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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 Sep 02. 2015

돈코츠 라멘

그 구수한 매력에 대하여


돈코츠 라멘(豚骨ラーメン)의 탄생


돈코츠 라멘은 70여 년 전 일본 큐슈 후쿠오카의 하카타 야타이(포장마차)에서 탄생한 돼지뼈 국물 베이스의 라멘이다.



간소 나가하마야의 돈코츠 라멘. 나가하마야는 후쿠오카에 있다.


만드는 방법은 언뜻 간단해 보인다. 먼저 간을 맞추기 위해 그릇에 간장 베이스의 소스(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를 살짝 넣고 돼지뼈를 장시간 고아 만든 돈코츠 국물을 부어준다. 약 1분간 삶은 호소멘(얇은 면)을 끓는 물에서 꺼내 물기를 제거한 후 앞서 만든 국물에 넣는다. 그런 뒤 세아부라(돼지 등뼈 사이에 낀 지방)를 체로 쳐서 뿌려준다. 다음으로 아지타마와 차슈(각각 간장 등이 들어간 국물에 넣고 졸인 반숙 계란과 돼지고기), 목이버섯, 파, 멘마(죽순) 등을 올려 완성한다.



라멘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정성


이처럼 돈코츠 라멘은 짧은 시간 내에 간단히 만들어지는 음식인 듯 하지만 사전 준비를 위해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일단 가장 중요한 돼지뼈 국물을 제대로 우려내기 위해서는 최소 6~8시간 동안 계속 끓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냥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중간에 거품을 걷어내고 불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신경을 써 줘야 한다.


큐슈 쿠마모토의 코쿠테이에서 먹은 타마고이리 라멘. 튀긴 마늘이 들어간 깔끔한 국물과 진한 계란 노른자의 조화를 즐길 수 있다.


면도 그렇다. 굵기는 얇지만 씹는 맛을 살리기 위해 누르는 과정을 통해 안에 약간 딱딱한 심을 만들기도 한다. 더 좋은 맛, 돼지뼈 국물과의 조화 등을 고려해서 일정 시간 숙성도 시킨다. 보통은 돈코츠 라멘 전용 호소멘을 구입해서 쓰지만 셰프가 원하는 궁극의 맛과 식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아예 점포 안에 제면기를 들여놓는 가게도 있다. 비싼 제면기는 1억을 호가한다고 한다.



강남 유타로의 제면실.


차슈나 아지타마를 만드는 과정도 은근히 복잡하다. 차슈는 육즙과 부드러움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두꺼운 돼지고기의  중간중간을 실로 묶어 소스에 넣고 장시간 끓인다. 맛이 충분히 밴 후 식혀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잘라준다. 아지타마는 계란을 7분 정도 삶아서 반숙 상태로 만들어 식힌 후 미리 준비한 간장 베이스의 소스에 넣고 냉장고에 넣어 소스의 맛이 배도록 1~7일 정도 묵혀 만든다.

이렇게 여러 요소들이 하나씩 모여 맛있는 돈코츠 라멘이 완성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일본에 가면 차슈나 아지타마 등이 빠진 돈코츠 라멘도 종종 보인다. 사실 돈코츠 라멘이라 하면 스프와 호소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람도 있으나 역시 차슈 한두 점과 아지타마가 보이지 않으면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든다.



느끼하고 냄새가 나서 별로라고요?


돼지뼈 국물 특유의 꾸리꾸리한 냄새와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지방 때문에 돈코츠 라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돈코츠 라멘은 그 종류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사실 일본에서 라멘은 유행을 탈 정도로 자주 스타일이 바뀌는 등 정말 가지가지이다) 자신에게 맞는 타입을 하나 정도는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치를 주는 돈코츠 라멘 전문점도 많으므로 훨씬 먹기가 수월하다.



이렇게 김치나 카라모야시(매운 숙주라는 뜻인데 일본에서 먹은 것은 하나도 안 매웠다), 타카나의 츠케모노(갓김치 비슷한 무침) 등을 함께 먹을 수 있다면 느끼함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나는 돈코츠 라멘을 주문할 때 국물은 진하게(こってり/콧테리), 면은 딱딱하게(ばりかた/바리카타) 해 달라고 부탁한다. 가게의 스타일에 따라 내가 원하는 수준의 걸쭉한 국물과 탄력이 좋은 면이 나올 때도 있고, 밍밍한 국물에 부드럽게 익은 면이 나오기도 한다. 당연히 전자를 선호하긴 하는데 쿠마모토 돈코츠 라멘처럼 원래 국물이 진하지 않은 라멘도 있으므로 그런 특성을 감안해서 먹으면 크게 실망할 일은 거의 없다.



