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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샘 지연 Sep 17. 2024

<나의 토이 스토리>

- 경비아저씨와 열 살 은우의 이야기

  “은우야, 이것 좀 버리자!” 

  엄마가 별 모양 파란색 텐트가 들어있는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안돼! 내 친구들 집이잖아. 얘넨 어디서 살라고?”

  나는 장난감 친구들을 쳐다보며 말했어요. 

  우리는 며칠 전에 이사를 했어요. 아직 짐 정리를 다 못했지요.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엄마가 집 정리를 끝내자고 깨웠어요. 

  “집이 좁아져서 둘 곳이 없잖아.”

  “엄마, 제발! 나한테도 소중한 기지란 말이야.” 

  나는 엄마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집이 생겼는데, 내 친구들 집은 왜 버리려고 하는 걸까요? 

  “십 대라고 너도 다 컸다고 했어, 안 했어? 열 살이면 이제 아기 때 쓰던 물건은 정리해야지.”

  “내 보물을 버리는 건 안돼!” 

  나는 억울하고 짜증이 났어요. 엄마는 내 동물 친구들과 파란 텐트를 버리려고 마음먹었나 봐요. 엄마가 장난감을 정리하자고 얘기한 건 꽤 오래전부터에요. 이사를 하면 꼭 그러겠다고 내가 약속하긴 했었지요. 이렇게 금방 시간이 흘러 이사를 할 줄은 몰랐지만요. 내가 아끼는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요. 

  “엄마, 다 버리지 말고, 내가 아끼는 건 좀 남겨줘.”

  “그래, 그럼. 텐트는 꼭 좀 버리자. 부탁이야! 낡고 지저분하잖아.”

  “알겠어, 알겠다구.”

  나는 땅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나는 텐트를 잘 접어서 쓰레기봉투에 넣었어요. 짝을 잃어버린 작은 장난감들과 아프리카 사자 부부, 갈색 루돌프 인형을 그 위에 올렸지요. 친구들이 아프지 않게 살살 넣었어요. 

  “은우야, 그거 무겁지 않으니까, 지하 쓰레기장에 버리고 올래?”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친구들을 버리라고 하네요. 내 마음에는 관심도 없나 봐요.      


  나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현관문을 나섰어요. 내가 아끼는 장난감을 직접 쓰레기장에 버려야 하다니요. 너무해요! 나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서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얼마 전에 이사 온 귀염둥이구나. 왜 여기 앉아 있어?”

  경비아저씨가 계단을 올라오면서 말을 걸었죠.

  “저…….”

  “어이구! 엄마 심부름 왔구나. 착하네! 얼른 버리고 가야지.” 

  “이거 쓰레기 아니에요. 제 보물이란 말이에요.”

  “그래? 아저씨 한번 봐도 될까?”

  아저씨는 쓰레기봉투를 쳐다보며 말했어요.

  “너 이름이 뭐지?”

  “정은우요.”

  “으흠, 은우야. 아저씨가 이거 보관해 줄까?”

  “네? 정말요?”

  나는 너무 기뻐서 소리를 빽 지를 뻔하다가 입을 두 손으로 막았어요.

  “저기 아저씨 방에 보관해 줄게.”

  아저씨는 종이 분리수거장 옆, 철문으로 닫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저, 저기가 아저씨 방이에요?”

  “그래, 아저씨가 밤에 쉬는 방이야. 지하라서 입구가 깜깜하지만, 방에 불을 켜면 깜짝 놀랄걸! 없는 게 없단다.”

  “아, 아니에요. 괜찮은데…….”

  나는 무서웠어요. 문은 녹슬었고, 주변의 벽도 지저분해서 문을 열면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마구 튀어나올 것 같았거든요. 우리 집은 오래된 아파트인데, 특히 지하는 더 낡고 으스스해서 혼자 지하로 내려갈 때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게다가 지하에는 쓰레기 분리수거장도 있어서 냄새가 나고 지저분해요. 그런 곳에 경비 아저씨의 방이 있다니, 깜짝 놀랐어요.

  나는 긴장한 얼굴로 아저씨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고, 아저씨가 말했지요. 

  “저기 무서운 곳 아니야. 보고 마음에 들면 들어가고, 아니면 안 들어가도 돼.”

  경비아저씨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내 손을 잡고 가는 바람에 나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죠. 아저씨가 녹슨 철문을 잡아당기자,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어요. 

  ‘아, 어쩌지? 엄마한테 가야 하는데……’

  나는 미처 말을 하지도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갔어요. 

  아저씨가 불을 켜자, 그 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밝고 깨끗했어요. 방에는 낡은 서랍장 위에 TV가 있었어요. 몇 군데 가죽이 벗겨진 소파도 있었죠. 내 방보다 넓은 것 같았어요.

