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백수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베리 Oct 31. 2024

당근에서는 비싼 브랜드를 찾게 되.

백화점보다 당근에서 지갑이 쉽게 열린다

작년부터 당근을 아주 애용하고 있다. 작년에는 돈 잘 벌지 않았나? 맞다. 그럼에도.


당근에서는 팔지는 않고 사기만 한다. 파는 절차가 너어무 귀찮기 때문이다. 당근의 판매 절차는 아래의 크게 3단계인데, 모든 단계가 불편하고 귀찮다:   

     판매 개시: 예쁘게 물건 사진 찍기 & 적당한 가격 책정하기 & 매력적인 소개글 작성하기

     가격 협상: 채팅으로 연락하는 랜덤한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상담하기

     물품 배송: 조율한 약속 장소에 나가기 OR 박스에 포장해서 택배 발송 신청하기


3단계 모두 아주 귀찮은데,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물건이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실 지금도 팔고 싶은 옷이 2벌정도 있는데, 귀찮아서 방치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면 사는 경험은 아주 짜릿하다. 물건을 정가에 비해 20~80% 저렴하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당근 거래를 하는 시나리오는 아래의 2가지이다:   

     찾던 물건 구하기: 어떤 계기로 사고 싶다고 마음먹은 물건은 당근에서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상대적으로 비싼, 브랜드 가치가 있는 물건을 살때 애용한다.

     보다 꽂힌 물건 구매하기: 1번의 케이스로 성공적인 쇼핑 경험을 몇번 하다보니 아예 당근 거래라는 행위 자체에 중독될 때가 있다. 그러면 하루에도 몇 번씩 당근 피드를 보다 인형뽑기마냥 5만원 내외의 물건을 건져온다.


2가지 시나리오 중 1번은 정말 압도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특히 사고 싶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물건의 경우, 신품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이 마음의 벽을 허물어준다. 60만원짜리 포터 가방을 35만원에 건졌을 때 (미개봉 신제품), 24만원짜리 가누다 베개를 6만원에 건졌을 때(미개봉 신제품)는 분명 돈을 쓴 것인데 번 것만 같은 착각조차 느꼈다.

다만 2번은 시간이 지나서 자평해보면 늘 아쉬웠다.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데 이렇게 저렴하다고? 해서 가져오면 꼭 안쓰게 되더라.


적고 나니 생각이 조금 정리된다. 내게 당근 거래가 주는 가치는 다음과 같다:   

사치가 주는 포만감에 따라오는 죄책감을 저렴한 가격이라는 진통제로 덜어 주기


한편 재정적으로 위기감을 느낄수록 당근을 덜 이용하게 된다. 혹은 이 물건이 정말 꼭 필요할까?를 되물어본다. 나는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당근 거래 건수가 줄었다. 사더라도 옷보다는 베개와 같이 그 필요성에 대해 스스로 납득하는 물건을 주로 거래한다. 사치에 대한 심리적 저지선이 한 겹 더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친한 친구들과 당일치기 글램핑을 다녀왔다. 간만에 장작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이야기하던 도중 대화가 소비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나는 작년부터 옷은 당근에서 많이 샀다고 이야기했다. 다들 생소하다는 반응이었다. 구태여 당근을 변호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해보면 알걸. 새 물건은 가격도 꼼꼼히 따지지만 당근은 그렇지 않아. 오히려 당근에서 사치부리게 된다구”


다 쓰고 나니 얼마 전부터 눈독들이던 젠틀몬스터 안경이 아른거린다. 당근에 한번 검색해볼까?

매거진의 이전글 송길영 작가님과 좋아하는 일 찾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