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아빠, 엄마와 함께 (강제로) 쓴 독서감상문
외장하드를 정리하다가 찾아낸 글이다.
아이와 함께 썼던 독서감상문.
2015년 아들이 초등 2학년 때였다.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다시 기록해 본다.
동네 마을문고에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독후감 공모 내용.
그냥 한번 해봤다.
실은, 상금에 눈이 어두워서^^
명분을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가족들끼리 큰아들 2학년 여름방학을 의미있게 보내고자!
아이과 남편을 꼬시고,
아무리 생각해도
'인해전술'이 여기서도 통할 듯 싶어
나도 쓰고,
거기에 할아버지도 끌어들였다^^;;;
아들이 좋아할만한 만화책으로,
이왕이면 교육적인 것이며,
아빠도 거부하지 않을 만한 것으로 고심 끝에!
홍승우 작가의 [소년 파브르의 곤충모험기]1권부터 3권까지를 선택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특별상(삼대가 같이 참여하는)을 받았다.
상금도 30만원 타게 되었다.
[2학년 아들, 아빠, 할아버지, 엄마의 독서감상문]
<아이의 글>
나는 독후감을 쓰고 싶지 않았다. 우리 엄마가 여름방학에 쉬면서 하자고 하는데, 왜 학교에서 꼭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해야 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방학이니까 실컷 놀고만 싶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잔소리쟁이’라서 뭘 할 때도 계속해서 말을 많이 해서 참 힘들다. 그래도, 엄마가 하자고 하자고 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 권이지만 그래도 만화라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재미있어서 두 번씩 읽었다. 책은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었다.
우선, 1권에서 처음에 버그 은하계 곤충성의 외계인이 나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태양계와 우주, 행성들에 관심이 많아서 과학 책들을 주로 보고 있는데 반가웠다. 외계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1855년 진짜 파브르가 살던 시대로 가서 로봇 모기로 파브르의 피를 뽑아오다니. 이게 가능할까? ‘유전자 복제 시스템’이라는 말은 어려웠다. 그렇지만 이걸로 태어난 ‘소년 파브르’의 모험은 꽤 흥미로웠다. 솔직히, 중간중간 보면 이 책을 쓴 홍승우 아저씨가 중간중간 배울 내용을 자세히 써놓은 팁 페이지가 있었는데, 그 부분은 자세히 읽지 않았다. 만화 부분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3권까지 열심히 볼 수 있었던 건 역시 ‘개미’ 때문이었다. 나는 요즘 엄마한테 ‘개미 키우기 세트’를 사달라고 하고 있었다. 저번에 서천 국립 생태원에 갔을 때 기념품샵에서도 그게 있어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는데, 엄마는 못들은 척 하고 그냥 가게를 나가 버렸다. 개미를 키워보고 싶은데 말이다. 이 글을 다 쓰고 이번에는 꼭 사달라고 해야겠다. 책에서 개미 세상에 ‘민들레 왕국’과 ‘돌가시 왕국’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일개미들과 달리 누워서 노는 수컷 개미들이 정말 부러웠다. ‘개미귀신’이 이름대로 귀신처럼 개미를 잡는 방법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공생’과 ‘천적’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어려웠는데, 이 책에서 개미는 무당벌레로부터 진딧물을 지켜 주고, 진딧물은 개미에게 영양분을 주는 것을 그림으로 보면서 무슨 말인 지 조금 알게 되었다.
나는 곤충들이 참 불쌍하다. 너무 작아서 사람들에게 자주 밟히니까 말이다. 여기서 나오는 ‘김윤식’ 같이 곤충들을 괴롭히는 어린이는 되지 말아야겠다.
내가 꼭 칭찬 받아야 할 것 하나! 엄마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학교 도서관에서 ‘파브르’에 대한 책을 찾아 다시 읽어 봤다. 그리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얘기했다. 엄마는 크게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은 아니다. 역시, 우리 엄마는 끝까지 그냥 두질 않는다. 다 읽고 나니까 잘 읽었음 됐지,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았나, 어떤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는 지 자꾸만 자꾸만 물어본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이 재미있었다.
엄마! 개미 키우기 세트 사줄 거지!!!
