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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샘 지연 Sep 25. 2024

<주인 없는 과자가게>

  주인 없는 과자점?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고개를 들어 초록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쪽 대각선 골목 안쪽에 못 보던 간판이 있었다. 낡은 2층 건물을 부수고 공사를 하더니 어느새 높은 건물이 들어섰다. 그 1층이 과자가게다. 하얀색 바탕에 이름은 노란색 간판이 걸려 있었다. 학원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났고 바로 집으로 가기 싫었는데, 갈 데가 생겼다. 그쪽으로 가려면 횡단보도를 두 개 건너야 했다. 서 있던 자리의 횡단보도 불이 초록불로 바뀌었고, 바로 건너편 횡단보도 앞에 섰다. 두 번째 신호도 금방 바뀌었다. 좋았어! 

 

  문 앞에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장사가 잘 안 되나? 아무도 없어서 나는 좋았다. 문 손잡이를 당겨서 들어갔다. 세 개의 벽과 가게 한가운데에 세워놓은 층층 진열장에 과자와 젤리, 사탕, 껌, 카라멜이 가득했다. 문 반대쪽 벽 모서리에 우뚝 서있는 냉장고에는 내가 좋아하는 탄산음료도 꽉 들어차 있었다. 맛있는 것들이 천장까지 닿을 듯했다.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녀도 주인도 없지만, 비닐과 박스로 싸여 있어서 함부로 먹을 수가 없다. 주인도 손님도 없이 나 혼자였는데도, 괜히 눈치가 보였다. 천정에서 여러 개의 CCTV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걸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들키기 싫었다. 천천히 여유를 부리면서 진열된 먹을거리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몇 가지는 플라스틱 통에 시식할 수가 있게끔 작은 크기로 들어있어서 맛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껏 먹어보라고 쌓아둔 막대사탕도 있었다. 엄마랑 같이 오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오늘만큼은 다 먹어볼 테다! 


  다시 한번 더 돌아보면서 가격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뭐라도 살 것이다. 초코에 찍어먹는 막대과자가 1,200원, 포도 젤리가 할인해서 800원이었다. 이 정도는 나도 살 수 있다. 지갑을 가지고 나왔으니까. 살 것을 들고 계산대로 가니까 이런! 무인계산대에 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다고 써있는 것이었다. 들어올 때 눈앞에 펼쳐진 달콤이들을 보느라 문 앞에 계산대를 확인하지 못했다. 

  ‘돈이 있는데도 아무 것도 살 수 없다니…….’ 

 

  시식용 막대사탕을 한 움큼 집어 꽉 쥐었다. 방법이 없을까?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이 닫히기 전에 나는 집어든 사탕을 들고 급하게 나왔다. 주머니에는 엄마한테 주려고 시식용 커피믹스도 하나 챙겼다. 시식용이니까 가지고 나와도 괜찮겠지? 


 “엄마, 이거.”

 나는 퇴근해서 돌아온 엄마가 신발도 벗기 전에 현관 앞에서 커피믹스를 내밀었다. 

 “이서연, 엄마한테 인사도 안 하구. 그게 뭔데?”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잖아. 누가 줬어.”

 엄마는 마지못해 받으면서 나와 커피를 번갈아 쳐다봤다.

 “어디서 받았는데? 학원에서 막 가져온 거 아니야? 그러면 안돼!”

 “뭔 소리야. 내가 도둑인 줄 알아? 시식용으로 주는 거라구. 공짜! 엄마 생각해서 챙겨온 건데.”

 엄마는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맨날 잔소리다. 

 “알았어, 알았다구! 서연아, 근데 숙제는 다 했니?”

 엄마는 매일 퇴근하고 와서 숙제 이야기를 꼭 한번은 한다. 그게 나를 챙긴다고 생각하나 보다. 오늘은 들어주기로 하고, 나는 엄마를 졸졸 따라갔다.

