 질투가 덜 생기거든요. 세상에는 저보다 돈 잘 버는 사람들이 미치도록 많지만, 제가 그들에게 별로 주눅 들지 않는 이유는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것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나를 당당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들어 보세요. 참고로 돈 역시도 그런 정신적 가치와 연결해 두면 훨씬 행복해진답니다. 즉, ‘돈을 벌어서 펑펑 쓰고 싶다’라고 한다면 아까 그 지옥의 다람쥐 쳇바퀴 안에서 뱅글뱅글 도는 삶이 되겠지만,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쓸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사용처에 이데아적 가치를 둔다면 만족감과 행복을 느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있음’만 보지 말고 ‘없음’의 중요성도 느껴보세요. ‘없음’의 철학을 가진 장자는 갈고리를 만드는 포정이라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감탄스러운 장인의 경지에 이른 비결을 묻자, 포정은 스무 살 때부터 갈고리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갈고리에만 집중했다고 답합니다.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쓰이지 않는 것을 빌려서 유용함을 얻는 것입니다.” 즉 하나에 집중하고 다른 데 신경 쓰지 않았기에 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었다는 말이겠죠. 내가 딛고 있는 발 밑의 땅이 유용하다고 해서 다른 땅을 다 파서 없앤다면, 내 발 밑의 땅은 유용함을 잃습니다. 이 세상은 있음과 없음이 고루 공존해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 여백의 힘, ‘없음’의 가능성을 보는 사람이 수많은 물건에 둘러싸인 사람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답니다.


사실 세상에 비교할 건 많고 많은데 집이나 차 같은 물질적 비교에 특히 원망이 쌓이는 까닭은,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부모님 탓을 하기 좋은 부분이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경제활동이 제한되는 여러분 나이로는 어떻게 고쳐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노력 없이 남 탓만 해도 되는 거죠. 또 돈만 많으면 세상 일이 뭐든지 쉬워질 거라는 생각도 한몫합니다. 돈이 많으면 대학도 더 잘 가고, 외모도 더 나아질 수 있고, 인기도 많아질 수 있다고요. 세상이 딱히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원래 다른 사람의 삶은 더 쉬워 보이고 더 좋아 보여요.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들은 그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어요. 저는 최근 ‘흙수저’라는 말에 관해 한 대학생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내가 깊게 뿌리내릴 수 있는 좋은 흙을 부모님께 물려받았으니, 그분들이 기대 쉴 수 있는 큰 나무로 자라고 싶다고 하더군요. 멋지지 않나요? 거기에다 여러분이 공통적으로 물려받은 귀한 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이에요. 이 많고 많은 시간을 잘 가꿔서 나 스스로를 부유하게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이모네 철학 상담소는 식당도 겸업하는데요, 이달의 고민 해결을 도와줄 메뉴로는 '남의 떡'을 골랐습니다. 내 접시에 담긴 떡을 어여삐 바라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사실. 저는 나이가 좀 들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인데, 공감해 준 초등학생 독자들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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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원고인데 늑장을 부리다 보니 추석 부근에 올리게 되어, 마침 갖고 있던 제 접시의 떡 사진을 올립니다. 명절 동안 모두들 달처럼 은은하고 환한 마음이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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