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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13. 2021

원래 애 키우는 건 힘든거야

코로나19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첫날을 보내며

 40년 넘게 살면서 이런저런 ‘유행’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왔었는데, 전염병 유행까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19 4차 유행이 왔다.


신규확진이 엿새 째 1천 명대. 결국 오늘(2021년 7월 12일)부터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됐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나는 오후 6시 이후에 오로지 1명만 만날 수 있다.     


이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나에게 부여된 한 줄 정의를 되새겨 본다.


6살 아이가 있는 워킹맘.  


내가 현재 감당하고 있는 여러 역할들 중에서 worker  mom  최우선이라고 생각되므로 기꺼이 감당하는 수식어지만, (워킹맘이란 말의 좋고 싫음의 문제까진 일단 얘기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전염병 시국엔 한없이 버겁게 느껴진다.        


일단 아이가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닌다면 당장 오늘부터 가정보육에 들어가야 한다.

내 아이의 경우는 학원으로 등록된 유치원을 다니고 있어서 등원은 할 수 있는데, 곧 여름방학이 예정되어 있고 전에도 원에 확진자 가족이 생겨 급하게 가정보육으로 전환 한 적이 있어서 또 다시 그럴 경우를 대비한 계획을 세워놔야 한다.   


올 해 4월 경,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다 퇴소하고 학원으로 인가받은 사설 놀이유치원으로 옮긴 아들. 사실 3년 전 국공립어린이집을 힘들게 들어갔었다. 어렵사리 순번을 받은 후에도 종일반을 신청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프리랜서인 내가 각종 근무확인서와 통장내역서 등 온갖 서류들을 제출하면서 국공립 어린이집 종일반에 신청했던 이유는 퇴근이 늦어 6시 이후 하원하게 될 경우를 대비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단히 대비했던 나의 ‘만약’들은 3년 동안 단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다.

워낙 등원거부가 심했던 아이였던지라 낮잠도 안 재우고 집에 일찍 데려오는 경우가 허다했고, 걸핏하면 감기에 걸려 와 며칠씩 쉬기 일쑤였으며, 하원 이후 할머니들이 계셨기 때문에 종일반까지 둔 적은 한 번도 없이 칼 하원 하였다.      


6살이 되자 아이가 급격히 어린이집에 흥미를 잃어가는 게 보였다. 코로나 시국에 어린이집에 거의 가지 못하게 되면서 과감하게 놀이유치원 개념의 학원으로 선회를 했다.  국가에서 원비를 100% 지원 받고 살다가, 당장 수십여 만원의 돈이 들어가게 된 상황. 목돈이 쑥쑥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행히도 새로운 유치원은 첫날부터 대만족. 일주일 다녀 본 아이가 “엄마, 새로운 유치원에 가길 잘 한 것 같아!” 라고 말해 주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석 달 째 즐겁게 다니고 있는 와중에 다시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찾아오다니 너무 걱정이 되었다. 무작정 가정보육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꾸역꾸역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마음 한 켠이 너무 불편했다.


코로나19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되는 오늘 아침. 워킹맘인 나는 여러모로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고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는데, 그때 불현 듯 며칠 전 아이가 내게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엄마, 원래 애 키우는 건 힘든 거야!”     


고작 5년 남짓 살아낸 내 아이로부터 왜 저런 말을 들었는지 그 상황은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다. 거실을 엉망으로 어질렀거나,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며 찡찡 거렸거나, 둘 다였거나... 아마도 그 정도쯤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이 때문에 잔뜩 화가 난 내가 혼잣말로 뭐라 뭐라 했던 것 같은데 그때 아이가 불쑥,


“엄마, 원래 애 키우는 게 힘든 거야...”      


라는 말을 하더니 제 방으로 쓰윽 들어가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약간 초현실적인 기분마저 들었던 것 같다.  

저런 얘기를 누구한테서 들었을까.

할머니들이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을 들었을 수도 있고, 다른 경로를 통해 접했을 수도 있지만

아이는 그 문장을 정확히 읊어냈고, 의미까지 고스란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당시에는 별다른 대응을 못하고 지나갔는데, 그 뒤로 가끔씩 아이의 그 말이 생각났다.

자기도 훤히 아는 진리를 왜 엄마만 모르고 있냐는 듯 애잔함 반, 담담함 반의 표정까지 생생히 기억난다. 6살은 어휘력만 폭발하는 게 아니라 그 어휘에 맞는 표정까지 함께 완성되고 있었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직업인이 된 순간부터 언제나 내 머릿속엔 ‘원래 남의 돈 버는 게 힘든 거야.’ 라는 말을 잊지 말자 다짐했었는데 엄마가 되니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원래 애 키우는 게 힘든 거야.’. 맞는 말이긴 한데, 이런 말을 당사자인 아들로부터 듣게 되다니!       


일과 육아.

힘들긴 하지만 때때로 행복한 순간들도 있다는 건 ‘공통점’.  

일 하다가 힘들면 ‘잠시만 남의 돈 안 받고 안 힘들어보겠습니다!’ 라고 지를 수도 있지만, 애 키우다가 힘들면 ‘잠시만 애 안 키우고 안 힘들어보겠습니다!’ 라는 도발은 할 수 없다는 건 ‘차이점’.      


뒤숭숭한 마음을 안고 시작했던 하루가 잠시 뒤면 끝난다.   

걱정을 뒤로한 채 ‘worker’ 와 ‘mom’ 의 역할도 그럭저럭 잘 해내었다.

설사 잘 못했다 한들 어떠한가. 6살 꼬마도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거 원래 다 힘든 거라고.


무사히 흘러가 준 하루가 감사하고 기뻐서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이 글을 썼다.

힘들긴 하지만 때때로 행복한 ‘순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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