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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샘 지연 Oct 29. 2024

<요모조모의 탄생>

쓸모없는 아이

 “난… 쓸모가 없는 것 같아.”

 잠을 자려고 누워서 수호가 말했어요.

 “뭐라구? 일어나봐!” 

 침대에 같이 누웠다가 엄마는 얼른 일어나서 불을 켰어요.

 “쓸모가 없다니…… 왜 그런 말을 해?”
  엄마가 수호를 걱정하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인상을 써서 엄마 눈썹 사이와 콧잔등에 울퉁불퉁 주름이 생겼어요. 엄마는 자기 얼굴이 어떤지 모르겠지요. 수호는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려요.

 수호는 괜히 얘기를 꺼냈다고 후회가 되었어요. 엄마는 할 얘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지만 수호는 하고 싶지 않아요.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면 엄마는 자꾸 생각을 바꾸려고만 해요. 그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아니잖아요. 자고 싶은데 엄마가 또 괴롭히게 생겼어요.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네가 왜 쓸모가 없니? 얼마나 소중한 아들인데 말이야…….”

 엄마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지지가 않아요.

 “난 나눗셈도 못하잖아. 덧셈 뺄셈도 자꾸 틀리구.”

 “집중해서 안 하니까 자꾸 실수를 하는 거지. 모르는 게 아니야…….”

 그게 못하는 거잖아요. 수호는 아는데 엄마는 왜 인정하지 않는 걸까요? 답답해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아빠가 왔어요. 다행히 잘 수 있게 되겠지요.

 “애 재우러 와서 왜 쓸데없이 떠들고 있어?”

 “남편도 이리와 봐! 얘가 이상한 소리를 하잖아. 자기가 쓸모없대.”

 엄마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죠.

 “수호야, 무슨 일 있었어?”

 아빠가 물었어요.

 수호는 고개만 저었지요.

 “일단 자. 늦었잖아…….”

 아빠가 수호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어요. 아빠는 엄마 팔을 잡고 나갔어요. 

 엄마는 방에서 나가면서 계속 말을 했죠. 

 “내일 다시 얘기해. 왜 그러는지 꼭 얘기해줘. 알았지?”

 수호는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았어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한 것뿐인데 뭘 더 얘기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엄마는 또 심각해졌네요.      


 엄마는 곧 3학년이 되는 수호가 동물인형을 가지고 논다고 걱정을 해요. 혼자만 노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학교에서 또래놀이 시간마다 주원이와 재윤이랑 같이 인형 놀이를 하지요.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엄마가 잘 몰라서 그렇지요. 엄마는 3학년에는 과학이랑 사회 과목도 늘고 수학도 어려워지는데 어쩌나 걱정이에요. 열 살이 넘으면 인형을 가지고 놀면 안 되나요? 공부만 해야 하는 걸까요?     

 “넌 좋겠다. 쓸모가 있어서…….”

 학원 셔틀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었어요. 1층 주차장에 서 있는 주차 고깔 하나가 수호 눈에 들어왔어요. 윗부분이 조금 깨져서 끝이 뾰족뾰족했어요. 이건 늘 거기 있었겠지요. 오늘따라 왜 눈에 들어오는 걸까요? 수호는 시비를 걸 듯이 고깔 아래쪽을 툭툭 찼어요. 

 수호는 고깔한테 계속 말을 했어요. 

 “난 쓸모가 없거든.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넌 좋겠다. 조용히 이렇게 서 있기만 해도 돼서…….” 

 주차고깔은 묵묵히 수호의 다리를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 뒤로 수호는 학원에서 돌아오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주차 고깔한테 말을 걸었어요. 월, 수, 금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잠깐 고깔한테 갔지요.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뭔가가 필요했으니까요. 수호는 고깔에게 선물도 주었지요. 스티커를 붙여 주었어요. 집에는 엄마가 사 놓은 스티커가 잔뜩 있지요. 여섯 살 때부터인가, 엄마는 엄마 말을 잘 들을 때마다 토이스토리 버즈와 우디가 그려있는 칭찬 스티커 모음판을 벽에 붙여 놓고 스티커를 붙여 주었어요. 사실 수호는 그걸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걸 채우면 뭐가 좋은 걸까요? 그저 엄마가 원하는 거니까 아무 말 않고 있었던 거예요. 그 스티커가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수호는 그냥 집에 있는 스티커로 아무렇게나 붙이다가, 갑자기 주차 고깔을 좀 꾸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을 달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집에는 눈알 스티커가 없는데…….’

 아, 미술학원에서 만든 저금통이 생각났어요. 저금통에서 딱 2천원만 꺼내기로 했지요. 엄마 아빠가 동전이 생길 때마다 주면 그 저금통에 모으고 있어요. 엄마 아빠는 그 안에 얼마가 들어있는지 모르니까 괜찮겠지요? 자기 저금통에서 꺼내는 거니까 도둑질은 아니잖아요. 엄마가 마트에 간 사이에 수호는 저금통 아래 구멍을 열어서 동전을 쏟았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동전이 훨씬 많았어요. 부자가 된 것 같아 좋았지요. 500원짜리 동전 3개와 100원짜리 동전 5개를 골라서 동전지갑에 넣었어요. 돈 계산을 이렇게 잘 하는데 이 정도면 수학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내일 피아노학원 가는 길에 상가 문구점에서 눈알 스티커를 살 거예요.      


