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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꽃 May 04. 2021

용기있는 연대

교장의 권력이 학교문화에 미치는 영향

담임선생님들께 안내 드립니다.
예년보다 신청자가 많아 <우유 급식 신청 여부>에 관한 조사를 한 번 더 합니다.
이번엔 부모님 동의서도 잊지 말아 주세요.  


벌써 4번째다. 담당 선생님을 통해 내린 교장의 지시. “똑같은 일을 4번이나 하라니, 담임들이 무슨 봉이냐” 교무실에 담임들은 드디어 짜증이 폭발했다. 2019년 4월 K고등학교에서는 부모 동의서까지 받아 우유 급식 신청을 4차례나 조사한 결과, 1020명 중 40%가 넘는 아이들이 찬성했다. 일을 추진하려는데, 교장이 돌연 결과를 뒤집었다. ‘식중독 위험’ 때문이라고 했다. 몇 주간 일을 계획하고 추진한 담당교사, 4차례나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 조사하고 결과를 집계해 보고한 담임교사, 조사에 응한 아이들, 동의한 부모들. 이들의 노동은 교장의 몇 초짜리 말값만도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 뿐 아니라 민주적인 소통과 의사결정이 교장의 말 한마디에 짓밟히고 있다. 아이들이 물었다.   


“그럴 거면 왜 조사했어요?”


K고등학교의 벚꽃은 여의도 윤중로가 울고 갈 만큼 눈부셨다. 벚꽃 가득한 학교 앞 사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흐드러졌다. 아이들은 꽃이며 시며 친구와 학교를 좋아했고 순했다. 그 학교의 이런 날들은 한해 한해 쌓여 전통이 되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벚꽃 사진을 찍으려면 출장을 달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어 왔다.


벚꽃 사진을 찍으실 선생님들은 단 20분이라도 출장을 달고 나가셔야 하며, 점심시간에 뒷산에 오르려면 외출을 다셔야 합니다.


업무를 하다말고 메신저를 들여다보던 그(41세, 여)는 또 가슴이 복닥였다. 아이들은 벚꽃 사진은 언제 찍느냐 목이 빠져 있는데 날아온 메신저를 보니 딱 나가고 싶지 않아졌다. 학교의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없던 벚꽃 출장에 교무실에서는 당황스러운 분노가 얽히고설켜 웃음이 터져버렸다.


“푸하하하. 이젠 하다 하다, 교문 앞에 나갈 때도 교장한테 허락을 받아?”

“왜들 그랴! 화장실 갈 때도 교장실 앞에서 줄 서서 허락 받고 가들!”

“에이 난 안 나갈란다. 귀찮다.”


겉으론 호기롭게 웃고 떠들었지만 속으론 대부분 갈팡질팡 망설였다. 그도 망설이고 있었다. ‘애들이 저렇게 목을 빼고 기다리는데…….’ 그는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출장 20분을 달았다. 출장을 달고 나니 궁금해졌다. 교장도 매일 점심시간마다 교문 밖 뒷산을 가는데 외출을 달까? neis에서 일일 근무상황을 살펴보니 점심시간 외출은 어느 날도 없었다. 그는 한 달 전 학부모 총회 날이 떠올랐다. 교사들이 하루 종일 수업에, 총회 준비에 종종거리고 있을 때, 교장은 미용실에서 한나절이나 꽃단장을 하고 왔던 날.   


이 교장이 오기 전 교장은 교사들의 생일이면 조용히 불러 상품권을 주며 짧은 덕담을 건넸을 뿐 퇴임 때까지 학교 일은 교사들에게 모두 맡겼다. 다음 교장은 시를 사랑했다. 아침 일찍 교문 앞에서 아이들에게 그날의 시를 나눠주며 학생들의 인문학적 감수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신뢰와 감사로 교사를 대했으며 교육활동은 무엇이든 지원했다. 인근에서 유일하게 방학 중 근무조 및 보여주기용 행사나 불필요한 학교 관행들은 없애고, 잔소리도 없앴다.   


교장이 수직적 통제 권력을 버리니 수평적 소통과 신뢰 구조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권력은 권한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각자의 영역으로 분산된 권한은 자율성과 헌신, 그리고 책임감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시행착오와 진통도 있었지만 K고등학교도 그랬다. 처음엔 형식적으로 했던 학교 안 자율적 교사공동체인 전문적학습공동체가 해가 쌓이면서 진정성있는 교사 모임으로 거듭났고 전체 교사의 70%가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덕분에 교사들 사이에는 신뢰하는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교육과정은 충실하고 풍성했으며 형식적이었던 각종 협의회의 결정에 교장이 힘을 실어주자 점차 학교 운영시스템에서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가 정착되었다. 그러면서도 바쁘지 않고 여유로웠다. 불필요한 걸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유독 그 학교에는 10년 가까이 오래 근무하는 교사와 다른 학교에 갔다가도 잊지 못해 돌아오는 교사가 많았다. 학생들처럼 교사들도 학교에 가는 게 좋았다. 그 학교의 모습은 혁신학교의 지향점 같았다. 혁신학교는 민주적 자치공동체와 전문적 학습공동체에 의한 창의지성교육을 실현하는 공교육 혁신의 모델학교이다. 이는 우리 공교육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개혁적 교육모델을 통해 해결해가려는 혁신적 교육운동이자 사회운동이다. 그 학교는 혁신학교는 아니었지만,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며 만들어진 진짜 혁신학교였다.  


