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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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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베리 Nov 11. 2024

분명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

사람마다 가진 재능은 다르기에, 비교보다는 인정이 필요하다

요즘 안그래도 좋아하던 풋살에 더욱 빠져버렸다. 지금까지는 매주 나가서 2시간 경기 하고 오는 자체를 즐겼다. 잘될 때도 안될 때도 있지만 게임이 끝나면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모든 것이 리셋되고 즐거운 기대만을 안고 다시 풋살장을 찾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늘 하던 침투 받아먹기 말고 드리블 돌파도 하고 빌드업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유튜브였다. 예전에도 잘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려고 한두번 본 적이 있지만 그뿐이었다. 그런데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잘 가르치는 유튜버를 열심히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영상을 한번 보고 마는게 아니라 여러 번 돌려보았다. 다음은 연습이었다. 하루이틀 영상을 몰아보면서 따라해봄직한, 따라해보고 싶은 플레이를 몇가지 정했다. 처음으로 실전 경기가 끝나고 혼자서 집앞 운동장에 가서 영상에 나오는 훈련을 따라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나의 학습 속도는 아주 실망스럽다. 영상에서는 강의하시는 선생님 뿐 아니라 학생들도 아주 쉽게 따라하는 동작도 내가 따라하면 잘 안된다. 안타깝게도 지난 주 토요일에는 옆에서 연습하던 10살도 안된 동생이 슉슉 잘하는 모습을 망연히 지켜보기도 했다. 물론 아직 모르는 일이고 발전하려고 마음먹었으니 꾸준히 몇달 동안은 추가 연습을 해볼 생각이다. 그렇지만 벌써 느껴지기는 한다. 학습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는 것을.


문득 지금까지 유의미한 시간을 들였던 다양한 대상들이 떠올랐다. 공부는 비교적 노력 대비 성과가 좋았다. 반대로 고3과 재수 시절 공부만큼이나 오래 했던 롤은 더럽게 못했다. 내 기억에 전체 유저 중 상위 30%까지 도달하는데 2,000시간은 썼던 것 같다. 나보다 훨씬 적은 판수에도 더 높이 올라가있던 친구들을 보며 부들거렸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한편 체스류 장르인 롤토체스는 쉽게 잘 했다. 3,000 시간이 아니라 3,000등(상위 0.x%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까지 가는데 500시간이면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위에 말한 대로 공 차는건 영 젬병인 것을 확인 중인 요즘이다.


정리해보면 나는 몸을 써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다. 특히 순발력과 반응 속도가 중요한 일은 더더욱 그러하며, 위에 쓰지는 않았지만 손재주도 부족하다 (아마 PPT 제일 못만드는 컨설턴트 였을 것이다). 애당초 말이나 글 이외 형태로는 아웃풋 자체가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림, 공예, 운동, PPT..). 반대로 어떤 정보의 논리적 흐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계산, 설명, 추론하거나 나의 관점을 덧붙여 설득하는 일은 꽤 높은 수준까지 쉽게 올라간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나의 상대적인 학습 속도를 인지하고 기대치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축구 실력이 단기간에 늘 것이라는 기대는 불합리하다. 그러면 마음만 급해지고 몇번 하다 안되면 축구가 싫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2년간 100번을 넘게 한 사랑하는 취미를 잃고 싶지는 않다. 길게 보고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보려고 한다. 재능은 없지만 너무 좋아하니까.

둘은 1인 창업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고 말하는 일은 자신 있지만 만드는 일은 영 아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좋은 사업 기회와 제품 구상을 가지고 있더라도 고객을 만족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제품이 말이나 글의 형태가 아니라면). 반대로 만드는 걸 잘 하는 사람은 시작할 때는 애로사항이 없을 수 있다. 그렇지만 높은 확률로 어느 순간 자기가 만든 것의 잠재력을 분석하고 이해하며 알리고 팔아 줄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시작은 혼자 하더라도 본인이 갖지 못한 재능을 채워줄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서 서로 등을 맞대는 것이 필요하다.


끝으로 고등학교 때 노력하는데도 공부가 잘 안되고 성적이 안나온다는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믿지 못했다. 솔직히 충분히 간절하지 않으니까, 집중을 안하니까 안되는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축구를 너무 간절하게 잘하고 싶고 나름 노력도 하는데 안되는 내 모습을 보고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는 적어도 결과만 보고 타인의 열정과 진심을 오해하지는 말아야지. 그보다는 타인이 가진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해야지.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모든 분야에서 가장 잘하는 일만큼 빠르게 성장하길 바라는 허황된 기대는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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