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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onde Mar 22. 2022

제갈량의 북벌 (5) - 진창 공성전과 3차 북벌

제갈량의 세 번째 북벌

오나라 초대 황제, 손권


진창성 공략의 목적



  228년 가을. 학소는 소수의 병력으로 진창성 방어에 성공하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한다. 2차 북벌의 목표였던 진창성은 끝내 수비에 성공하며 제갈량을 좌절시킨다. 제갈량은 비록 북벌에는 실패했지만 사실 진창성 공략엔 많은 이점이 있었다




1. 오나라 방면으로 집중되어 있는 위의 병력은 서부전선으로 가져온다.

  위나라의 대오 방면 지휘관 조휴가 오나라에게 연이어 패전을 겪자 위나라는 오나라에 대한 방어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서부 전선의 병력을 오나라로 돌린다. 제갈량은 오와의 동맹 강화를 위해 동오에서 군대를 일으키자 이에 호응한다.


2. 최우선 패는 여전히 농서-옹주 방면이지만 패를 공개할 생각은 없다.

  제갈량은 여전히 농서-옹주 방면의 지배권 확보 없이 장안성을 공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창성은 수비적 이점은 크지만 공격자 입장에서는 큰 이점은 없다. 그냥 정복해야 할 수많은 선택지 일 뿐 중 하나다. 진창성 하나 얻는다고 장안으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본래 목적을 숨기는 용도로 사용한 것뿐이었다. 위나라가 진창성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는 사이 촉의 주 전력은 옹주 공략에 투입할 생각이었다.


3. 공격을 빌미로 잔도를 정비해 후일을 도모한다.

  1차 북벌 당시 조운이 잔도를 불태워 북벌 경로가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 계속 잔도를 복구했는데, 위나라까지 가는 길에 대한 잔도 복구를 위해 대대적으로 군사를 몰고 올라간다. 이 잔도가 훗날 북벌을 하는데 소중한 길로 쓰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물론 2차 북벌을 단순히 기만책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제갈량은 진창성을 실제로 공략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 진창을 무너뜨려도 좋고, 실패하더라도 위의 이점을 가져가려는 생각이었다. 얻으면 더욱 좋고 못 얻어도 나쁘지 않으니 나름대로의 리스크 관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조진이 제갈량의 의도대로 진창성에 대한 방비를 더욱 강화한다. 위나라 황제 조예 역시 서부 전선 강화를 위해 장합을 다시 불러들였으니 얼마나 제갈량의 북벌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은 제갈량집에 기록되어 있는 오나라의 모사이자 그의 형 제갈근과의 서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양소곡은 산세가 험하고 물줄기가 얼기설기 흐르고 있어 행군하기에 어려운 곳이지만, 지난날 순찰병들은 이 험한 오솔길을 통해 드나들었습니다. 이미 전군을 파견해 돌을 깨고 나무를 베어 길을 닦게 함으로써 대군이 진창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적군의 역량을 완전히 견제할 수 있으므로, 저들이 군사를 나누어 동쪽으로 진군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 제갈량 문집




  문집의 내용을 보자면 앞서 언급한 제갈량의 목적이 잘 들어가 있다.



무도, 음평 군 위치 (제갈량의 3차 북벌)


3차 북벌



  2차 북벌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229년 봄. 제갈량의 3차 북벌의 시작된다. 제갈량은 우선 진식을 상대로 무도, 음평 두 곳을 정벌하도록 한다.

  그사이 진창성을 지키고 있던 학소는 조예의 눈에 들어 그에게 칭찬을 하사하기 위해 수도 낙양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낙양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럽게 병사하면서 위나라의 인재 학소가 세상을 떠난다.


  무도, 음평 지역은 위나라의 지역이기는 했지만 지배력이 상당히 약했다. 이민족인 강족과 저족이 위치하고 있어 위나라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지역이었다. 게다가 한중과 가까워 수비하기에 불리한 위치였다. 이전부터 위나라는 사민 정책을 통해 실리적인 이득을 취하려 했다. 제갈량은 두 곳이 지배하기 쉽다는 이점을 활용해 진식으로 하여금 공격하게 했다.

  무도와 음평이 촉나라 손에 들어간다면 옹주와 서량의 중심 도시인 천수와 농서군이 촉나라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되며 곧바로 위수 강변 지역을 경계로 삼을 수 있다. 더군다나 제갈량이 그렇게 좋아하는 기산 루트에 대한 활용도가 높아진다. 기산으로 보낸 원정군이 한중에서부터 보급을 받으면 보급선이 길어진다. 하지만 무도에서 기산은 코앞이다.


