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WSTS(World Semiconductor Trade Statistics)에서 반도체 시장에 대한 2023년 예상과 2024년 전망치를 발표했다. 2023년 마감 예상은 $5,201억으로 지난 6월 보고서에 명기된 $5,151억과 비교했을 때, 역성장 규모가 -10.3%에서 -9.4%로 소폭 개선되었다. 2024년 전망치도 $5,760억 11.8% 성장에서 $5,884억 13.1% 성장으로 당초보다 성장폭을 더 확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WSTS는 보고서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2024년 반도체 시장 성장의 중요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다운 사이클을 통과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계에는 반가운 소식임이 분명하다.
https://www.wsts.org/76/Recent-News-Release
WSTS는 매년 6월과 11월, 2차례 시장 전망 보고서를 발행하는데 주요 국가와 Application별 시장 규모를 파악하는데 중요 자료로 널리 사용된다. 보고서는 직전 2분기 동안의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을 기반으로 당해 연도와 다음 해의 예상치를 산정한다. 즉 6월에 발행되는 'Spring' 보고서에는 지난해 4분기, 당해 연도의 1분기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을 기반으로 하고, 11월에 발행되는 'Autumn' 보고서는 2분기, 3분기 실적을 참조하여 작성된다. WSTS의 시장 전망 보고서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참조되는 보고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망치를 산정하는 방식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본다.
WSTS 보고서는 직전 2개 분기 동안 집계된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시황 변화의 진폭이 작을수록 전망치의 적중률은 높아진다. 그러나 반대로 시황이 급변하는 경우, 현실과 동떨어진 전망치로 인해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일례로 2022년 11월 보고서에는 2022년 실적을 16.3% 성장, 2023년 전망치를 5.1%로 예상했던 반면, 2023년 6월 보고서에는 2022년 실적 마감을 3.3% 성장, 2023년 전망을 -10.3%로 변경하여 기존 대비 각각 -13%, -15.4%의 차이가 발생했다. 지난 2022년 하반기면 적지 않은 시장 참여자들이 수주 절벽을 체감하고 있을 시기였다. 하지만 반도체 완제품의 과거 판매 실적을 기반으로 한 Autumn (11월) 보고서에는 발행 당시에 시장 참여자가 느끼는 절박함이 포함될 수 없다. 그래서 시차가 있는 시장 전망 자료는 단순 참고용으로만 사용해야 하며, 시장의 미래를 판단하는 핵심 툴로 맹신하게 되면 자칫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작년 말, 반도체 관련 기업의 실무자들은 2023년 경영 계획을 수립하면서 현실 분위기를 반영한 목표보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초현실적인 목표를 강요받았다. 2022년 3분기까지의 실적만을 놓고 시장을 바라봤을 때, 시장은 여전히 우상향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암담한 시장의 분위기를 경영진에 아무리 설명해도 설득이 불가능했다. 담대한 숫자로 가득 채워진 2023년 경영계획은 2월을 채 넘기기도 전에 전면 재검토되었다. 이는 계획이 수립된 2022년 11월과 비교해 시장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경영진이 2023년 1월 마감을 통해 비로소 숫자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기업에서 올해 역시 작년말과 비슷한 상황을 되풀이했을 것으로 생각되어 마음이 무겁다.
WSTS는 내년 반도체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중요 포인트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과 밀접한 메모리 반도체 섹터를 꼽았다. 그래서 보고서에 명시된 메모리 반도체 섹터 44.8% 성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경우, 내년도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의 시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바라볼 우려가 있다. 44.8%의 성장률은 2023년 1분기의 저점을 기준으로 2,3분기 실적 성장을 반영한 기저 효과의 관점에서 시장을 내다봤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2년 동안 메모리 반도체 섹터가 연간 성장률(YoY) 40%를 상회했던 적은 2017년 61.49%, 단 1번뿐이다. 대내외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은데 과연 2024년에 역대 두 번째에 해당하는 성장률을 실현할 수 있을까?
내년에 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44.8%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17년 Data Center에 상응하는 강력한 모멘텀이 등장해서 시중의 메모리 반도체를 싹쓸이하다시피 해야 한다. 아니면 Wafer 팹의 가동률을 현 수준보다 대폭 낮춤으로써 시중에 풀리는 메모리의 절대량을 감소시켜 메모리의 가격을 끌어올려야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상승 모멘텀이 인공지능 반도체에 사용하는 HBM에만 국한되어 실현이 어렵다. 후자는 제철소의 용광로와 같은 Wafer 팹의 가동률을 떨어뜨려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데, 시장 참여자들 간의 '죄수의 딜레마'로 인해 선뜻 실행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중국의 경제 상황과 침체가 예상된 미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한다면 2024년에 메모리 반도체 섹터가 44.8% 성장할 것이라는 것에 회의적이다. 메모리 반도체가 예상보다 성장하지 못한다면 2024년 반도체 시장 전체의 성장률도 예상치에 미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1986년에 설립되어 업계에서 유일하게 월별 산업 출하 통계 자료를 발행하는 WSTS의 예측에 청개구리처럼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여러 다양한 의견은 시장을 바라보는 안목에 균형감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서술한 의견은 WSTS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는 시장을 바라보는 다양한 의견 중 하나라는 관점에서 바라봐 주길 부탁드린다. 또 하나 코로나 발생 이후, 자본 시장은 기업의 실적과 무관한 정글과 같이 때문에, 실적 예측을 그대로 자본 시장에 투영할 경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시장에 대한 예측과 자본 시장의 움직임은 별개인 점을 거듭 당부드리고 싶다.
정리하자면 2023년 4분기 반도체 기업들의 현재 분위기(원자재 사용량과 발주량, 생산라인 가동률)와 내년도 상반기 생산 계획량을 감안했을 때, 2023년 반도체 시장의 마감 실적은 -9.4%를 하회하고 2024년의 성장률 전망 또한 13.1%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