  “우와! 우리 집에는 TV 없는데, 아저씨 좋겠다!”

  “마음에 들어?”

  “그럼요, 완전 마음에 들어요.”

  나는 내 마음을 들켜서 부끄러웠어요. 아저씨한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배시시 웃었어요.

  “아저씨, 내 친구들 여기다 둬도 돼요?”

  “그럼! 저 구석에 박스 있지? 그 안에 넣어두면 돼. 아저씨가 이틀에 한 번씩 출근하니까, 아저씨 오는 날만 오는 거야. 알겠지?”

  “네!”

  나는 이 방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저씨가 매일 출근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하실에 내 아지트가 생기다니, 정말 신나는 일이네요.

  “아, 맞다! 아저씨, 지금 몇 시예요? 엄마가 왜 안 오나 할 거예요.”

  “엄마가 걱정하시겠다. 얼른 가거라.”

  아저씨가 윙크를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어요.     


  나와 비밀친구가 된 경비 아저씨 이름은 김진수예요. 사실 엄마는 아저씨를 좋아하지 않아요. 아저씨가 인생의 반을 여기서 보낸다고 우리가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 엄마는 억지로 웃음을 보이더라고요.

  “엘리베이터도 잡아 주고 아저씨 친절하지 않아? 왜 엄마는 안 좋아해?”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엄마한테 물어봤어요.

  “아, 그게…… 친절한 건 좋은데, 그 아저씨는 말을 많이 하셔서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엄마는 이렇게 말했지요. 하지만 이제 나는 아저씨가 좋아요. 내 친구들을 지켜준 고마운 분이니까요.     

  나는 지하실 아지트에 갈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해 보았어요. 화요일, 목요일 영어학원에서 돌아오는 셔틀버스에서 내려서 잠시 들르면 되죠. 그리고 엄마가 오후에 장을 보러 마트에 가는 시간에 갈 수도 있고요. 엄마가 현관문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나는 계단으로 지하실로 가면 되지요. 


  ‘엄마를 이렇게 계속 속여도 될까?’

  지하 아지트로 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고민이 생겼어요. 엄마한테 말해야 하나, 이대로 비밀로 해야 하나 하는 거죠. 아지트에서 노는 건 즐거웠지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진수 아저씨가 일하시는 화요일 오후, 영어학원 셔틀버스에서 내려서 나는 아지트로 전속력으로 달렸어요. 잠깐이라도 지하방에 가서 놀아야 하니까요. 엄마가 내가 도착하는 시간을 알기 때문에, 아주 잠깐만 놀다가 집에 가야 하지요.

  “아저씨, 안녕하세요! 지금 뭐 하세요?”

  “은우 주려고 장난감을 만들고 있지.”

  아저씨는 손재주가 엄청 좋아요. 아저씨 방 안에는 플라스틱과 페트병 등 재활용 쓰레기로 만든 장난감이 많지요. 아저씨 방에서 노는 건 엄청 신나는 일이에요.      


  놀다가 내가 깜빡 잠이 들었어요. 얼마나 잤을까요?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아저씨가 안 계시고 그 방에 나 혼자 있었어요. 

  나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계단으로 올라가 1층 경비실 앞으로 갔어요. ‘저녁식사 중’이라는 안내표가 붙어 있었어요. 아저씨는 자리에 안 계셨지요. 어느새 밖이 깜깜해졌어요. 몇 시가 된 걸까요?

  ‘어쩌지, 엄마한테 혼나는데……’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어요.

  “엄마! 엄마!”

  현관문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갔더니, 엄마는 다급하게 통화를 하고 있었어요. 나를 찾고 있었던 거예요. 엄마한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정은우, 너 어디 갔다 왔어?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엄마가 내 팔을 붙잡고 막 흔들었어요. 화가 단단히 났나 봐요.

  “엄마, 지금 몇 시야? 배 고파!”

  “뭐라구? 도대체 어디 갔다 온거냐구…… 도연이랑 유준이 엄마한테 전화하고, 학원에 다시 또 전화하고.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엄마가 나를 여기저기 살피며 큰 소리로 말했어요.

  “엄마, 사실은…… 지하실에 있었어.”

  “뭐라고?”

  “지하실 경비 아저씨 방에 있었어. 거기서 놀다가 깜빡 잠이 들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거길 왜 가? 경비 아저씨는 왜 애를 데리고 있었던 거야?”

  엄마가 흥분해서 인터폰을 누르려고 했어요. 

  “아니, 아저씨가 데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놀러 간 거야.”

