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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나에게

아리스토텔레스와 러셀 아저씨가

by 이진민

이모네 철학 상담소 8월호 원고입니다. 여름방학은 좀 놀아도 좋은 시간이죠. 게으름을 극복하는 것도 좋지만, 어린이들이 잘 놀고 잘 쉬면서 한껏 게을러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썼습니다. 막상 저는 이 글을 쓸 때 도서전 참석 건으로 한국에 가서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다녔네요. 하루에 일정을 다섯 개씩 잡아서 돌아다니던 그 시간도, 지나고 나니 그립습니다.


[이모네 철학 상담소 8월호] 게으른 나에게: 아리스토텔레스와 러셀 아저씨가


방학이라 팡팡 논다고 부모님께 혼났습니다. 생활 계획표는 이미 못 지킨 지 오래됐고요. 게으름을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요?


날이 더워서 시계도 잠시 쉬어 가고 싶은 8월입니다. 모두들 방학을 즐겁게 보내고 있나요? 방학은 놓을 방() 자에 배울 학() 자를 씁니다. 원래 배움을 잠시 놓고 느긋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시간이지요. 그러니 조금은 여름날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어도 괜찮습니다. 생활 계획표라는 것은 원래 태극기의 건곤감리처럼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네 글자가 네 귀퉁이에 아련하게 박히는 물건이죠.

작은삼촌 의문의 1패

작심삼일은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그 결심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새해 결심이나 방학 생활 계획표 같은 것에 슬쩍 들러붙어 우리를 침대로, 혹은 게임기 앞으로 향하게 조종하는 고대 주술 같은 것이지요. 우리 선조들도 얼마나 게을렀으면 이 말이 사자성어로까지 만들어졌겠어요? 실은 여러분의 엄마 아빠도 모두 이 주술의 영향력 아래 살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게으르게 지내다간 개학날에 과거의 나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을 것 같다고요? 여러분이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어린이라서 다행입니다. 맞아요, 할 일을 미루고 또 미뤄서 쌓아 놓다 보면 어느새 무거운 돌탑이 되어 우리를 짓누르지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느니 꼭 해야 하는 일들은 조금씩 해 두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아요. 오늘은 끝없는 게으름에 제동을 걸고 작심삼일의 주술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관해 고민해 볼까요?


철학자 중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는 18세기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유명합니다. 얼마나 규칙적이었냐 하면 칸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시간을 알 정도였다고 해요. (한스야, 저 양반이 지금 지나가는데 우리 집 시계가 시간이 안 맞나 보다!) 저는 여러분이 이렇게까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사는 것보다는, 고무줄처럼 당기면 좀 늘어나더라도 탄력 있게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칸트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들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칸트가 우리 집에서 300m 떨어져 있을 때의 시각을 구하시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과 정치학, 시학, 미학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데, 무엇보다 서양 윤리학의 큰 산 같은 인물이에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되어 타인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관해 고민했지요. 윤리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기원전 4세기의 책이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좋은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미덕과 피해야 할 악덕을 살펴보곤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중에서 여러분에게 특히 들려주고 싶은 건 “어렸을 때부터 좋은 습관을 들였는지가 사실 모든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에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의 그리스 버전인 이 말을 여러분이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습관은 내가 엄청나게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내 몸에 착 붙어 있다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작심삼일’보다는 ‘평생’과 더 가까운 말인 거예요. 그리스어로 미덕과 습관은 어원이 같아요. 미덕은 습관에 의해 생기고, 습관이 미덕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죠.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그걸 습관으로 만들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들인 습관이 평생 내 몸에 붙어서 앞으로의 내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다니, 지금부터 좋은 습관을 만들어두면 참 좋겠지요? 그런데 좋은 습관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Aristotle (기원전 384-322) ©강서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中庸)에 주목하면 좋을 거예요.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그야말로 적당한 상태죠. 여러분의 고민을 예로 들어 볼까요? 하루 종일 접착제로 침대에 붙여 놓은 것 같이 심한 게으름도 있고, 반대로는 지나치게 긴장한 상태로 전력을 다하느라 과하게 몸을 혹사하는 조급함도 있을 거예요. 그 사이에 어딘가 적당히 부지런한, 딱 좋은 지점이 있겠죠? 그게 바로 중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꼭 평균을 잡아서 중간 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중용을 이루는 지점이 다 다르다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기본적으로 부지런하고 성취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성향이라면 공부나 업무 시간이 남들보다 좀 많아도 괜찮겠고, 반면에 여유를 좋아하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너무 괴롭다면 나에게 맞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할 일들을 차근차근 해내면 좋겠죠.