내가 좋아하는 돈코츠 라멘 전문점 Best 3


 여기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세 곳의 돈코츠 라멘 전문점을 소개한다.



유타로


강남역 5번 출구 근처와 분당 서현에 있는 돈코츠 라멘 전문점. 점포 내에 제면기를 갖추고 있으며 내가 가 본 우리나라의 라멘집 중에서 일본의 돈코츠 라멘과 가장 비슷한 맛을 낸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각종 라멘 외에도 교자, 오코노미야끼 등의 메뉴가 있다.




강남 유타로의 진 시로.


나는 유타로에 가면 아주 진하고 걸쭉한 돈코츠 라멘인 '진 시로'를 주문하고 면을 딱딱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먹으면 좀 느끼하긴 하지만 제대로 라멘을 먹었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김치와 함께 먹으면 먹을 만하다. 돈코츠 라멘을 좀 먹어봤다 싶은 분은 한 번쯤 시도해 보시길.



면의 심이 살아있어 씹을 때 툭 끊기는 식감이 재미있다.



사이토


연남동에 자리 잡은 라멘 전문점. 이곳에서는 하카타 돈코츠와는 조금 스타일이 다른 쿠마모토 돈코츠 라멘이 메인이다. 돈코츠 베이스이긴 하지만 국물이 많이 진하지 않고 튀긴 마늘 특유의 고소한 향이 있어 먹기 편하다.




셰프님께 진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쿠마모토 돈코츠는 원래 진한 스타일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 주신다. 음, 그 말이 맞다.



사이토의 쿠마모토 돈코츠 라멘.



국물은 비주얼에 비해 담백한 편인데 뒷맛으로 딱 좋은 정도의 느끼함이 남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국물에 자꾸 손이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너무 진하거나 느끼하지 않고 과하게 짜거나 마늘의 쓴 맛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지 자꾸 자꾸 마시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차슈도 충실하다. 면은 무난한 편.



결국 내 돈코츠 라멘 인생 처음으로 공짜로 제공되는 밥을 말아 먹었다. 끝까지 맛있었다. 진하고 느끼한 돈코츠 라멘이 무리라면 쿠마모토 돈코츠 라멘을 시도해 보시길.



겐끼잇빠이(元気一杯)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라멘 전문점. 겐끼잇빠이(元気一杯)큐슈 후쿠오카에 있는, 무지하게 맛있는 라멘을 내는 가게이다. 지금도 일본 내의 지역별 라멘 전문점 순위 사이트인 라멘 DB에서 당당히 후쿠오카 하카타구 내 라멘 가게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한 3년째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간판이 없고 위의 사진과 같이 가게 앞에 파란 혹은 핑크색 양동이가 놓여 있다면 영업 중이라는 뜻. 포쓰... 포쓰가 느껴진다. (고고고고...)



그런데 이곳에는 굉장히 까다로운 규칙이 있다.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핸드폰 사용(사진 촬영은 물론이고 그냥 화면을 보는 것도 안 된다) 및 카메라 촬영, 흡연이 금지라는 안내를 볼 수 있다. 주문한 후 라멘이 나오면 서빙을 하시는 여자분이 "먼저 스프부터 드세요(まずはスープから。)"라고 얘길 해 주는데, 이 말을 어기고 면부터 먹거나 자리마다 있는 타카나의 츠케모노(쉽게 말해 갓김치인데 꽤 매웠다)부터 먹으면 쫓겨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처음 갔을 때 별 생각 없이 검색을 위해 핸드폰을 보다가 주의를 당했다. 그런데 메뉴에 쓰여 있던 키구라게(목이버섯)가 무엇인지 몰라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주방에 있던 셰프분이 친히 나오셔서서 친절하게 어떤 재료인지 보여줬던 일을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손님을 쫓아내는 가게는 아닌 듯하다. 한마디로 정말 라면의, 라면을 위한 가게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메뉴는 그렇게 많지 않다. 라멘, 차슈멘, 키구라게(목이버섯), 차슈/키구라게 등이 전부 들어간 라멘 등이 있고 물론 카에다마(면 추가)도 있다. 2013년 겨울엔 전부 들어간 라멘, 작년 6월엔 차슈멘을 시켰는데 현지인들은 그냥 보통 라멘을 많이 시키는 것 같았다. 양은 돈코츠 라멘 치고 약간 많은 편이다.


