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꾸준해보지 못했던 나
당장 굶을 일은 없다지만 결국은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일을 하고 싶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해야할까?
요즘 가만히 유튜브에서 보는 분들이건 직접 만나는 분들이건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분들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게 박혀있는 것이 보인다. 예전에는 어딘가에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성과를 내는 분들을 보면 솔직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순히 운만 좋아서 잘되신 분은 거의 없었다. 양지에 나오기 전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을 해저에서 헤엄치다가, 운이라는 상승기류를 만나 쭉 타고 올라오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례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덱스가 그렇다. 솔로지옥으로 빵 뜨긴 했지만 그전에 생각보다 오랜 기간 개인방송을 해왔다. 군 복무 시절에도 홍보대사 같은 프로그램에도 지원했다고 본 것 같다. 덱스가 MC를 맡아 진행하는 ‘덱스의 냉터뷰’ 댓글에는 ‘방송 경험도 없는데 노련하게 잘한다’는 류의 댓글이 많은데, 생각보다 풍부한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간 많은 연애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있었고, 방영 당시 덱스에 준하는 인기를 얻었던 출연자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덱스 정도의 인지도를 얻지는 못했다.
결국 오랜 시간과 노력을 축적하여 얻은 내공이 운을 만나면 큰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나는 뭔가를 오랫동안 꾸준히 해본 적이 없다. 나의 과거는 목표-성취-질림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학교 때까지는 목표조차 없었기에 작은 성공 경험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본격적인 롤러코스터 인생의 시작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남중-남고 테크트리를 타기 싫어서 외고에 진학하게 된 나는 당시 상당히 긴장해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온다는데, 꼴등을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고등학교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꽤나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랬더니 들어가자마자 본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은 못했지만 영어과에서는 1등을 했다.
좋은 시작을 꾸준히 이어갔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나름의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자 곧바로 권태로워졌다. 그리고 성적은 꾸준히 떨어져서 2학년 때는 전교 100등 밖으로 밀려났다. 다시금 위기감이 들었다. 분명한 목표는 없었지만 일단 ‘미끄러진 애’가 된 기분이 싫었다. 그래서 반등하고자 고2 겨울방학에 다시금 마음을 잡고 열심히 했다. 그러자 정직하게도 바로 또 반등했다. 고3의 시작을 알리는 3월 모의고사에서 전체에서 1문제 틀려서 전교 2등이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1년 동안은 막연한 위기감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았고, 운 좋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잠깐 경찰대에 갔다가 자퇴하고 다시 수능을 보고 서울대에 입학한 후 또다시 방황이 시작되었다. 목표를 잃은 나는 그저 표류했다. 그렇게 수많은 미팅, 술자리, 축제 (서울대 축제 빼고는 유명한 대학교 축제는 다 가봤다)와 2점대 성적표를 남기고 나는 군대로 도망쳤다.
복학하고 나서는 막연하게 4점대 학점을 받아보고 싶었다. 그렇다. 이번에도 막연했다. 그냥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 학기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4점대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었다. 이번에도 권태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즉시 의욕을 잃었다. 그다음 학기에는 막연한 무의식이 그러면 안된다고 소리쳤지만, 나름 끝까지 붙들어보려고 했지만, 정직하게도 성적은 곧바로 떨어져버렸다.
이후 여러 즐거운 인턴과 동아리와 짧은 창업 경험을 거쳐 맥킨지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만 막연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번에도 막연했다. 가서 무슨 일을 왜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생존에 대한 위협을 해소할 수단으로 맥킨지 합격을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이 가장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며 돈을 제일 많이 주는 편인 회사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운 좋게 합격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권태의 벽에 부딪혔다.
요즘은 대졸 신입 컨설턴트들도 대부분 3년 넘게 일한다. 바로 다음 직급으로의 승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내 동기들도 얼마 전 모두 승진했다. 그런데 나는 1년 6개월만에 나왔다. 나름 이번에는 이전의 의사결정들과는 차이점이 있었다. 처음으로 기존보다 명목적 보상이 적은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보다 유명한 대학교, 유명한 회사, 높은 연봉 등등 가시적으로 보이는 성과를 취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15명 남짓의 스타트업이었다. 아직도 막연하긴 했지만 ‘내가 했어’ ‘내가 만들었어’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1년 3개월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정말 나라는 사람으로서의 한계를 몇 번 정도는 넘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1년 3개월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모두 소진되었고 이번에도 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였을까. 이번에는 분명 큰 방향은 맞는 것 같았는데. 매 순간 와닿는 일을 했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었고 충만하다고 느꼈는데. 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지난한 과정을 즐겼는데.
블럭스에서의 퇴사는 분석해볼 지점이 여전히 많다고 느낀다. 그 전까지와는 다르게 큰 방향은 맞았던 것 같다. 처음으로 목표 지점에 도달한 직후 방황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달렸고 그 과정 자체를 즐겼다. 그렇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어떤 것을 더 고려해야 했을까? 어렴풋하게 드는 생각이 있지만 말이 길어졌으니 다음 글로 넘겨야겠다.
써보고 나니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는 굉장히 이상적인 사람이고 그래서 우리 가족은 현실적으로 힘든 점들이 더러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빠를 미워했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20대의 끝자락에 다다른 나의 마음속 거울 앞에서 우리 아빠의 모습이 비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