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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 Aug 19. 2015

스시 鮨 Sushi

밥과 해산물이 빚어내는 맛있는 어울림

스시에 빠지게 된 계기


어렸을 땐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스시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한 번은 아버지가 친구분들을 만나신 후 집에 스시를 포장해 오신 적이 있었다. 당연히 나는 먹지 않았고 그 덕에 옆집 살던 동생만 호강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종종 회는 찾아 먹게 되었지만 스시는 아주 가끔 회전초밥집에 가서 먹는 정도였는데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거의 없다. 가격도 별로 저렴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분당 정자역 부근의 스시쿤에 가 보게 되었다. 저녁에 가서 사시미 오마카세라는 메뉴를 고르고 식사를 하던 중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 스시가 원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구나.


스시쿤의 사시미 오마카세에 포함된 스시와 사시미들.



스시쿤에서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스시를 경험했다. 일단 전체적인 맛이 좋았다. 그리고 꽤 다양한 스시가 등장했는데 하나하나의 양이 얼마 안돼 보여도 뒤로 갈수록 다 먹기가 힘들 정도였다. 솔직히 메뉴판을 보고 무슨 밥 한 끼 먹는데 8천 원도 아니고 8만 원을 내야 하나 싶었는데 식사가 끝나니 그냥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기분이 좋았다. 행복했다.


이게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스시의 다양한 매력


그 이후엔 최소 1달에 한두 번은 꼭 스시 전문점에 가려고 노력한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전파했다. 나처럼 맛있는 음식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에 가격을 보고 주저하다가 한 번 경험해 보고 나면 다들 만족한다.



사카에(분당 야탑)의 스시. 각각 아지(전갱이), 아마에비(단새우)에 우니(성게)를 올리고 김으로 말은 것.



스시는 자주 먹어도 쉬이 질리지 않는다. 일단 재료가 다양하고 여러 재료들이 만나 선보이는 색다른 맛의 조화가 참으로 매력적이면서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같은 가게, 비슷한 스시라도 계절이나 네타(재료)의 상태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언뜻 보면 스시가 약간 시고 달달한 샤리(스시에 쓰이는 밥) 위에 선어회(저온 숙성된 회이며 반대로 생선을  잡자마자 회를 쳐서 먹는 경우 활어회라 한다)를 한 점 올리면 끝나는 매우 간단한 음식처럼 보일지 몰라도 배우는 과정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고 한다. 스시야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 처음 3년간은 접시닦이와 청소만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위의 사진은 스시산(잠실)의 런치 세트에 포함된, 스시가 아닌 요리/후식의 일부이다.



스시 전문점에서 오마카세를 먹게 되면 다음과 같은 음식이 차례로 나온다. 메뉴의 가격대, 구성 등에 따라 나오는 순서나 특정 요리의 유무가 바뀔 수 있음에 유의하자.


- 간단한 츠케모노/오싱코(채소 절임)

차완무시(계란찜)

- 전채

스시 약 10피스 및 사시미 몇 점(사시미가 안 나오는 경우도 있음)

구이/튀김류

- 스이모노(맑은 국)/미소시루

- 후토마끼(여러 재료를 넣고 두껍게 말은 김밥)

- 우동/국수

- 타마고야끼/다시마끼(달달한 계란구이)

- 후식


이렇게 먹고 나면 배가 부른 것은 물론이고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다 해치웠다는 성취감 덕분인지 기분 좋은 만족이 느껴진다.