 “엄마……. 나 카드 좀 만들어주라! 캐릭터 체크카드 있잖아. 윤아도 가지고 다닌단 말이야.”

 “3학년이 무슨 카드가 필요해? 엄마가 필요한 거 다 사 주는데. 뭘 사려고? 떡볶이집이랑 피자집은 엄마가 3만원씩 입금한 지 얼마 안됐는데 말야. 교통카드도 아빠가 만들어줬잖아.”

 “됐어, 됐다구!” 

 역시 엄마가 들어줄 리가 없었다. 괜히 얘기했다. 


  아니, 교통카드가 있었구나!      

  다음 날 하교 후 바로 그 가게로 향했다. 교통카드를 가지고 말이다. 편의점에서 쓸 수 있으니까 이 가게에서도 되겠지? 오늘은 꼭 내 돈으로 사 먹을 것이다. 어제처럼 두 가지 말고 여러 가지를 사고 만원도 넘게 쓸 것이다. 이번에는 바로 내가 사고 싶은 걸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어제 못 샀던 초코에 찍어 먹는 막대과자는 1,200원, 포도젤리는 1,500원, 지렁이 젤리 1,800원, 라면과자 500원, 초코볼 한 봉지 1,000원. 다 합하면 딱 6,000원이다. 너무 많이 샀나? 아니, 어제 못 샀으니까 다 살 거다. 아빠가 교통카드에 만원 정도 들어있다고 했으니까, 충분했다. ‘무인계산기 사용 순서’에 따라 스캐너를 이용해서 바코드를 찍었다. 이런 건 식은 죽 먹기다. 마트에서 여러 번 해봤으니까. 다섯 가지 제품이 바코드에 찍혀서 계산기 화면에 가격을 보여주었다. 내 계산이 맞았다. 계산기 화면에서 ‘결제하기’ 버튼을 클릭했고, 이제 카드 리더기에 카드를 넣기만 하면 끝이다. 그런데, 아니 이런! 카드를 읽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카드가 있는데도 물건을 살 수 없느냔 말이다. 교통카드는 카드가 아닌가? 엄마 카드를 몰래 가져올 걸 그랬나? 카드를 쓰면 엄마한테 바로 문자가 가서 난리가 날 것이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나 혼자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랑 같이 온 남자아이가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나보다 분명히 어려 보이는 아이는 엄마한테 이것저것 사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그 엄마는 우리 엄마보다 좋은 사람인가 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고르라고 했다. 딱 하나만이긴 하지만. 나는 돈도 있고 카드도 있는데도 살 수가 없었다. 그 꼬마가 부러웠다. 다섯 개나 골랐는데 계산을 못 하고 쭈뼛거리고 서 있는데, 두 사람이 계산대로 다가왔다. 지렁이 젤리를 들고 있는 꼬마가 나를 계속 쳐다봤다.

  ‘어쩌라구? 나도 그 정도는 살 수 있는 돈이 있다구!’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아이의 시선을 피했다. 당당하게 계산대에 서서 당당히 바코드를 찍고 결제하기 버튼을 눌렀었는데……. 살 수 없는 과자들을 들고 터덜터덜 제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냥 계산대에 두고 나가버리고 싶었는데, 꼬마가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와 엄마가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꼬마는 나를 한번 더 돌아보고 나갔다. 그 엄마는 꼬마의 시선을 돌리면서 나를 모른 척했지만,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 한참 동안 계산대를 노려보다가, 천정에 달린 CCTV도 괜히 한번 흘겨보았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다시, 계산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제일 오른쪽에 무인 계산대가 있고, 그 왼쪽에 바코드를 읽는 작은 모니터 화면이 있고, 다시 그 왼쪽에는 투명 플라스틱 상자 두 개가 쌍둥이처럼 붙어 있었다. 하나는 봉투값 100원을 넣는 것이었고, 하나는 “연락처나 메모 남겨주시면 행사 시 문자 보내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서 포스트잇에 거기 적혀있는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시식용 막대 사탕을 또 한 움큼 들고 나왔다.      