진식 (출처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상규 태수 곽회는 이 소식을 듣자 곧바로 대군을 이끌고 무도와 음평으로 향한다. 위나라 입장에서도 무도를 지배하고 있어야 한중과 동시에 촉의 수도인 성도로 향하는 길목인 검각을 향하는 경로를 만들 수 있다. 곧바로 제갈량은 곽회의 대군을 견제하기 위해 수만의 군대를 이끌고 간다.


  그러자 곽회는 무도와 음평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곽회가 정면 전쟁을 피한 이유는 굳이 승산이 높지 않은 전투였는 데다가, 무도 음평이 지리적 이점은 있지만 수비하기에 용이하지 못한 지역이다. 따라서 오히려 천수-농서를 비롯한 위서 지방의 수비를 강화하는 것이 촉나라 군대를 막는데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결국 3차 북벌은 진식의 무도-음평 정복 성공으로 끝나 다소 허무하게 종료된다.


  그래도 촉 입장에서는 향후 북벌을 위한 확실한 전선을 구축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촉 입장에서는 이제 양주-옹주를 비롯한 위수 지역을 사정권 안에 두게 되었다. 위나라 역시 지리적 이점은 손실했지만, 위수 방면에서 군대를 막든 수비 전략을 구축한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양측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큰 전투 없이 종료된 3차 북벌이었다.



기원후 262년 위촉오 세력도 (출처 : 위키 백과)


손권의 칭제와 위의 반격


  오나라의 왕 손권은 촉, 위와 달리 칭제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황제와 다름없는 수준의 권력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나라 황제 헌제로부터 권력을 양위받은 위나라와 한 황실 가문 출신의 유비가 세운 촉나라처럼 명분이 딱히 없는 입장이라 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칭제가 늦어진 것이다.

  촉나라에서는 손권의 칭제를 곱게 볼리 없었다. 촉은 한나라의 정통성을 주장한 데다가 유비를 죽인 원수가 바로 오나라다. 하지만 제갈량은 실리적 관점으로 오나라의 칭제를 묵인한다. 진진을 오나라에 보내 칭제를 축하하는 친서를 전달하며 양국의 동맹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한다. 이미 이릉에서 위나라와 오나라를 동시에 상대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던 제갈량이었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제갈량은 명분 따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위나라에 집중한다.



조휴 (출처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그렇게 1년이 흐른 228년. 위나라 2인자와 다름없던 대오 방면 지휘관 조휴가 사망했다.  


  조휴는 비록 석정 전투의 패전이 부각되어 무능한 장수로 오해할 수 있지만 나름 준수한 무장이었다. 다만 말년의 행적은 분명 좋지 못한다. 석정 전투에서의 오판으로 인해 위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예주자사 가규가 그를 구하러 왔다. 하지만 가규와 조휴는 평소 사이가 매우 좋지 못했다. 위 초대 황제 조비의 총애를 받은 조휴는 조비가 가규의 능력에 대해 묻자 리더십이 부족하다며 비판한 이력이 있다. 그 일화를 조비가 그대로 가규에게 전해버렸다.

  평소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한 조휴는 가규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사실에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다. 패배 이후에 황제 조예는 그를 달래기 위해 큰 상을 내렸는데 이 행동마저 조휴의 자존심에 다시 한번 상처를 주게 되고 곧이어 사망하게 된다.


  조휴가 죽자 대사마 자리는 대촉방면 지휘관 조진이 차지한다. 그리고 조진이 원래 있었던 대장군 직책에는 바로 사마의가 오르게 된다. 대사마 조진은 자신의 이름을 알림과 동시에 조예 역시 무도와 석정에서 한 번씩 촉과 위에 당한 수모를 되갚아줄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조진이 조예에게 촉나라 선제타격에 대한 전략을 제출하고 이를 승인하며 위나라의 대촉 공략이 시작된다.


  석정 전투 패전으로 시작된 스노우 볼이 위의 촉나라 대규모 원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제갈량에게 맞고만 있을 위나라가 아니었다.


  드디어 230년 여름 대군을 이끌고 촉나라 정벌군을 마련한다. 총사령관은 대사마 조진, 그리고 대장군 사마의와 거기장군 장합을 필두로 한 촉나라 원정군이 드디어 출발한다. 위나라의 반격의 시작이었다.




P.S.

최대한 정사 삼국지를 기반해 작성했으나 서기 200년대의 자료가 희박해 작가의 해석과 '삼국지연의'의 스토리를 포함되었습니다.

당대 인물들에 대한 이미지 자료가 희박하여 '코에이(KOEI)'사에서 개발한 '게임 삼국지' 시리즈의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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