나에게 맞는 스시집 찾기


사실 스시 전문점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점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저렴한 곳은 1~2만 원이면 되지만, 고급 스시야에서 한 끼를 먹거나 유명 셰프가 엄선한 재료로 만든 각종 음식과 술을 제공하는 갈라 디너에 참석한다면 인당 20~50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스시도 다른 음식과 비슷해서 가격이 올라가면 대체로 맛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매번 많은 비용을 지불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적당한 가격대에 자신에게 맞는 스시를 내는 스시야를 찾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세야 스시(동탄). 다른 스시야에서 좀처럼 접하지 못했던 네타들이 등장해서 즐거웠다. 과묵하신 셰프분의 표정만큼이나 묵직한 느낌.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좀 더 맛있는 스시를 맛보고 싶다면 잠실 스시산신사역 김수사청담 쇼쿠분당 정자 스시쿤(최근 판교에도 생겼다), 분당 야탑 사카에 등 점심에 3~5만 원대의 오마카세 메뉴 (셰프에게 맡긴다는 뜻으로 사전에 구성된 각종 스시와 요리 등을 알아서 내 줌)를 갖춘 곳에서 제대로 된 스시를 경험해 본다. 이렇게 하면 알찬 구성의 스시 및 요리를 최소의 비용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런 뒤에 좀 더 비싼 메뉴(보통 런치 세트 < 스시 오마카세 < 사시미 오마카세 순서로 가격이 올라간다)를 시도하거나 더 고가의 메뉴를 갖춘 스시야에 가 본다. 이런 곳으로는 웨스틴조선호텔 스시조신사동 스시 마츠모토, 청담 코지마(사진 촬영 금지)
 등이 있다. 여기서 소개한 스시 전문점 외에도 많은 곳이 있으니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스시를 제대로 즐기는 법


스시 전문점에 가면 가급적 카운터에 앉는 것이 좋다. 처음 몇 번은 어색할 수 있는데, 카운터에 앉게 되면 셰프분이나 서빙하시는 분에게 스시와 요리의 재료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준비/조리된 것인지 설명을 들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주 가서 친해지면 서비스로 몇 점 더 먹을 수도 있으므로 여러 모로 이득이다. 또 어떤 셰프는 스시를 내준 후 일정 시간 안에 먹어야 맛있다고 귀띔해 주기도 하는데, 이는 온도에 따라 미묘한 맛의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간 사람이 많으면 어쩔 수 없이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위의 사진처럼 스시나 회가 테이블에 미리 세팅된 상태로 서빙된다. 이런 경우 한꺼번에 여러 종류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셰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불가하고 스시가 적당한 온도일 때 먹기가 어려워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따라서 카운터에 앉으려면 혼자 혹은 2~3명이 함께 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스시를 맛있게,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다. 이 동영상을 보면 다음 내용을 야스다 아저씨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한 번쯤 보고 가시길 권한다.


- 스시에서 각 재료의 역할을 비율로 보면 샤리가 8이며 생선 등 네타는 2밖에 되지 않음

- 스시용 간장은 밥이 아닌 재료에 살짝 묻히면 됨

- 와사비나 가리(생강 절임)는 매운맛 외에도 단맛 등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음

- 샤리와 네타가 잘 어울리는 최적의 온도가 있음



스시 전문점에서의 식사


다음으로 청담동 스시코우지에서 먹었던 스시 코스를 소개하려 한다. 사실 모든 스시 전문점에서는 괜찮은 구성의 오마카세/코스 등을 맛있게 만들어 내는데, 최근에 가 본 스시야 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어 이곳을 골라 보았다.



스시코우지는 학동사거리에 있는 건물의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운 좋게 오너 셰프인 나카무라 코우지상 바로 앞의 카운터에 자리를 잡고 카운터에서 주문 가능한 가장 저렴한 메뉴인 스시 오마카세(2015년 8월 29일 기준, 10만 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원래 점심에 7만 원이었는데... 쩝.)를 부탁했다. 셰프님이 못 먹는 해산물이 있냐고 묻길래 호야(멍게)와 고노와다(해삼 내장)라 답했다. 참고로 새우 등 갑각류 알러지가 있는 경우 미리 말해두는 것이 좋다.



왼쪽은 와사비, 소금, 벳다라즈케(무 절임)와 쇼가(생강 절임). 오른쪽은 오싱코(채소 절임).


옥수수 스프에 이쿠라(연어알)과 오쿠라가 들어있다. 스프에서 가츠오(가다랑어 포)향이 느껴진다.


고마도후(깨두부) 위에 우니(성게)를 올렸다.