 한 달 정도 지났을까요? 수호의 주차 고깔은 어느새 다른 고깔과는 다른 게 되어 있었어요. 머리 부분이 깨진 게 좀 문제인데, 이건 이 아이를 알아보기 위한 표시니까 괜찮아요. 이제 눈까지 달면 완벽해질 거예요. 밤에도 알아볼 수 있게 야광 스티커는 이미 붙여두었지요. 눈알 스티커를 두 개 달았어요. 아래쪽에 붙어있는 별 모양 스티커가 입처럼 보여서 얼굴이 완성되었어요. 눈이 달린 세모 모양 외계인이 되었어요. 오랜만에 수호는 기분이 좋았지요.    

 앗, 이런!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지났어요.      

 ‘어, 어디로 갔지?’

 주차 고깔이 사라졌어요. 아직 이름도 못 지어주었는데 말이에요. 

 경비 아저씨한테 물어볼까? 아니에요. 그러다가 아저씨한테 혼나면 어떻게 해요? 자기 것도 아닌데, 스티커 붙여놨다고 뭐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수호는 주차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찾았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었어요.

 “그거…… 부서져서 경비 아저씨가 치웠어.”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서 수호는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았죠. 옆 동에 사는 5반 아이였어요. 얼굴도 이름도 알지만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 없는 아이, 강도연. 

 “어떻게 알았어?”

 수호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물었어요.

 “우리집에서 너네 주차장 다 보여.”

 강도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어요. 

 수호는 비밀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화도 났지요.

 “왜 막 쳐다보는데?”

 “그냥 보인 거거든. 우리집 창문 밖도 못 내다보냐?” 

 도연이는 수호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어요. 

 “왜 망가졌는지 알아? 어디로 갔는지는?” 

 수호가 물어보니까 도연이가 대답했다.

 “어떤 차가 주차하다가 주차 고깔을 벽에 밀어붙였나봐.”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데?”

 자신의 고깔에 대해서 강도연이 더 잘 아는 게 수호는 속이 상했어요. 정말 소중한 건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도연이가 싫었지요.

 “사실…… 너가 고깔에 계속 뭘 붙이길래…… 학교 가는 길에 주차장에 가 봤거든. 그거 깨져 있더라구.”

 도연이는 주차장을 돌아보면서 말했어요. 수호는 이 아이의 마음을 도대체 모르겠어요. 

 “어떻게 됐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못 봤어?”

 “많이 망가졌어. 경비 아저씨가 치웠나봐. 치우는 건 못 봤지만.” 

 “버렸을까?”
  수호는 힘이 쭉 빠졌어요.

 “글쎄…….”

 도연이는 주차장에 있는 화단 난간에 앉아서 수호를 쳐다보았어요. 

 “너…… 경비 아저씨한테 물어보러 같이 가줄래?”

 수호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혼자가 아니니까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았어요. 도연이는 앞을 한참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어요.

 마침 친절한 아저씨가 근무하는 날이에요. 이 아저씨는 말을 많이 하지만 친절하고, 다른 아저씨는 인사도 못할 만큼 무섭게 생겼고 늘 인상을 쓰고 있어요. 다행이에요. 친절한 아저씨가 있어서요. 

 경비아저씨는 경비실에 앉아 있었어요. 아저씨는 아이들을 보더니 경비실에서 나와서 인사를 했어요.

 “7층에 사는 꼬마네. 친구랑 같이 왔구나. 웬일로?” 

 “아저씨, 주차장 저기 저쪽에 있던 주차 고깔 못 보셨어요? 스티커 막 붙어있던 거요.”

 도연이가 주차장을 가리키면서 아저씨에게 먼저 말을 걸었어요. 왜 남의 것에 대해서 자기가 먼저 나서서 저러는지 수호는 기분이 나빴어요. 

 “아저씨, 그 고깔 제가 아끼는 거거든요. 찾아주시면 안 돼요?”
  수호는 아저씨 왼쪽 팔을 붙들고 매달렸어요. 

 경비 아저씨는 도연이와 수호를 번갈아 보더니, 양 미간에 힘을 주면서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어요.  

 “고깔? 아, 별 달린 고깔 말이구나. 그거 많이 부서져서 치웠지. 치운다 치운다 하고 있었거든.”

 “버렸어요? 어디다가요?”

 “버린 건 아니죠?”

 수호와 도연이가 동시에 말했어요. 둘은 서로를 쳐다봤어요.

 경비 아저씨는 미소를 지었어요.

 “버리진 않았을 텐데……. 김씨가 어디다 놨다고 했어. 찾아볼까? 둘에게 중요한 물건인 것 같으니.”
  “아니요. 그거 제 거예요.”

