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은 시간이 아닌 에너지의 함수다
나는 회사 다니던 시절 오래 일하는 편이 아니었다. 맥킨지에서는 보통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나는 최대한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는 보통 프로젝트 무관 열 시 전에 퇴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초반에는 오해도 많이 샀던 것 같다. 다들 그러는데 니가 뭐라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이런 칼퇴(?) 본능은 취업하고 나서 생긴 것은 아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도 야자가 끝나는 9시 50분이면 무조건 그날 공부는 멈추었다. 고1과 고2를 지나 고3이 다가올수록 야자 끝나고 자정까지 심야 자율학습(정확한 명칭인지 모르겠다 - 다들 ‘심자’라고 했는데)을 할 때 꿋꿋하게 그냥 집에 갔다. 심지어 쉬는시간, 점심시간, 저녁시간에도 절대 공부하지 않았다.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서 농구를 하던 친구들과 매점을 가건 아무튼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서울대와 맥킨지에 합격했던 나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인 걸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가 너무 잘 안다. 학창 시절부터 뭔가를 처음 배울 때 한번에 이해하는 법이 없었다. 주변에서 다들 이해한 것 같을 때 나만 이해 못한 적도 많았다. 특히 중학교와 고등학교 내내 수학 학원을 같이 다닌 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열등감과 좌절감을 느꼈다.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 모를 수가 없지 않은가. 먼저 다 풀고 여유롭게 쉬고 있는 친구를 힐끗 보면 아직 실마리도 찾지 못한 내 문제집이 많이 초라해 보였다.
그럼 내가 거둔 나름대로의 성과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물론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오늘은 운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짧은 시간만 앉아 있었지만 최대한 집중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적은 시간을 앉아 있지만 일과가 끝나면 완전히 뻗어버렸다. 학창 시절에도, 회사 생활에서도 늘 그랬다. 더는 머리를 쓸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기상 직후나 일과 중에는 아주 말이 많은 나는 하교하거나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무 말도 안하고 누워서 꿈뻑꿈뻑 유튜브 화면만 쳐다본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시간 대신 에너지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 사람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총량이 있고, 그걸 다 쓰면 시간이 있더라도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에너지는 양질의 휴식 활동을 통해서 충전된다. 기본적으로는 밤에 잠을 잘 자는 것, 그리고 질 높은 휴식을 취하는 것, 의미있는 관계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또한 단위 시간 당 에너지를 많이 쓰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이 따로 있다. 보통 새로운 지식을 배우거나 해보지 않았던 활동을 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반대로 이미 익숙한 지식을 다시 한번 복습하거나 늘상 해오던 행동을 하는 일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해도 피곤하지 않다. 예를 들면 평소 운동을 하지 않는 요리사에게 토요일에 2시간동안 축구를 시키면 다음날 일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반대로 요리는 매일 10시간씩 해도 꽤나 할만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 더해 개개인의 성향을 이해하면 그의 단위 시간당 생산성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는 무의식 중 계속 익숙하지 않은 상황 혹은 새로운 문제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이미 아는 것 혹은 할 줄 아는 것을 다시 곱씹으면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또한 문제를 발견한 그 즉시 반드시 해결해버리려는 강박적인 성향이 있다. 그 과정에서 텐션을 끌어올려서 설득하거나 때로는 갈등을 해야 하더라도. 따라서 단위 시간 당 에너지 소모가 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열 시만 되면 뻗어버렸던 것이다.
한편 휴대폰 배터리와 비슷하게도 에너지는 완전히 방전되는 경우 충전 효율이 낮아진다. 스스로 가장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항상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매일 가진 에너지를 0까지 소진했다. 이러한 습관은 새로운 일에서도 빠르게 성과를 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지속 가능하지는 않은 방식이었다. 점점 충전 효율을 떨어져갔고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줄어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번아웃이 안녕 하고 손을 흔들고 있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마치면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첫 번째는 에너지 사용에 대한 개인의 성향에 대해 사회적 혹은 조직적으로 조금더 이해도가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론 머스크가 일주일에 100시간 일하니까 모두 그래야 한다는 논리는 피상적이며 파괴적이다. 반대로 제프 베이조스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하루 8시간의 숙면이다. 무심하게 보면 앉아 있는 시간만 눈에 띄기 마련이겠지만 우리는 모두 안다. 오래 앉아있는다고 공부 잘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 번째는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인데 조금더 효율적인 리듬을 가지면 좋겠다. 일할 때 매 순간 100%로 달리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실제로 그러지 못하면서 그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그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좀먹으니까. 이제는 그러기보다는 꼭 집중해야 할 일과 조금 여유롭게 해도 되는 일을 적당히 판단하고 조합했으면 좋겠다. 마치 고등학교 때 이미 피곤해진 야자 시간에는 머리 안써도 되는 수학 문제를 풀었던 것처럼.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