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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변 Jan 26. 2022

출간계약서에 사인하기 1분 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브랜드&법 이야기 ⑨: 2차적 저작물

| 어느 동화작가님의 반가운 방문


며칠 전, 오월 봄날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어느 동화작가님이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와~ 사랑스럽다’ 싶은 따뜻한 동화 그림과 몇 장의 출간계약서를 들고서.

예쁜 동화책들 ⓒAnnie Spratt on Unsplash

작가님의 두 가지 점이 인상적이었다.


① 계약서 내용을 직접 한 조항 한 조항 읽어보고 의문 나는 사항을 메모해서 가지고 왔음

② 2차적 저작물에 관심을 보이며 여러 관련 질문을 함


대개 우리를 찾는 작가들은, 


‘계약서를 읽어봤지만 한국말인가 싶고 머리만 아파요. 그냥 사인하려는데 괜찮겠죠?’


아니면, 


‘읽어봤는데 뭔가 느낌적인 느낌으로 저에게 불리한 거 같아요. 저는 손해 보기 싫으니까 알아서 해주세요’ 


이렇게 두 갈래가 대부분이기에(물론 그런 분들도 모두 검토받으려는 마음가짐 자체가 훌륭하다!!), 계약서에 메모를 달아온 우리 봄날작가님의 꼼꼼함과 합리적인 사고에 감동이 몰려왔다.

출간계약을 하려는데요! ⓒPaul Hanaoka on Unsplas

질문에 친절히 답변을 드리고, 주의할 점도 꼼꼼히 알려드리고, 작품을 구경하는 영광도 누리며 즐거운 회의가 진행되었다. 


| 출간계약을 앞두고 있다면


봄날작가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가 후배 작가들에게 법률적인 측면에서도 여러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 백희나 작가의 사태(?)를 알고 있던 봄날 작가님의 우려는 대략 이러했다.


"제가 출간계약은 하지만, 이 작품이 향후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져서 판매되는 것까지는 고려하지 않고서 대가를 정한 건데요. 그 내용이 계약서에 잘 반영되어 있나요?"


중요한 이야기다. 모든 계약서에는 내가 이 계약을 통해 넘겨주는(양도, 매도하거나 증여하는) 권리의 목록이 적혀 있다. 10만 원을 받고 나의 전 재산을 넘겨서는 절대 안 되듯, 적어도 어떤 계약을 할 때에는 반드시 이 계약에서 내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는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확인하라고! ⓒJonathan Borba on Unsplash

| 2차적 저작물이란


봄날 작가가 궁금해 한 부분을 법률적으로 해석하자면, ‘2차적 저작물’에 대한 권리에 관한 이야기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저작물의 분류를 잠깐 보자.


‘저작물’은 크게 11가지로 분류된다. 즉, 저작물은 표현방식에 따라 어문, 음악, 연극, 미술, 건축, 사진, 영상, 도형,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물로 나뉘고, 작성방식에 따라 2차적 저작물과 편집 저작물로 나뉜다. 이 중 ‘2차적 저작물’이란 원 작품을 기초로 하여 실질적 유사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형, 각색, 번역, 편곡, 영상 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외면적 형식을 다르게 표현하여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된 창작물을 말한다.


만일 원저작물을 약간 다듬은 데 불과하여 독창적인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다면(=원작과 실질적 동일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면) 이는 2차적 저작물이 아니라 원저작물의 ‘복제’에 불과하고, 반대로 원저작물에 대한 변형의 정도가 지나쳐 원저작물의 특징을 아예 잃게 되면 이때에는 2차적 저작물이 아닌 ‘새로운 저작물’이 된다.


그러니까 봄날작가의 질문은, 이 계약서상 출판사가 내 작품을 변형해 뮤지컬이나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의 2차적 저작물로 만들 권리를 갖는 것인지 여부를 물었던 것. 좋은 질문이다.


법적으로 볼 때 2차적 저작물은 원작과 별개의 저작물이다. 즉, 변형된 저작물에도 원작의 저작권과는 다른 별도의 저작권이 탄생한다. 따라서 이러한 2차 저작물의 권리를 누가 갖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원저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한 2차적 저작물에 대하여도 권리를 갖는 것이 원칙이다. 

요즘은 작품이 활용되는 창구가 많기도 하다 ⓒ69 on Unsplash

다만 이러한 권리는 일신전속적이지 않으므로 얼마든지 양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4년경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출판사가 사용하는 계약서 가운데 4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하도록 했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다음과 같았다.


① 2차 저작물 작성권을 포함한 저작권 일체를 출판사에 양도하는 조항

② 저작물의 2차적 사용에 처리를 전부 출판사에 위임하는 조항

③ 저작권 양도 시 출판사 등의 동의를 얻도록 한 조항

④ 자동 갱신으로 지나치게 장기의 계약기간을 설정한 조항


만일 여러분이 출간을 앞두고 계약서에 사인하려는 찰나 위와 같은 내용이 눈에 띄었다면? 반드시 심호흡을 하고 해당 내용에 관해 꼼꼼히 확인한 후에 비로소 사인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원저작자의 동의 없이 만들어진 2차적 저작물의 운명은? 동의 없이 저작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해당 저작자는 일단 2차적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획득한다. 다만, 그 권리 범위는 자신이 원저작물에서 추가적으로 부가한 가치에 한정되며, 원저작자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민형사상 법적 책임은 져야 한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계약서의 내용보다는 대표님의 의리를 믿고 출간계약에 사인을 하려는’ 모든 작가님들에게 “잠깐만요!”를 외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잠깐 멈추시고 지금 작가님이 무슨 권리를 넘기고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세요!" 하고 말하고 싶은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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