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첫날을 보내며
40년 넘게 살면서 이런저런 ‘유행’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왔었는데, 전염병 유행까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19 4차 유행이 왔다.
신규확진이 엿새 째 1천 명대. 결국 오늘(2021년 7월 12일)부터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됐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나는 오후 6시 이후에 오로지 1명만 만날 수 있다.
이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나에게 부여된 한 줄 정의를 되새겨 본다.
6살 아이가 있는 워킹맘.
내가 현재 감당하고 있는 여러 역할들 중에서 worker 와 mom 이 최우선이라고 생각되므로 기꺼이 감당하는 수식어지만, (워킹맘이란 말의 좋고 싫음의 문제까진 일단 얘기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전염병 시국엔 한없이 버겁게 느껴진다.
일단 아이가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닌다면 당장 오늘부터 가정보육에 들어가야 한다.
내 아이의 경우는 학원으로 등록된 유치원을 다니고 있어서 등원은 할 수 있는데, 곧 여름방학이 예정되어 있고 전에도 원에 확진자 가족이 생겨 급하게 가정보육으로 전환 한 적이 있어서 또 다시 그럴 경우를 대비한 계획을 세워놔야 한다.
올 해 4월 경,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다 퇴소하고 학원으로 인가받은 사설 놀이유치원으로 옮긴 아들. 사실 3년 전 국공립어린이집을 힘들게 들어갔었다. 어렵사리 순번을 받은 후에도 종일반을 신청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프리랜서인 내가 각종 근무확인서와 통장내역서 등 온갖 서류들을 제출하면서 국공립 어린이집 종일반에 신청했던 이유는 퇴근이 늦어 6시 이후 하원하게 될 경우를 대비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단히 대비했던 나의 ‘만약’들은 3년 동안 단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다.
워낙 등원거부가 심했던 아이였던지라 낮잠도 안 재우고 집에 일찍 데려오는 경우가 허다했고, 걸핏하면 감기에 걸려 와 며칠씩 쉬기 일쑤였으며, 하원 이후 할머니들이 계셨기 때문에 종일반까지 둔 적은 한 번도 없이 칼 하원 하였다.
6살이 되자 아이가 급격히 어린이집에 흥미를 잃어가는 게 보였다. 코로나 시국에 어린이집에 거의 가지 못하게 되면서 과감하게 놀이유치원 개념의 학원으로 선회를 했다. 국가에서 원비를 100% 지원 받고 살다가, 당장 수십여 만원의 돈이 들어가게 된 상황. 목돈이 쑥쑥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행히도 새로운 유치원은 첫날부터 대만족. 일주일 다녀 본 아이가 “엄마, 새로운 유치원에 가길 잘 한 것 같아!” 라고 말해 주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석 달 째 즐겁게 다니고 있는 와중에 다시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찾아오다니 너무 걱정이 되었다. 무작정 가정보육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꾸역꾸역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마음 한 켠이 너무 불편했다.
코로나19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되는 오늘 아침. 워킹맘인 나는 여러모로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고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는데, 그때 불현 듯 며칠 전 아이가 내게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엄마, 원래 애 키우는 건 힘든 거야!”
고작 5년 남짓 살아낸 내 아이로부터 왜 저런 말을 들었는지 그 상황은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다. 거실을 엉망으로 어질렀거나,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며 찡찡 거렸거나, 둘 다였거나... 아마도 그 정도쯤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이 때문에 잔뜩 화가 난 내가 혼잣말로 뭐라 뭐라 했던 것 같은데 그때 아이가 불쑥,
“엄마, 원래 애 키우는 게 힘든 거야...”
라는 말을 하더니 제 방으로 쓰윽 들어가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약간 초현실적인 기분마저 들었던 것 같다.
저런 얘기를 누구한테서 들었을까.
할머니들이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을 들었을 수도 있고, 다른 경로를 통해 접했을 수도 있지만
아이는 그 문장을 정확히 읊어냈고, 의미까지 고스란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당시에는 별다른 대응을 못하고 지나갔는데, 그 뒤로 가끔씩 아이의 그 말이 생각났다.
자기도 훤히 아는 진리를 왜 엄마만 모르고 있냐는 듯 애잔함 반, 담담함 반의 표정까지 생생히 기억난다. 6살은 어휘력만 폭발하는 게 아니라 그 어휘에 맞는 표정까지 함께 완성되고 있었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직업인이 된 순간부터 언제나 내 머릿속엔 ‘원래 남의 돈 버는 게 힘든 거야.’ 라는 말을 잊지 말자 다짐했었는데 엄마가 되니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원래 애 키우는 게 힘든 거야.’. 맞는 말이긴 한데, 이런 말을 당사자인 아들로부터 듣게 되다니!
일과 육아.
힘들긴 하지만 때때로 행복한 순간들도 있다는 건 ‘공통점’.
일 하다가 힘들면 ‘잠시만 남의 돈 안 받고 안 힘들어보겠습니다!’ 라고 지를 수도 있지만, 애 키우다가 힘들면 ‘잠시만 애 안 키우고 안 힘들어보겠습니다!’ 라는 도발은 할 수 없다는 건 ‘차이점’.
뒤숭숭한 마음을 안고 시작했던 하루가 잠시 뒤면 끝난다.
걱정을 뒤로한 채 ‘worker’ 와 ‘mom’ 의 역할도 그럭저럭 잘 해내었다.
설사 잘 못했다 한들 어떠한가. 6살 꼬마도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거 원래 다 힘든 거라고.
무사히 흘러가 준 하루가 감사하고 기뻐서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이 글을 썼다.
힘들긴 하지만 때때로 행복한 ‘순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