 

  집에 가서 엄마가 오기만 기다렸다. 정확히는 엄마의 휴대폰을 기다렸다. 엄마가 화장실에 간 사이, 엄마의 휴대폰으로 과자가게에 있던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주인 없는 과자점 주인이시죠? 가게에서 교통카드는 쓸 수 없나요? 우리 딸이 궁금해해서요.


  엄마가 문자를 보낸 것처럼 최대한 꾸며서 문자를 보냈다. 아이가 보냈다면 답장을 안 해줄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답장이 빨리 왔다. 


  우리 가게는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만 결제가 가능합니다. 교통카드는 연결을 안 해놔서요. 현금도 안되는 거 아시죠? 


  참 친절도 하시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팔면서 어떻게 현금이 안 되고, 교통카드도 안 되냔 말인가! 장사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나?     


 이제, 마지막 방법을 써보는 수밖에……. 엄마가 책상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 나를 확인하고침대에 들어가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걸 확인한 다음, 나는 수학노트 맨 뒷장을 뜯어서 쓰기 시작했다. 그 가게에 있는 투명 플라스틱 박스에 편지를 넣기로 했다. 쌍둥이 박스 중 메모를 넣는 박스에 말이다. 독서논술 학원에 내가 왜 다니나 궁금했는데, 이럴 때 써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사장님께 할 말이 있어요. 사장님 가게에서 고쳐야 할 점을 찾았거든요. 이 가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게가 아닌가요? 제가 두 번이나 가게를 가서 현금과 교통카드로 계산을 하려다가 못 사고 돌아왔습니다. 이 가게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가게인가요? 저는 돈이 꽤 많은 초등학생입니다. 제 친구들 중에는 저보다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요. 사장님이 잘 모르시나 본데, 초등학생들 중 부자가 엄청 많거든요.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만원을 봉지값 넣는 곳에 넣어 둘게요. 딱 이 돈만큼만 먹을 걸 좋아하는 걸 살 거니까 걱정 마세요. 저 덧셈뺄셈 잘하니까요. 못 믿으시겠으면, 제가 살 때마다 CCTV에 잘 보이도록 산 걸 보여드리지요.  

제가 아이디어를 하나 드리자면요. 이런 가게는 저 같은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곳인데, 카드만 되면 아이들이 먹을 걸 못 사잖아요. 우리 학교 앞 떡볶이집처럼 해보세요. 돈을 미리 아줌마한테 주면 그 금액만큼 떡볶이나 오뎅을 먹을 수 있어요. 이 방법을 써보는 건 어떠세요? 주인이 없는 과자점이라 힘들까요? 주인이시니까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저는 아이디어만 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내가 이렇게 긴 편지를 쓰다니 놀라웠다. 두 번밖에 안 갔는데, 먹고 싶은 것도 못 샀는데, 내가 이 가게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다음 날도 역시 하교 후, 그 가게로 향했다. 오늘은 학원에 가야 하니까 잠깐만 들를 수 있었다. 어제 늦게까지 쓴 편지를 꼭 메모 박스에 넣어야 했다. 가게 주인이 이걸 못 보면 어떻게 하지? 그냥 무시하고 버리면?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일단 넣어보기로 했다. 편지를 잘 접어서 메모박스에 넣고, 지갑에서 만원을 꺼낸 후 문 앞 천정에 매달려 있는 CCTV를 향해 쫙 펼쳐 보였다. 발 뒤꿈치를 있는 힘껏 들어올려 양손으로 내 만원을 번쩍 들어올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나는 당당하게 봉지 넣는 플라스틱 박스에 넣었다. 이 장면도 CCTV가 잘 찍을 수 있도록 최대한 몸을 비켜 섰고, 천천히 움직이면서 내 모든 행동을 CCTV가 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아,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가 있다! 

 

  오늘은 뭘 먹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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