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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onde May 24. 2022

제갈량의 북벌 (10) - 제갈량 사후의 촉

위연과 양의의 죽음, 그리고 제갈량 사후의 촉


오장원의 현재 전경


위연과 양의의 죽음



  위연은 먼저 촉나라로 돌아왔다. 촉에 와 제정신을 차려보니 큰일 났다. 본국에 장수와 군대가 먼저 왔지만, 아직 본대는 오지 못했다. 본대는 자신이 태운 잔도 때문에 퇴각이 지연되고 있었다. 홧김에 질러버린 일이라 뒤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명백한 반역이다. 위연은 앞뒤 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전장에서 자주 이겼지만 지금처럼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아무리 자신에게 승상의 죽음을 공유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분명한 반역이다. 졸지에 역적으로 몰릴 위기에 몰렸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위연은 상소를 올린다. 양의가 촉을 배신하고 위에 귀의하려 하여 잔도를 불태웠다는 상소를 유선에게 올린다.

  동시에 양의는 유선에게 위연이 위나라에 배신하여 촉나라 병사들이 퇴각하지 못하도록 잔도를 불태웠다는 상소를 올렸다. 성도에 있는 유선은 두 개의 상소를 동시에 받았고 이 문제를 장완과 함께 논의했다. 장완은 위연과 양의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분명 위연이 홧김에 잔도를 태우고 퇴각했을 것입니다. 둘은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헐뜯곤 합니다. 마대로 하여금 위연을 잡아야 합니다.




  그사이 강유의 명령으로 길을 찾고 있던 왕평이 드디어 촉으로 가는 통로를 열었다. 샛길을 뚫고 산을 넘어 간신히 한중으로 돌아왔다. 왕평은 곧장 먼저 도착한 위연의 부대가 마주친다. 분명 위연의 군대가 더 강력했기에 그대로 맞붙었다면 왕평의 군대가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 샛길을 열기 위해 이동한 병력이었기에 정말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왕평은 앞장서서 위연의 군사 앞에서 소리쳤다.





같은 촉나라 군대끼리 싸우자는 것이냐? 아직 승상의 시체가 식지도 않았다. 그런 와중에 너희들은 잔도를 불태우고 퇴각했다. 내가 직접 위연 장군과 얘기해보겠다.




  그렇게 말하자 위연의 병사도 같은 촉나라 병사 끼리 싸우고 싶지 않았다. 위연의 부대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위연의 측근을 비롯한 소수의 병력만 남았다. 그리고 곧바로 장완의 명령으로 출격한 마대의 군사가 도착해 위연의 반란군을 토벌한다. 위연은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도망쳤지만 결국 마대의 끈질긴 추격 끝에 사로잡히고 만다. 촉나라 최고 무장의 마지막 커리어는 처참했다.



드라마 삼국지에서의 제갈량


  왕평과 마대의 활약으로 위연의 반란은 일단락되었다. 왕평이라는 장수에 대해 잠시 알아보면, 그는 촉한의 부장으로서 궂은일을 도맡아 일한 장수다. 문맹 출신이던 그는 상당한 능력을 발휘해 지휘관에 올랐다. 본래 위나라 소속이던 그는 한중 공방전에서 촉나라에 귀의한다. 이후 능력과 공적을 인정받는다. 주어진 활약마다 엄청 대단한 일은 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임무는 훌륭하게 수행했다. 1차 북벌 때 마속의 실책을 수습하고, 4차 북벌 때는 무리한 공격을 한 장합을 사살하고, 마지막 북벌 때는 본대의 퇴각 경로를 만들어내 위연을 잡아냈다. 왕평은 위연 사후 뒤를 이어 새로운 촉나라의 한중 태수에 오른다.


  강유의 본대가 드디어 한중에 돌아왔다. 이제 촉나라는 제갈량이 사후 여러 문제들을 처리한다. 위연을 잡아내는 데 성공한 양의는 자신의 역할이 컸다고 으스대기 시작한다. 공적을 인정받은 양의는 중군사로 임명되어 고위직을 차지했다. 하지만 중군사라는 직책은 명예직이었을 뿐 실제 군대의 지휘권은 없었다. 양의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능력에 비해 셌다. 자신이 명예직에 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전장이 본인의 무대라 생각했다. 양의는 분노를 표출하며 점점 선을 넘기 시작한다.


내가 위나라를 섬겼으면 이런 푸대접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발언은 장완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 이 발언 역시 두고 볼 수 없었다. 내란 음모적인 발언이다. 장완은 그의 모든 직책을 박탈시키고 그를 일개 백성으로 좌천시킨다. 시골에 가서도 제 버릇을 못 버린 양의였다. 좌천당했으면 조용히 살 것이지 벽지에서 조차 계속 장완과 비의 등에게 악담을 하는 상소를 마구잡이로 올려된다. 결국 화가 난 장완이 그를 압송하려 군대를 보낸다. 그래도 눈치는 빨랐는지 황제 앞에서 죽기는 싫어 군대가 오기 전에 자살하며 생을 마감한다.


  4차 북벌에서 실각한 이엄 역시 생을 마감한다. 그 역시 평민으로 전락했으나 제갈량이 그의 능력까지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이엄은 자신이 유배지에서 조용히 살고 있으면 언젠가 다시 제갈량이 중앙으로 불러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과거 제갈량은 유선이 북벌을 나간 사이에 오나라의 육손이 군대를 이끌고 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엄이라면 능히 육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의 안정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설정한 장완이 한번 문제를 일으킨 자신을 다시 불러줄 리 없었다고 생각했다. 이엄은 실제로 전시가 되어야 빛을 볼 사람이었다. 자신의 생이 끝났다고 판단해 제갈량 사후 마음의 병을 얻게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제갈량이 죽고 무려 촉의 능력자 3명인 위연, 양의, 이엄 모두 사망했다.