  “거길 왜? 깜깜하고 지저분한 지하실에………. 도대체 왜?” 

  엄마는 점점 더 흥분해서 얼굴이 빨개졌어요. 나는 엄마가 괴물이 될 까봐 겁이 나고 무서웠어요.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경비 아저씨는 잘못한 게 없는데 나 때문에 혼이 날 게 뻔해요. 어쩌죠?

  “엄마, 내가 사실대로 말할 테니까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경비 아저씨한테도 뭐라 하지 않는다고 해줘!”

  “말도 안 돼! 너는 엄마가 몇 시간 동안 발 동동 구르면서 걱정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지!”

  엄마한테 혼이 나겠지만, 나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어요.

  “엄마, 사실은…… 거기에 내 장난감이 있어. 전에 버리려던 것들 있잖아. 아저씨가 방에 장난감 보관해 준다고 해서 거기다 두고 가끔 놀러 간 거야.”

  “엄마한테 말을 했어야지. 장난감이 그렇게 버리기 싫었으면,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서 엄마한테 얘길 했어야지.”

  엄마는 소리를 지르다가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어요.

  “은우야, 이게 뭐야? 셔틀 내리는 데 안 나가서 무슨 일이 났는 줄 알고…… 엄마가 얼마나 미웠는지 알아?” 

  “엄마 미안해. 잘못했어요!”

  엄마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는데, 이제는 콩콩콩 뛰고 있어요. 엄마는 나를 계속 끌어안고 있었지요. 나는 엄마 품에 오래 안겨 있으니까 좋았어요. 엄마랑 나는 밤에도 꼭 끌어안고 같이 잤지요.     


  다음다음 날, 진식이 아저씨가 일을 하시는 날이었어요. 나는 엄마한테 아저씨한테는 절대로 나쁜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학교에 갔어요. 엄마가 아저씨한테 막 따지면 내가 아저씨한테 너무 미안하잖아요. 그날따라 엄마는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학교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어요. 엄마가 갑자기 이상해졌어요. 내가 잘못했는데도 화도 안 내고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네요. 엄마와 나는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1층에서 아저씨를 만났어요.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아저씨에게 인사를 했어요.

  “귀염둥이, 학교 갔다 오는구나.”

  “네…….”

  엄마가 어색하게 답을 했지요. 

  “아저씨, 저기…… 우리 애가 아저씨 귀찮게 해 드렸다는 거 들었어요. 죄송해요! 아니…… 감사합니다!” 

  “아, 그게…….”

  아저씨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당황해서 나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보았지요.

  “은우 꺼 가지고 갈게요. 아저씨 불편하시잖아요.”

  “아, 괜찮은데요. 정말 괜찮은데…… 제가 보관해주고 싶어서 그러라고 한 겁니다. 정 불편하심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아저씨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계속 숙였어요. 나는 아저씨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나는 엄마랑 아저씨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내가 잘못을 하긴 했는데, 비밀 아지트가 없어지는 건 정말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엄마랑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계속 엄마 눈치를 보고 있었어요. 

  “엄마, 근데…… 그 장난감들 다 버려야 하지?”

  “아니.” 

  “그럼, 그거 어떻게 해?”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음…… 엄마, 나 그거 조금만 더 가지고 놀면 안 돼? 내가 잘 가지고 놀고, 책상 아래 바구니에다가 잘 정리할게.”

  “약속 지킬 수 있어?”

  “응, 꼭 지킬게, 엄마. 나 한 번만 믿어줘!”

  “그래, 좋아! 그럼, 엄마는 우리 아들 믿을게!”

  나는 엄마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엄마를 꽉 끌어안았어요.

  “은우가 아끼는 거 버리라고 해서 미안해! 은우는 아직 어린이니까 장난감 좀 더 가지고 놀아도 돼. 아직 열 살 밖에 안 됐는데 뭐. 엄마가 너무 서둘러서 미안해!”

  엄마가 말했어요.

  “엄마, 나는 엄마가 참 좋아!”

  “엄마는 은우 사랑하는데!”

  엄마가 밝게 웃었어요.     

  “은우야, 친구들 찾으러 갈까? 욕조에 물 받아서 동물 친구들 목욕시키자!”

  “좋았어!”     




2020년 봄 학기(3~5월)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학교 63기 동화 문집에 실린 나의 글이다. 오랜만에 꺼내 보니 추억에 잠기게 된다. 부끄러운 글이구나! 그래도 올려 본다. 동기들과 합평 모임을 하면서 동화를 쓰고 싶었는데, 암에 걸려서 도망치듯 3년 전부터 쓰는 것을 놓았었다. 올해 초부터 조금씩 조금씩 다시 쓰는 중이다. 다시 쓰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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