<아빠의 글>
부모는 자기 멋대로 이상(理想)적인 자녀의 모습을 그린다. 예를 들면 내 아이가 TV와 컴퓨터 게임을 멀리 하고, 책 속에서 즐거움을 찾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는 부모의 욕심일 뿐이다. 사실 부모들도 자녀에겐 “책 좀 읽어라”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자신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기 일쑤다.
여름방학을 맞은 아들이 산과 들로 뛰어다니기를 바라는 것도 헛된 욕심이다. 솔직히 곤충채집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도 학창시절에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잠자리는 잘 잡지만, 매미는 자신 없다. 메뚜기와 여치가 어떻게 다른지도 잘 모르겠다.
TV 만화와 장난감에 열광하는 아들이 이번 방학에 파브르 곤충기를 읽는 게 기특했다. 마침 휴가를 얻은 나도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읽어보았다. 자유자재로 몸을 바꿀 수 있는 소년 파브르가 악당들의 공세에 맞서 착한 개미왕국을 건설하는 줄거리이다.
아들 덕분에 곤충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곤충은 아니지만, 거미는 강도나 쓰임새가 다른 여러 종류의 거미줄을 뽑아낸다는 것이 신기했다. 개미와 진딧물의 공생 관계, 개미 왕국에서 수개미의 역할, 진동에 민감한 두더지 등도 재밌었다.
같은 책을 읽은 부자(父子)는 곤충을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 휴가 말미에 개학이 임박한 아들의 손을 잡고 같이 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가는 길에 풀숲에서 커다란 거미줄을 발견해 아들과 함께 한참을 지켜봤다. 학교 운동장에선 죽은 귀뚜라미 한 마리에 작은 개미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는 것도 봤다. 개미떼는 너무 커다란 식량을 운반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아들 녀석은 작은 지네 한 마리가 귀뚜라미 시체를 노리는 것을 보면서 재미있어 했다. 기대했던 개미와 지네의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들이 개미집을 사달라고 했다. 투명한 통에 파란색 젤이 가득 차있는데 개미한테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적혀 있다. 나 학교 다닐 때는 마요네즈 유리병에 흙을 가득 채워 넣었는데 요즘은 이런 걸 파는구나 싶었다. 비인간적인, 아니 ‘비개미적’인 생태환경인 것 같아 사주지 않았다. 돌아오는 휴일엔 모종삽을 들고 뒷산에 가서 아이와 함께 흙을 파봐야겠다.
<할아버지의 글>
장 앙리 파브르(Jean Henri Fabre, 1823 - 1915)는 농촌 출생이었다.
그 점은 수빈이 할아버지인 나와 같다. 파브르는 곤충과 함께 놀았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벌레와 같이 살았다. 개구리 알에서 올챙이가 되고 뒷다리와 앞다리가 나오고 없어지는 것을 나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보았다. 개울에서 송사리를 잡고 미꾸라지를 잡았다. 개울 돌 틈에서 맨손으로 더듬어 붕어를 잡았다. 붕어 지느러미 모양이 위치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지느러미의 역할이 다르기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침에 일어나 호박 밭에 가서 호박 수꽃 수술의 꽃가루를 암꽃 암술에 문질러 주는 것이 가루받이이고 그러면 호박은 틀림없이 열렸다. 호박 암꽃이 핀 줄기의 끝을 잘라주면 거기서 새 줄기가 나오고 새줄기 맨 먼저 암꽃이 피고 그러면 호박을 많이 딸 수 있다는 것을 책에서 배우지 않고도 경험으로 배웠다. 이처럼 관찰은 생활의 일부이고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은 관심을 갖게 한다. 관심은 곧 연구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내 손자가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이는 나의 어린 시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연 속에서 자랐기에 자연과 가까웠고 또 무엇이든지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받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파브르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학교 교사였다. 나도 교직을 선택했고 도시의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그러면서 늘 역사와 관련한 우리나라 지리와 환경을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와 지리와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파브르의 제자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만큼 자연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니 자연 속에서 그만큼 행복하지 않았겠는가! 나는 내 손자가 벌레, 곤충, 식물, 동물, 논과 밭, 시냇물과 강, 바다와 산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또 한 가지! 파브르는 곤충기를 시적(詩的) 언어로 저술하였다.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 속에 살았던 곤충학자는 시를 읽었을 것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 곧 자연과 문학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과학과 문학은 그 끝에 가서는 결국 하나이다.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고 기록하는 하나의 영역이다.