히라메(광어) 스시. 샤리에 붉은 식초인 적식초를 써서 그런지 산미는 약한데 향이 은근히 강하게 느껴진다. 와사비는 부드러운 느낌.  그때 메모해 둔 것을 보니 이 바로 다음이 스즈키(농어) 스시가 나왔는데 사진을 찍지 않고 먹어버린 것 같다.


야리이까(한치). 유자를 갈아 얹었다. 가만히 보니 내 옆에 비슷한 시간대에 식사를 시작한 손님들이 있는데, 코우지 셰프는 굳이 스시를 내는 타이밍을 나와 달리 해서 준다. 한꺼번에 내도 될 것 같은데... 손님이 식사를 하는 속도 등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느낌이다.


스페인산 츄토로. 참치와 샤리 모두 엄청나게 부드럽다.


아까미즈케. 참치 등살을 간장 등의 소스에 넣고 절였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스시.


연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생선인데 적식초 샤리와 뭉텅뭉텅 씹히는 식감 덕분인지 맛이 좋았다. 이제 보니 네타에 따라 백식초와 적식초를 다르게 쓰는 것이 재미있다.


아마에비(단새우). 샤리에 쓰이는 백식초의 과일향이 좋다. 코우지 셰프님에게 물어보니 사과 식초 비슷한 것을 쓴다고 한다.


호타테(가리비). 살짝 아부리(표면을 살짝 익히는 것)가 되어 있다. 스시나 나올 때마다 사진을 찍고 뜸을 들이니 15초 안에 먹으라는 셰프님의 조언이 들려온다. 뒷맛이 아주 약간 씁쓸한데 이게 먹을 타이밍을 놓쳐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새끼도미.



치라시즈시. 적식초 샤리 위에 각종 생선살과 우니, 이쿠라 등을 올렸다. 그냥 떠서 먹어도 좋지만 같이 나오는 최상급 김 위에 올려 먹으면 더욱 맛이 살아난다.


김의 향이 좋고 입에 넣으면 처음엔 바삭하다가 갑자기 싸악 녹아 사라지는 식감이 재미있다. 도대체 어디 제품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스시용 김 중 하나인데, 우리가 흔히 보는 크기의 김이 50장 들어있는 팩 하나에 4만 원이 넘는 고급품이었다.


미소시루. 나오는 타이밍이 적절하다.



전갱이 구이. 맛도 뛰어나지만 식감이 너무나 부드럽다. 모 맛 평론가가 '일본인들은 음식을 씹는다기보다 오물거리다가 삼킨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구이나 튀김류를 먹다 보면 정말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 함께 나온 샐러리 절임도 괜찮다.


간바치(잿방어).


사바(고등어). 매우 고소한 고등어 특유의 향이 잘 느껴진다. 선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비린 맛이 강하게 나는 생선인데 전혀 비리지가 않다.


후토마끼. 한 입에 먹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꿀꺽.


달달한 아나고. 입에 넣으면 녹아 사라진다. 보통 이렇게 맛이 강하고 단 스시가 나오면 거의 마무리라고 보면 되긴 하는데 꼭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오마카세를 주문하면 스시나 작은 요리가 20가지 이상 나오므로 그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제대로 알고 싶다면 메모를 해도 되고, 그렇지 않다면 자기 취향에 맞는 스시/요리를 몇 개 골라 기억해 두면 도움이 된다.


표면이 굉장히 매끈하면서도 씹는 맛이 일품인 이나니와 우동면이 들어간 냉우동.


타마고야끼. 스시야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 중 하나. 푸딩처럼 부드럽다. 



역시 필요하다 싶을 때 물수건과 냉녹차가 다시 제공된다. 흠잡을 데 없는 서비스.



더 비싼 메뉴에 포함되는 고등어 보우즈시. 코우지 셰프님이 숯으로 아부리를 하고 있다. 아부리용으로는 일반 토치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숯을 쓰는 이유는 아마 은근한 화력으로 숯 향이 배이게 하기 위함인  듯하다.


단팥을 올린 녹차 아이스크림과 오렌지로 마무리. 여러 모로 매우 만족스런 식사였다.


참고: 스시코우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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