왕평 (  출처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




제갈량 사후



  제갈량이 죽자 촉을 호시탐탐 노리는 나라들이 입맛을 다신다. 곧바로 반응한 나라는 의외로 위가 아닌 오였다. 오나라 황제 손권은 만에 하나 위나라가 갑자기 군대를 이끌고 촉에 남하하게 된다면 어떻게든 콩고물이라도 챙기려 한다. 그는 바로 촉으로 가는 국경지대 파구에 군대를 투입한다. 촉나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오나라에 대응하여 촉나라 역시 영안에 군대를 파견한다.

  손권은 자신이 한 행동은 생각 안 하고 촉이 영안에 군대를 파견하자 불만을 표출한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그러자 장완은 종예를 오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한다. 종예는 오나라에 도착한다. 종예가 왜 파구에 군대를 증원시킨 이냐 묻자 손권은 혹여나 위나라가 군대를 이끌고 남하할 때 지원할 병력이라고 주장했다. 손권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자 종예는 이를 정면 돌파한다. 지금 오나라의 병락은 촉이 무너졌을 때 병력을 투입시키려 한 거 아니라고 당돌하게 말한다. 정곡을 찔린 손권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파구의 군사를 물리겠다고 말한다. 이에 맞춰 촉나라 역시 영안의 군대를 물리기 시작한다.


  촉나라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를 가지게 된 위나라. 그런데 황제 조예는 갑자기 궁궐 증축을 주장한다. 사마는 황당했다. 병사를 빨리 모아 촉나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조예의 생각이 너무 단호했다. 조예는 촉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자신의 사업에 집중한다. 사마의가 이제 위나라 이인자로 떠올랐다 하더라도 황제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긴 어려웠다. 아직은 어려웠다. 사마의는 결국 촉나라 정벌을 포기하고 다시 재정비에 몰두한다. 곧이어 이전에 잘 구슬려놨던 공손연이 계속 시끄럽게 하자 이 기회에 한번 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다. 사마의는 관구검과 함께 요동으로 향해 훗날 후환이 될 지역을 평정한다.

 

  235년이 되자 삼국은 소강상태로 빠진다. 장완은 제갈량의 유언에 따라 북벌을 당분간 포기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데 초점을 맞춘다. 제갈량의 후임으로 촉의 대장군이 된 장완은 제갈량의 능력에 비해 상당히 부족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능력하지는 않았다. 제갈량만큼의 비상함은 없었지만 무리 없이 국정을 수행할 능력이 있었다. 1인 중심의 국가 운영 체제를 최대한 분산시키려 했다. 군사적 역량과 큰 그림을 잘 그리진 못했지만, 행정 능력은 준수했다. 장완의 국정과제는 앞서 말했듯이 국가의 안정이었다.


  촉나라는 장완 체제 하에서 전시 국가 체제를 일반 국가 체제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234년 이후 약 30년간 국가를 유지시킬 수 있었는 데에는 장완의 역할이 매우 컸다.  


청도에 위치한 제갈량 동상


  물론 장완이 아예 북벌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243년 경 장완은 내정을 다지고 나서 북벌을 준비했다. 장완은 제갈량보다 더 북벌에 신중했다. 자신은 제갈량과 달리 군사적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북벌의 지휘를 강유에게 맡겼다. 강유가 전방에서 군사를 지휘하면 자신은 후방에서 강유를 지원하는 방식의 북벌을 계획했다.

  장완은 북벌에 대한 필수 조건이 농서 지방의 호응이라 생각했다. 이민족과 연계를 중심으로 한 북벌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장완 역시 본인의 건강을 계산 범위 안에 놓지 못했다. 장완은 강유, 비의와 북벌을 준비하는 도중 또다시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장완 후임은 제갈량의 유언에 따라 비의가 뒤를 이었다.


  이후 위나라와 촉나라는 계속되는 전쟁을 거듭하다 263년 위나라 장수 등애와 종회 침공으로 멸망한다. 그때까지도 살아남아있던 대장군 강유는 위나라의 권력을 잡은 사마의의 둘째 아들 사마소의 대규모 침공에 맞서 싸웠다. 250년 경 강유가 진행했던 수차례의 무리한 북벌이 촉나라의 운명을 앞당기는데 일조했다. 물론 애초에 촉은 위나라에 비해 약한 나라라서 북벌이 영향은 줬지만 절대적 이유는 아닐 것이다.

  강유는 종회를 꼬드겨 끝까지 투쟁했다. 그러나 제 아무리 강유라도 홀로 시대의 흐름에 맞서 싸우긴 힘들었다. 끝내 위나라의 군대를 막지 못하고 끝내 사망한다.


  제갈량의 유지를 받들어 북벌을 30년간 진행했지만 역시나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이로서 촉나라의 북벌을 실패로 끝난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략가 제갈량. 비록 그의 대의는 실패로 끝났지만 중국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가 오늘날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가장 큰 이유가 비상한 두뇌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제갈량만큼 똑똑한 사람은 분명 있지만 그만큼 동양사에 영향력을 준 사람은 없다. 제갈량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약소국 위치에서 강대국을 상대하는 도전가 정신. 자신의 보스 유비에 대한 충성심. 유비 사후에도 촉을 수습하여 그의 사상을 이어받는 로맨티시스트 적 면모. 이 와중에 보여주는 치밀함과 리스크 관리. 그리고 사마의와 보여준 라이벌리.

  그의 행동은 충분히 오늘날의 우리들의 인생에 무언가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멋진 사람임이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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