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이거 받아라."
외할머니께서 용돈을 주셨다. 언제든 날 보시면 웃어 주시던, 참 고우신 우리 할머니.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이 참 따뜻했다. 그 뒤로는 그렇게 온기가 느껴지는 돈을 쥐어 본 적이 없다.
얼마 후, 외가에 내려가신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너무도 담담한 어머니의 말투. 먼 친척 어르신의 부고를 알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외할머니는 버스에 치이셨다고 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리고 어머니는 어떻게 흐느낌 한 번 없이 나에게 얘기를 해 주셨을까.
통화가 끝낸 나는 방에 들어가 가로누워 울었다.
장례 때문에 어머니가 외가에 가 계시는 동안 친할머니께서 오셔서 집안일을 해 주셨다. 더운 여름에 공부하는 수험생 손주가 안쓰러우셨는지 아이스크림도 사 주셨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참 따뜻했다.
친할머니는 비슷한 연배이셨던 외할머니의 부고를 들으시고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철없는 손주의 뒷바라지를 묵묵히 해 주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5~6년 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꿈을 꾼 적이 있다. 눈 앞에 편찮으신 친할머니가 누워 계셨는데 내 손 끝을 따서 나오는 피를 할머니 입에 넣어드렸다. 나는 차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훌쩍였다. 일어나 보니 내 눈에 실제로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비인강암 판정을 받으신 할머니는 6개월 뒤 할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 마지막 몇 개월 동안 우리 집에 머무신 적이 있었지만 나는 왠지 할머니와 많이 말씀을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잘 몰랐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이 퇴색된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챙겨 주신 포근한 용돈과 아이스크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중에 두 분을 뵈면 달려가 꼬옥 안아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