나는 내 손자가 관찰을 하면서 글을 읽고 쓰며, 그리고 과학을 공부하며 문학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성장하길 기원한다. 그것은 곧 융합이다. 학문의 융합은 곧 바람직한 인격의 형성과정이다. 나는 내 손자가 많은 지식과 함께 폭넓은 교양을 가진 교양인으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내 손자 수빈이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엄마의 글>
아들의 2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뭔가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송파구 가족 독후감 대회’다. 우리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니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처음 독후감을 쓰자고 말했을 때 정작 가족들의 반응은 영 별로였다. 남편은 바쁘다며 꼭 해야 하냐고 하고, 여섯 살 둘째 아들이야 함께 하기는 힘들다 쳐도, 아홉 살인 큰 아들도 글 쓰는 것 싫다고 야단이었다. 그나마 글을 쓰시는 시아버님께서 바로 써주셔서 어찌나 다행인지... 책 선정이 가장 힘들었다. 남편과 큰 아들이 좋아할 만한 책으로 고르는 게 관건이었다. 요즘 부쩍 만화를 좋아하는 큰 아들을 고려하면서도 엄마 욕심에는 학습에도 좀 관련이 있어야 하겠고, 영 의욕이 없는 남편을 끌어들여야 했다. 고민 끝에 홍승우 작가의 ‘소년 파브르의 곤충 모험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실은 우리 동네 마을문고에서 전에도 빌리긴 했었는데, 큰 아들이 쳐다도 안보길래 그냥 반납한 적이 있던 책이다. 남편이 평소에 좋아하는 ‘비빔툰’ 작가의 책이니 남편도 펴보기는 할 터이고, 나도 이번에 ‘파브르’나 곤충에 대해서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분명히 ‘파브르’에 대한 위인전을 읽었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도 어쩜 지금도 파브르가 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왕이면 좀 있어 보이는 동물 같은 것을 연구할 것이지, 작은 곤충들을 뭘 그리 오랜 세월 연구를 했을까 말이다. 내 남편이 그런 사람이었으면 옆에서 지켜보며 내조해 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우리 아들들이 곤충을 연구하고 싶다고 하면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천상 아줌마의 현실적인 생각이 든다. 동시에 순수하지 못한 자신을 보며 슬퍼진다. 사실 우리 아들들이 파브르 같이 한 분야에서 최고로 길이길이 기억될 학자가 된다면야, 그리고 이 책을 쓴 홍승우 작가처럼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야 뭘 더 바라겠는가! 다시 ‘엄마’의 욕심이 꿈틀거린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홍승우 작가의 이 책보다는 비빔툰이 더 마음에 든다. 남편이 엄청 추천해서 읽게 된 비빔툰 시리즈 중에서 특히 ‘다운이에게 동생이 생겼어요’와 ‘다운이가 학교에 가요’편은 공감하며 감동 받으며 읽었다.
나도 역시 아이처럼 만화라서 그런지 세 권을 부담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별 내용 없이 가볍게 쓰여진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아주 많은 곤충들이 등장한다. 특히, 알낳기, 애벌레 키우기, 집짓기 등 개미의 세계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나는 만화 부분을 집중적으로 본 큰 아들과는 달리, 중간중간 나오는 파브르 박사님의 곤충들에 대한 팁을 열심히 읽었다. 그래도 어린이 보다는 책을 읽고 배운 게 조금은 더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해서이다.
1권에서 3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동안, 특별히 곤충에 대해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파브르’와 특히 ‘곤충'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큰 아들은 학교 교재 통합교과 ’여름‘에서 여름 곤충을 배웠다고 책을 펴보며 엄마에게 자벌레 등을 설명해 주었다. 여섯 살인 작은 아들도 곤충에 대한 책을 가져와서 몇 번이고 읽어달라고 하며 자기는 곤충 중에서 ’개미‘가 제일 좋다고 했다. 자기도 끼워 달라는 것이겠지. 아들들이 박식해진 것은 아니지만, 관심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은 결과이지 않을까! 이 책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둘째 아들도 ’소년 파브르‘에 대해서는 안다. 이것으로도 이 계기로 가족과 함께한 시간들이 충분히 보람되었다고 생각한다.
내일은 우리 아들들과 함께 ‘개미 키우기 세트’를 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