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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onde Jan 23. 2023

출사표

Time to start over

  글을 반년동안 쓰지 않았다.


  몇 번 썼지만 실제로 올리지는 않았다. 친구들에게 ‘돈미새’라 불리는 나에게 돈이 안 되는 일은 모두 시간낭비일 뿐이다. 더욱 본업이 다른 직업인 나로서는 글쓰기가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고민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닌 대중들이 보고 싶은 글을 무엇일까?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6개월이 지났다.


  작년에 나는 찍어내듯이 쓰는 글을 쓰고 있었다. 글을 공장처럼 찍어대나 보니 글에 의미가 실리지 않았다. 재미없는 글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한다. 한 문장마다 깊은 고민을 하고 써야 한다. 


  글쓰기란 결국 의사소통이다. 문단과 문장의 구성, 문장의 호흡 그리고 명확한 단어의 선택 모두 중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한 문장을 써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나는 매사에 신중한 편인데,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재능 중 하나가 글쓰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다시 나는 노트북 앞으로 돌아왔다. 


  주말 아침 피곤한 눈을 비비며 다시 카페에 왔다. 다시 한번 글쓰기로 세상 사람들에게 나설 준비를 한다. 


  대중을 마주하는 건 늘 두렵고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에 내 글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대중에 앞으로 가는 길은 평탄치 않다. 


  나는 꽤 길고 힘든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내 글이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지에 대한 생각 했고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1. 나만 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상식, 정보, 재미, 문제 해결 그리고 감정의 위로를 제공한다.


2.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계속 깨져봐야 한다. 고민은 적당히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야 한다.  


  내 글을 봐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이건 사업과 유사하다. 결국 대중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걸 내가 충족해야 한다.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거나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풀어가거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방식이 나만의 방법이어야 한다. 남들을 하지 못하는 ‘One & Only’의 글을 쓴다. 


  그다음은 시도다. 이것저것 자꾸 해봐야 한다. 골방에서 고민하는 것보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깨져보고 실패해 봐야 내 글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대중의 반응을 살필 줄 알아야 하고, 좋은 피드백은 수용해야 한다. 앞으로는 늘 이 점을 생각하며 글을 쓸 생각이다. 


  나만의 방식은 고민이 아니라 시도로 만들어진다. 좋은 글은 재능이 아니라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여전히 나는 글쓰기가 재밌다. 


  서울시 어린이 기자 출신인 나는 이쪽 길로 나섰으면 재능을 펼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초등학교 시절 기자부 담당 선생님이 오후 늦게까지 나를 잡아두고 기사를 쓰게 한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기자부에 여러 학생들이 있었지만 유독 나에게만 오후 늦게까지 글을 쓰게 했다. 그때마다 친구들과 놀지 못하는 나는 너무 화가 났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 선생님이 왜 날 그렇게 잡아뒀는지 알 것 같다. 내 재능을 발견한 최초의 순간이었는 데 너무 어렸던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나쳤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주제는 영화 리뷰였다. 당시 홍콩 누아르와 SF 영화에 빠져있던 나는 영화를 보고 일정한 형식에 맞춰 영화 감상평을 썼다. 내가 주도적으로 처음 세상 밖으로 글을 쓴 순간이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아 볼 수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읽어보고 싶다.


   이후 논술 전형으로 대학교에 붙었다. 대학교에서는 필수 글쓰기 과목 A+, 교양 영상문학기행 A+을 연속으로 맞았다. 내가 점점 글 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은 IT전공을 선택한 걸 후회한 적도 있었다. 이후 IT 블로그와 역사 블로그를 만들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윤동주 시집을 달달 외운 소년은 어느덧 데미스 하사비스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 많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제 다시 새로 글을 쓰려고 한다. 


  그렇다고 내 직장을 때려치우진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직업을 여전히 사랑한다. 나름 괜찮은 보수와 이쪽 분야에서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1순위는 현 직종에서의 커리어다. 


  내게 글은 취미다. 평일 퇴근 시간과 주말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본업이 지장 받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해야 한다. 맨땅에서 시작했으면 분명 막막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의 경험과 여기에 쓴 글들이 나에게 있어 너무 소중하다. 


  앞으로 글에 있어 유일하게 정해진 방향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는 것뿐, 가능한 많은 시도를 해볼 예정이다. 더불어 이 경험들이 나에게 훗날 괜찮은 수익의 수단이 될 것이다.


  지금 내 기분은 마치 227년 출사표를 쓴 제갈량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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