그런데 이런 중용이란 누가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해 보면서 찾는 거예요. 시간을 두고 오래 탐색하면서 적절한 중간을 끊임없이 연습해야 생겨나는 ‘감’ 같은 것이죠. 또 그 적절한 지점은 살면서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을 타파하는 첫걸음은,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내 상황을 감안해서 뭔가를 시도하는 거예요. 잘 안 되더라도 괜찮아요. 작심삼일이 세 번이면 벌써 열흘 가까이 뭔가를 부지런히 했다는 말이잖아요. 부지런함이라는 미덕을 갖고 싶다면, 부지런함을 습관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구해 보는 겁니다.


내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작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저 같은 경우에는 팔에 군살이 많아 고민이었는데, 하루에 팔 운동을 매일 15분씩 한다든가 아령을 몇 번 든다든가 하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어요. 대신에 요리를 할 일이 많다는 제 상황을 감안해서, 냄비에 재료를 넣고 5분이나 10분쯤 지켜보며 가끔 저어줘야 하는 시간을 활용해 그냥 맨손 체조를 하는 습관을 붙이기로 했지요. 지금은 재료를 넣고 뚜껑을 덮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팔을 양 옆으로 쭉 펴는 습관이 붙었어요. 운동이 몸에 익으니 세트 수를 점점 늘리는 것도 가능해졌죠. 무리다 싶으면 다시 조금 후퇴하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양치를 할 때 스쿼트 하는 습관도 새로 붙였어요. 칫솔을 입에 넣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잡고, 칫솔질을 하면서 30번 정도 천천히 스쿼트를 합니다. 여러분이 게으름을 타파하고 싶다면 이렇게 관련된 부분에 작고 하찮은 습관을 붙여두고, 중용을 생각하며 점점 나에게 적절한 지점을 찾아 몸에 익혀 보세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게으름에 관해서는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게으름과 여유를 꼭 구별하라는 말이죠. 우리는 ‘빨리빨리’의 사회에서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며 살고 있어요. (한국은 심지어 국가 번호도 빨리(82)입니다!) 수학자이자 역사가, 운동가이며 심지어 1950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던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에세이를 남겼습니다. 게으름을 절친으로 삼는 친구들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이죠? 하지만 정말 게으름을 찬양한다기보다는, 열심히 일하고 정신없이 공부하는 것만이 지상최대의 과제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는 내용이에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선한 마음과 좋은 행동은 이 악물고 힘들게 분투하며 사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러셀은 생각했어요. 그러므로 인간이 자유롭게, 나답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쳇바퀴 속으로 거칠게 등 떠미는 사회적 압력에서 비껴 나 다소 게을러질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죠.

Bertrand Russell (1872-1970) ©강서해

저는 여러분이 속도에 휩쓸려 여러분의 반짝반짝한 생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단거리로 낭비 없는 시간만 보내고 있으면 그 사람은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형적으로 가늘어지거든요. 조금은 천천히 가도 좋으니 꾸준하게만 해 보세요. 게으름과 꾸준함은 함께 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작심삼일을 열 번 꾸준히 하면 한 달을 부지런히 살 수 있는 거예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중용을 생각하면서, 평생 가져갈 좋은 습관을 오늘부터 꼼지락꼼지락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이모네 철학 상담소는 식당도 겸업합니다. 이달의 고민을 도와줄 메뉴로는 그야말로 중용의 맛, 웰던(well-done)도 래어(rare)도 아닌 미디엄(medium)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골랐어요.


<열두 달 철학 상담소>가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요즘 이 책 칭찬이 쏠쏠히 들려와서 수줍고도 기쁜 저자입니다. 이 책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아니 왜요...) 독자도 계시고요. 사진은 지난여름 한국에 갔을 때 핸드메이드 제작으로 선물 받은 수첩입니다. 받는 순간 돌고래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아직도 아까워서 못 쓰고 있어요. 자자자자자자랑이 하고 싶었습니다.

엄마랑 아기가 커플룩 입은 것 같다

전자책 구매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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