2018년 봄, 그 학교에 새 교장이 왔다. 교장의 언어에는 존중이 없었다. 회의 시간에, 자리에 없는 실무사의 실명을 들먹이며 일도 못 하는 게 사람도 별로라며 흉을 봤고 자리에 있는 교감은 무능하다는 식으로 몰아세웠다. 본인과 다른 의견은 튕겨냈고 간혹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주특기는 결정한 일 뒤집기와 문서 반려. 인사위에서 결정한 초빙교사를 결국 본인 마음대로 바꿔버렸고, 교장의 결재를 얻고 물품을 샀는데도 몇 달 뒤에 그걸 도로 반려해버렸다. 그리고선 당사자를 불러 나무랐다. 당사자는 사비로 다 토해내야 했다. 동아리 발표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연말에 다시 하라고 들쑤시는 바람에 동아리마다 없는 돈을 끌어와 발표회를 준비하느라 야단법석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하지 말라 했다. 구두 결재를 받으러 교장실에 들르면 바빠서 헐떡대는 교사들을 붙들고 자기의 옷과 스카프 취향을 자랑하거나 수술을 하며 힘들었던 사연들을 늘어놓았다. 그걸 잘 들어주고 나야 결재해주니 교사들은 꼼짝없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듣고 있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수다를 잘 들어주고 치켜세워주는 교사를 훌륭하다며 오른팔로 삼고 그들의 의견을 중시했다. 교무회의 시간에 제자를 불러 보험 설명을 하게 했으며, 행사 때 쓰려고 사둔 떡이며 과일이며 과자들을 굳이 접시에 받쳐 교장실에 들여놓지 않으면 실무사와 담당 교사에게 노발대발 역정을 냈다. 부활된 방학중 근무조에 교사들이 나오면 교장실로 인사를 드리러 오게 시켰다. 입시위주가 아닌 수업은 아무리 좋은 수업 모델이라도 불러서 집요하게 나무랐다. 교사들은 상처받고 시들어갔다. 간섭이 싫어지니 수업은 예전 방식으로 돌아갔으며 전학공도 시들해졌다. 보여주기 행사를 준비하는 건 흥이 나지 않아 힘겨웠다.


사태 해결을 위해 궁리하며 사례를 모았으나 교사의 1/3이 학교를 떠나면서 주춤해졌다. 남은 교사들은 학교의 중심에서 빗겨나 교장과 마주치지 않을 일들을 택함으로써 교장을 떠났다. 그러나,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가 단박에 깨지는 모습이나, 입시 위주로 수업이 흘러가는 과정을 맥없이 지켜봐야 했다. 방학 중 근무조가 부활된 일이며 슬금슬금 형식적 관행과 의전, 보여주기식 행사가 생겨나는 일이며 독단적 운영 시스템이 밀고 들어오는 일을 그저 경험하고 있어야 했다. 한 사람의 교장이 가고 한 사람의 교장이 왔을 뿐인데 그 학교는 달라졌다. 한 사람에 의해 많은 것이 순식간에 달라진다면 학교라는 조직의 시스템엔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이것은 교사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절대 권력이 빚어낸 참극이며, 교사 승진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한쪽에서는 민주적 공동체로서 미래를 준비하는 혁신학교를 일궈가고 있는 시대에, 한쪽에서는 수직적 관료 문화, Top-down 방식의 독단적 학교 운영 시스템이 곳곳에 뿌리 깊다.


교장의 독단적 권력이 갖는 폐해는 K고등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학교에서는 교사가 교실에 물을 들고 들어간다며 교장실에 불려갔고, 긴 외투를 입었다며 복도에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야단을 맞았다. 교무실에서 교사가 실무사와 이야기를 나눈다며 실무사 자리를 구석으로 빼버렸다든가 장애인 주차구역을 교장의 주차구역으로 마음껏 활용한다는 등 자잘하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크고 엄청난 비리까지. 교장의 권력 남용 사례는 여전히 차고 넘치는데, 교사들이 이에 맞서 대응한 사례는 흔치 않다. 얼마 전 행정실 직원에게 '능력 부족이다. 그만둬라. 바로 서 xx야.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야'라며 볼펜을 집어 던지는 등 갑질 언행을 일삼은 경남의 한 초등학교의 A 교장을 경남교육노조가 “권한을 남용한 A 교장을 중징계하고 유사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일벌백계하라"고 경남교육청에 요구한 일이 있었다. 전남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1년 넘게 학교장으로부터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교사 전원이 이를 폭로하고 나섰다. 그들은 “그동안 우리가 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지 않아 문제가 누적되고 커졌다며 이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고 밝혔다. 용기 있는 교사들의 연대가 빛나는 사례다. 교장의 절대 권력이 분산되고 민주적 학교문화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승진제도와 학교 시스템을 체질부터 바꿔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사들의 연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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