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시작되었다.
올해 초 인사이동 이후 정신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의 업무를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는 끝도 없이 밀려드는 영업점 고객을 보면서 '오늘 퇴근이나 할 수 있겠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곁들여 보았다. 그 와중에 퇴근 후 예정되었던 회식까지 마무리하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아홉 시가 조금 못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하루를 마무리 짓고서는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남편을 뒤로하고 씻고 잠들었다.
피곤했던 어제의 일정과 달리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 다섯 시 삼십 분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패턴을 유지하니 평일 휴일을 가리지 않고 그 시각 즈음에 늘 일어나게 된다.
'내가 해 보고 싶었던 것 하나하나씩을 6일 동안 천천히 풀어보자.'
'회사와 관련한 모든 것에서 로그아웃'
아직 꿈나라에 있는 남편에게는 조금 더 자라고 토닥여주고 집을 나섰다.
가끔 회사 선배들과 주말에 만나 커피를 마시는 카페로 향했다. 집에서 자가운전으로 15분가량 소요되는 거리에 있는 카페고 내가 사는 부산에서는 엄청 유명해서 영업이 시작되는 여덟 시에 도착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기에 일곱 시 사십 분에 출발했다. 차로 달리다 보니 휴일이지만 평일 휴가 내고 혼자서 즐기고 있는 기분이 든다.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가느다란 빗줄기까지 내리면서 '널 위해 준비한 거야.'하고 기다린 연휴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내가 해 보고 싶었던 것,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읽기, 쓰기, 멍하게 있기.
늘 하고 있었지만 시간 제약 없이 여유롭게 하고 싶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만큼은 나에게 집중하려고 다른 일정을 잠시 접어두지만 그 와중에 일주일에 한 번하는 욕실 청소 생각, 평일에 먹을 밑반찬을 뭘로 하고 장을 언제 볼지에 대한 생각 등이 내 머릿속으로 침투하면서 혼자의 시간에 집중이 흐트러질 때가 있다.
카페 영업이 시작되고 오 분이 조금 지나서 오니 아직 한산하다. 오늘은 2층이 아닌 1층에 자리 잡아 본다. 유명하다고, 맛있다고 하는 음식점이나 카페를 애써 찾아다니진 않지만 이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정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보통 인기 많은 식당이나 카페의 경우 사람에 치이고, 아주 많이 기다리고, 막상 먹으려 해도 여유가 없기 마련이지만 이 카페는 직원들도 이용하는 사람들도 정연하고 단정해서 발걸음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접시 달그락 거리는 소리, 대화 소리가 마치 백색소음 마냥 느껴진다. 지금 내가 앉은 테이블에서 보이는 주문하려고 줄 선 사람이 열다섯 명가량이지만 혼잡하거나 부산스럽지 않다. 그래서 계속 찾게 된다.
묵직한 느낌의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샌드위치를 주문해 둔다.
자리 잡고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혹시 몰라서 가져온 책도 한 권 올려둔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조심스레 마시며 컵을 양손으로 감싸고는 격자 통창문 너머로 보이는 비 온 뒤의 햇살을 바라본다. 이게 그렇게 해 보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하루하루 이 기분으로 채워나가 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