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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아는 일

데미 『빈 화분』

by 이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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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문화면 '이진민의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 열한 번째 글입니다.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으로 두 검찰 수사관의 청문회 소식이 연일 정치면 뉴스를 도배하던 때에 썼던 글로, 9월 19일 자 신문에 실렸습니다. 제목은 늘 신문사에서 손봐 주시고,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은 제가 붙인 원제목으로 갑니다.

Screenshot 2025-09-23 at 11.07.53.png 기억나시나요

뻔한 거짓말이 생중계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통쾌하기보다 괴로운 일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지금 저 속이 얼마나 타고 있을까, 저들을 저 자리에 앉혀 둔 사람들의 속이 비슷하게 문드러지고 있긴 할까, 그래도 우리나라는 의료 서비스 수준이 높으니까, 뭐 이런 후진 생각을 하며 오가는 말들을 듣고 표정을 살핀다. 누가 칭찬해 주는 것을 못 견디는 지병이 있는 자로서 그래도 스스로 칭찬할 만한 점이 있다면, 평생 악의로 누군가를 해하려고 속인 적은 없다는 것이다. 실수는 이를테면 불수의근의 영역이지만 거짓말은 수의근의 영역이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실수는 나중에 깨닫는다. (물론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거짓말은 하면서 내가 안다. 애초에 없앨 수 있는 영역이다.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므로 단련하면 좋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글라우콘이 소크라테스에게 공손히 묻는다. 바르지 않게 사는 쪽이 더 이득이 될 때가 많고, 세상 사람들은 올바름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생기는 평판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냐고. 여기에 답을 하느라 소크라테스는 굽이굽이 대화의 길을 돌아 후대 인류에게 벽돌책을 선사한다. 내 뱃살보다 두꺼운 이 벽돌책이 부담스럽다면 중국 옛이야기에 아름다운 동양풍 그림을 더해 만든 은은한 그림책 <빈 화분>이 어떨까.

Screenshot 2025-09-23 at 11.23.51.png 문제의 그 벽돌책


임금님이 나라 안의 모든 어린이에게 꽃씨를 나누어 주고, 한 해 동안 가장 잘 가꾼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했다. 꽃을 무척 사랑하고 마치 요술 부리듯 식물을 쑥쑥 키워내는 핑은 씨앗을 화분에 심고 온갖 정성을 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싹이 돋아나지 않았다. 이듬해 봄이 되어 온 나라의 아이들이 예쁜 꽃 화분을 안고 궁궐로 가는데 핑은 빈 화분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너무 부끄러웠고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임금님은 뜻밖의 사실을 말한다. 나눠 준 씨앗은 모두 익힌 씨앗이라 싹이 날 리가 없다고. “빈 화분에 진실을 담아 내 앞에 나타난 핑의 용기는 높이 살 만하다. 이 아이를 왕으로 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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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데 은은함'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저는 이 책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IMG_8707.HEIC 핑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빈 화분이 제 정성이옵니다."


핑은 마음을 비우고 빈 화분을 가져갔다. 그 안에 정성과 진실, 그리고 용기를 담았다. 빈 화분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찬 화분이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욕심과 거짓을 담은 화려한 화분을 가져갔다. 실은 껍데기만 요란한 빈 화분이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정작 남은 게 없어 빈 화분 같은 내 인생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화분은 빈 것이 아니라고. 누구에게나 떳떳하고 당당한 삶보다 가치 있는 게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혼이 노예 상태에 있지 않은 삶.”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를 얻어 세간의 부러움을 사는 삶이라 해도, 가슴에 심은 거짓의 씨앗에서 평생 불안이 무럭무럭 자라고 수치가 꽃을 피우는 삶이 녹록할 리 없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빈 화분에 실망한 핑에게 아버지가 건네는 말이다. “정성을 다했으니 됐다.” 나만 호구 잡히는 것 같고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나쁜 마음 먹지 않고 정성을 다했다면 됐다. 텅 빈 화분보다 더 실망스럽고 더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박완서 선생은 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윤동주 시인을 강사로 모시는 상상을 해본다. 그게 가르쳐서 될 일이면 좋겠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196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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