 수호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해 버렸어요. 자기가 꾸며놓은 거니까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게 왜 너 꺼야? 누구 꺼도 아니거든. 같이 쓰는 거지.”

 도연이도 소리를 높여 말하며 수호에게 다가왔어요. 둘은 신기하게도 키가 비슷했지요.

 “그게 뭐가 중허냐? 일단 찾아보고 얘기하자.”

 경비 아저씨가 두 아이의 팔을 붙잡고 멀찍이 떨어뜨리면서 이야기했어요.

 아저씨가 수호네 동을 끼고 돌아서 뒷동산 쪽으로 갔어요. 수호와 도연이는 아저씨를 따라 갔지요. 수호가 사는 302동 뒤에는 낮은 산이 있는데, 수호는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어요. 무섭거든요. 뱀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얼마 전에는 멧돼지가 나왔다고 방송에 나왔었지요. 산에서 멧돼지를 딱 마주치면? 상상만 해도 덜덜 떨려요.

 아저씨는 뒷동산에 올라가서 앞쪽 뒤쪽을 살폈어요. 산에 고깔이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아이들은 산으로 통화는 계단 아래에서 기다렸어요. 아저씨가 손에 주황색 고깔을 들고 내려오고 있었어요. 윗부분이 사라지고 아래의 반 정도만 남은 주차 고깔을요. 그래도 수호는 그게 바로 그 고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아래쪽 하얀 줄에 붙어있는 별 스티커는 그대로였거든요.

 “그거 맞아요, 맞아!"

 수호는 아래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을 올라가서 고깔을 잡았어요. 

 “아저씨, 이거 제가 가지면 안 돼요? 제가 살게요. 저 돈 있어요.”

 수호는 눈물이 막 흐르는 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강도연이 봐도 어쩔 수 없었죠. 도연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호을 쳐다보고만 있었지요. 

 “다 망가진 거 뭐 하려구? 이제 쓸모가 없어져서 치워둔 것을…….” 

 “그럼, 제가 가져도 되는 거죠?”

 “그래라 그럼. 근데, 조심해라! 여기 찔리면 피 나니까.”

 경비 아저씨는 주차 고깔 윗부분을 가리키면서 아이에게 고깔을 넘겼어요. 

 “조심해야 한다, 꼭!”

 아저씨는 가면서 돌아보며 아이들 등 뒤에 대고 말했어요.     

 “어떻게 할 건데?”

 잠자코 있던 도연이가 말을 꺼냈어요.

 “다시 꾸며야지. 안 입는 티셔츠나 모자 같은 거 있어?”

 도연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수호가 다시 물었어요.

 “언제 만날까?”

 “지금 몇 신데? 오늘은 안되겠는데…….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할 걸.”

 수호는 오늘 꼭 고깔을 꾸며야했어요. 

 “저녁 8시에 어때? 우리 엄마는 그때 샤워를 하거든. 그때 볼까?”

 도연이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지요.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가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수호와 도연이는 윗부분이 깨진 고깔에 아기 때 쓰던 비니를 씌워 주었어요. 홀로그램 스티커를 붙여서 화려하게 만들었구요. 두 어린이의 고깔은 이름도 생겼지요. 둘은 이름 때문에 엄청 오랫동안 싸우다가 고깔 이름을 ‘요모조모’라고 지었어요. 고깔 요모조모 아주 쓸모가 많으니까요. 도연이와 수호는 고깔을 한가운데 세우고 배드민턴을 치지요. 고깔이 없으면 경기를 진행할 수가 없어요. 제법 훌륭한 심판이지요. 요모조모를 빙글빙글 돌면서 두 아이는 같이 킥보드도 탈 수 있어요. 둘은 어벤저스와 스타워즈를 좋아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요. 고깔은 늘 두 아이 곁을 지켜주지요.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여요. 분명히 그래요. 별 모양 스티커가 조금씩 움직이는 게 보이거든요.

 

 수호는 오늘도 엄마가 샤워하는 동안 현관문을 살짝 열고 밖으로 나가지요. 주차 고깔이랑 도연이와 약속했거든요. 도연이는 2층에 살아서 수호가 집 앞에서 신호를 보내면 되지요. 둘만의 신호법이 있답니다. 작은 플래쉬를 도연이네 앞 베란다 창문에 대고 반짝반짝 빛나게 해요. 도연이는 준비를 다하고 있다가 집 천장에 신호가 보이면 바로 나오지요. 못 나올 때도 있지만 괜찮아요. 도연이가 안 나오면 수호는 고깔이랑 둘이 놀면 되니까요. 

 

 요모조모는 모자도 쓰고 옷을 차려입어 멋쟁이가 되었어요. 그 많은 주차고깔을 하나 밖에 없는 멋쟁이로 꾸민 건 수호와 도연이에요. 자기가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던 수호는 이제 쓸모를 찾았을까요?


 고깔 요모조모는 아이들과 같이 놀지 않을 때는 어디에 있을지 맞춰 보세요. 그건 바로바로 친절한 경비아저씨의 지하 방이지요. 짝수날에 오시는 아저씨가 방 구석에 있는 박스에 잘 숨겨 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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