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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도 괜찮을지 자신이 없을 때

에머슨 아저씨가

by 이진민

이모네 철학 상담소 7월호 원고입니다.


[이모네 철학 상담소 7월호] 이런 나라도 괜찮을지 자신이 없을 때: 에머슨 아저씨가


전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아무런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이런 저라도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인가요?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니 진짜로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요? 인간으로 태어나 재능이 없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가진 재능을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지 못할 뿐이에요. 우리에게는 분명 뭔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재능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입니다. 타고난 소질이기도 하고, 연습을 하고 노력을 쌓아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능력이기도 해요. 언어나 스포츠나 악기를 잘하는 것만 재능이 아니라 남의 마음을 잘 읽고 사람을 잘 챙기는 것도 재능이고, 공기놀이를 잘하는 것도, 엄마 아빠가 문 닫고 몰래 끓여 먹는 라면 냄새를 잘 맡는 것도 재능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직업과 연결되거나 돈이 되는 것만을 재능으로 생각하고, 그것도 순위권에 들어야만 안심하곤 합니다. 내가 잘하는 게 있는데도 그걸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거나 순위가 매겨지지 않는 재능을 잘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경향 때문이에요. 우리는 재능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납작하게 인식합니다. 무엇을 좋은 재주와 능력으로 볼지는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인데, 그 합의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너의 재능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나의 재능은 친절이야”, “나의 재능은 어떤 상황에서도 잠을 잘 자는 거야”라고, 재능의 범위를 좀 더 넓고 다양하게 말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저의 재능은 불면증이라는 걸 모르는 것

재능을 인식하는 데 관한 두 번째 어려움은 우리가 놓인 시공간의 다양성 때문에 생겨요. 인류 역사상 프로게이머의 재능을 가지고 고려시대에 태어난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지금도 열대 섬나라에 태어난 관계로 평생 얼음 구경을 하기 힘든 무수한 김연아 선수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재능은 사회적 영향을 꽤 많이 받는 편이에요. 장소에 따라 가능성이 드라마틱하게 제약되기도 하고, 재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엄청난 재능으로 밝혀지기도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컴퓨터 게임이란 건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단순한 오락의 영역(혹은 금지된 영역…)에 있었거든요. 어찌 됐든 사회적 합의에 따른 재능의 리스트는 이렇게 끊임없이 변해요.


재능을 인정받고 거기에 몰입하는 일은 대체로 즐겁고 기쁜 것이기에, 내가 가진 재능을 재능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 혹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양쪽 모두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며 쪼그라드는 어린이들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요, 백 번 양보해서 재능이 없다고 칩시다. 없으면 안 되나요?


그럼요, 재능이 없어도 됩니다. 뭔가 특별히 잘하는 게 없어도 괜찮아요. 시대가 가치를 두는 재능을 갖추었다면 그건 축복이겠지만, 없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여러분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지 꼭 ‘재능을 인정받고 그 재능을 발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재능은 인생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에요. 오히려 ‘재능’이라는 단어에 갇히면 삶이 고단하고 공허해집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재능과 상관없이 삶을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 수 있어요. 여러분이 재능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남의 재능을 질투하며 내 인생을 허비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기고 적은 것을 가지고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재능 있는 인간’보다는 먼저 그냥 ‘인간’이 되는 일이 훨씬 중요해요.


앞서 말한 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회적 합의 때문에 재능은 인간의 능력 중에서 극히 일부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일부의 능력만 가지고 인간이 온전하게 살 수는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영재 소리를 들으며 온갖 수학문제를 척척 푸는 어린이가 친구 사귀기를 극히 어려워할 수도 있고, 이름난 피아니스트가 그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손으로 자기 입에 넣을 변변한 먹을 것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할 수도 있지요. 저는 여러분이 한 가지 능력에 올인하느라 다른 부분을 찌그러뜨리기보다는 인간으로서 필요한 능력과 감정, 태도들을 골고루 갖추고 배워가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사회적 합의에 따른 재능의 리스트는 끊임없이 변한다고 했지요? 어차피 여러분이 살 세상은 (오늘내일하는 이 환경이 허락해 준다면) 현재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찰 거예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한두 가지 능력에 올인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기술들을 든든히 배워두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행복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재능이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해요. 재능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은 자기 몫을 하며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사회가 인정하는 특정한 능력이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불행할 거라는 기괴한 도식(주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공식이죠. 정말 미안해요.)부터 버려야 해요.


많은 이들이 성공을 추구하지만,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입니다. 성장 없이 성공해 버린 사람들은 대체로 아픈 대가를 치르곤 해요. 그런 의미에서 재능 역시 성공보다는 성장과 연결되는 개념이면 좋겠습니다. 할리우드의 전문가 50 퍼센트가 당신은 재능이 없으니 포기하라고 한다면 뭐라고 할 것이냐고 묻자, 20세기 대중문화를 대표한 유명한 미국 배우 마릴린 먼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해요. “설사 100 퍼센트가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해도, 그들 모두가 틀렸을 수도 있잖아요.” 재능이 전문가의 진단이나 사회적 합의의 영역에 있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멋진 대답입니다. 전설적인 밴드 비틀즈의 존 레논도 20세기 러시아 문학계의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막심 고리키도 입을 모아 말했어요. 근본적인 재능은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도 사람의 운명은 재능 부족이 아니라 희망의 부재로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꼭 말하고 싶어요. 뭔가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잘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재능은 능력보다는 신념에 가까운 것이니 자신을 믿어 보라고, 그렇게 차근차근 성장해 가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온화해 보이는 에머슨 아저씨

마지막으로 아껴 두었던 19세기 미국 철학자이자 문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이야기 두 가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에머슨은 “내가 자신감을 잃는다면, 온 우주가 나를 반대하는 삶을 사는 셈이다.”라고 말해요. 그러니 ‘나에 대한 나의 믿음’이 ‘나를 향한 너의 의심’보다 강하다는 생각으로 어깨를 폈으면 좋겠습니다. 또 에머슨은 이렇게 말해요. “당신의 행동에 너무 자신 없어 하거나 소심해지지 마세요. 모든 삶은 실험입니다. 더 많은 실험을 할수록 더 나아져요.” 에머슨의 말처럼 잘못이나 실수, 실패가 모여서 나를 더 근사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믿으면 좋겠습니다.


“베어내자니 풀 아닌 게 없지만 두고 보자니 모든 게 꽃이다”라는 말이 있더군요. 여러분 모두 이 세상에 만발한 꽃입니다. 눈에 띄게 화려한 꽃만 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을 필요는 없어요. 어른들이 이상한 잣대로 여러분을 다듬고 베어내려고 해도, 튼튼하고 싱그러운 꽃으로 크면서 부디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모네 철학 상담소는 식당도 겸업합니다. 이달의 고민을 도와줄 메뉴는 김에 싸서 먹는 김밥, 그리고 원고의 계절감을 맞춰 골랐던 수박입니다. 화려한 재료 없이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게 만드는 김밥, 그리고 사람들이 과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채소인 수박. 어린이들이 재능이나 능력 같은 말들에 주눅 들지 않고, 남의 말에 크게 휘둘리지도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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