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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선택이 쌓여 내가 되어 간다.

by 새벽

경험하고 선택하고 또다시 경험하면서 내 선택의 결과물이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고민과 견주기를 거듭하고, 체념과 확신을 느낀다. 그리고 그 종착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앞으로 계속 변화할 지금의 '나'이다.


살아가면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선택의 상황을 내가 직면하면 누군가가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히 다 풀어 주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그저 바쁘다고 그래서 귀찮으니 대신 고민해 주고 선택해 주면 그 처분을 따르겠다고. 그에 따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망상에 가까운)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와서 그때의 진지함을 떠올리며 마냥 피식 웃어버리기엔 조심스럽지만 난 꽤나 심각했다. 그 당시 직장에서 업무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친정(좀 더 구체적으로 친정 엄마)에서 나에게 지운 무궁무진한 책임감과 의무감에 대한 막연하고도 버거운 상황을 내 고유의 영역에 까지 선을 넘도록 눈감아 주면서 후회와 자책,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뒤섞인 그야말로 짬뽕이 되어버린 감정의 그릇을 손에 들고서 아등바등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상황을 앞세워 나의 것에 대한 무책임함을 슬그머니 덮어 버릴 수 있을 만큼 눈코 뜰새 없을 정도의 경황도 아니었다. 그저 내 체력과 한계의 부족을 인지하지 못했고, 내가 그어놓은 금(선)을 밟고 넘어오는 이들에게 단호하지 못했다. 또 스스로에게 휴식을 허락하려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일련의 상황에 대한 체면치레와 일단 모면하고 보자는 단발적 사고가 켜켜이 쌓여 엉뚱한 상상을 깊이 있게 했었던 듯하다.


나는 언제부터 형성되었을까.

내 입에서 나오는 언어, 언어의 온도가 느껴지는 말씨, 생각, 행동, 습관, 일상 속의 태도, 가족과의 유대, 직장에서의 평판...... 이 모든 것이 언제부터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몸속의 정자가 어머니 몸속 난자를 향해 달려가 성공적으로 결합되어 세포가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일까. 만약 그것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첫 번째 선택이라면 그 선택은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어찌해 볼 고민의 기회가 없었던 기로에서의 선택은 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 영역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점 중에서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왜 그랬어?"라고 전가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제는 내가 선택해서 집어넣은 점들이 더 많은 파이를 키우고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자타의 점들이 섞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생각, 윤택한 선택은 나를 좋은 사람,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확고한 믿음이 생긴다. 그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 나는 또 경험하고 선택의 직면에 이르기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수는 있어도 누군가에 의한 생각과 결정으로 맡기지 않아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고독도 내 몫이다. 그 와중에 후회와 손해가 생기더라도 그마저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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