맛은... 정말 최고라 할 수 있다. 돈코츠 라멘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름 많이 먹어 봤다고 생각했지만 이 곳의 라멘은 조금 다르다. 국물은 진하면서도 너무 느끼하지 않고 딱 좋을 만큼의 감칠맛이 난다. 면은 심이 들어가 있는 돈코츠 라멘용 호소멘(얇은 면)인데 국물과 면의 조합이 정말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묘하다. 차슈도 특별한데 마치 독일의 고급 햄을 돈코츠 라멘용으로 조리해서 넣은 것처럼 부드러움과 씹는 맛, 그리고 돼지고기의 향이 잘 살아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해서 너무 짜지도, 심하게 느끼하지도 않으면서 돈코츠 특유의 풍미를 너무 잘 살려준다. 게다가 일본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매운 갓김치 덕분에 돈코츠 특유의 느끼함을 바로 없앨 수 있다. 이 갓김치는 일본인 기준으로 보면 매우 맵다. 내가 먹어도 좀 매울 정도... 어쨌든 돈코츠와 잘 어울린다.


처음 방문 시엔 너무 맛있어서 흥분한 나머지 카에타마를 추가하는 바람에 늦은 저녁까지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작년 6월에 갔을 때는 내 혀가 적응을 한 탓인지, 아니면 맛이 조금 변한 것인지 국물의 농도가 살짝 옅게 느껴졌고 차슈 역시 일반 돈코츠 라멘용 차슈와 비슷한 느낌이 났다.


결론적으로 저 양동이만 봐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겐끼잇빠이의 라멘이 생각난다. 참고로 면을 바리카타로 주문하셔야 면이 좀 딱딱한 본격 하카타 돈코츠 라멘을 경험할 수 있다.



세상은 넓고 돈코츠 라멘집은 많아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살짝 돈코츠 붐이 불면서 돈코츠 라멘을 맛볼 수 있는 전문점이 늘고 있다. 아래에 몇몇 곳을 사진과 함께 간단히 소개한다. 자세한 리뷰나 상세 위치를 확인하고 싶다면 파란색 링크를 클릭하시길.



라멘 110V - 합정역/상수역 중간. 깔끔한 스타일.



부탄츄 - 홍대. 은근히 진한 국물과 마늘이 많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쿠자쿠 - 홍대. 엄청난 크기의 아부리 차슈가 인상적.



다음으로 돈코츠 라멘의 본고장인 일본 큐수의 라멘을 소개한다.



후쿠오카의 야타이 오카모토. 강한 간장 맛과 향이 특징이다.


타이호 라멘(大砲ラーメン) - 큐슈의 쿠루메(후쿠오카에서 남쪽)에 본점이 있으며 후쿠오카 텐진에도 점포가 있다고 한다.



후쿠오카의 신신라멘. 표준 스타일의 돈코츠 라멘인데 꽤 괜찮았다.



후쿠오카의 이자카야 체인점인 후톳빠라의 라소멘. 돈코츠 라멘의 호소멘을 메밀국수처럼 차갑게 해서 쯔유에 찍어 먹는다.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먹어보면 씹는 맛이 꽤 괜찮다.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 먹는 돈코츠 라멘


아래는 후쿠오카의 의리남 타카하시상으로부터 선물 받은 돈코츠 라멘 패키지이다. 일본에는 특히 지역별 특산물이 많은데 큐슈 쪽에 가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 보시길 권한다. 물론 돈코츠 라멘 전문점에 가서 먹는 게 제일 맛있지만 장소나 시간 관계상 그럴 수 없는 경우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핫짱라멘. 돈코츠 고유의 맛과 향이 살아있다.



야타이 오카모토의 라멘. 먹어보니 실제 가게에 가서 먹는 것과 국물 맛이 거의 비슷해서 놀랬다. 단, 설명대로 끓였더니 국물이 좀 짜고 면이 딱딱했다. 그러므로 스프를 만들 때 물의 양을 조금 늘리고 면도 1분 10~20초 정도로 조금 길게 끓여주는 방법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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