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의 악화
지난 3월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언어와 처리속도가 느린 아이는 말문이 트이면서 간투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언어와 처리속도가 늦기 때문이고 많은 말을 빠르게 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성격까지 더해져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였다. 다행히 1학년때는 본인도 말 더듬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2학년이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아이의 말더듬이 너무 심해졌던 것이다. 어어어어엄마 내내내내 가 게임을 했는데, 게게게게게임에선.... 갑자기 말더듬이 심해진 아이를 보고 처음엔 장난을 하나 싶었던 나는 뭐야, 너 장난하는 거야? 왜 이렇게 말을 더듬어? 하고 물었다. 어어어엄마, 이 정도로만 말을 더듬었던 아이는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화를 냈고 나는 그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이의 말 더듬은 하루가 다르게 심해졌다. 알고 보니 학교 발표 시간에 (우리 아이는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 더듬을 하는 아이의 성향이 대다수 완벽 주의인 것이 많은 것처럼 완벽 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 말을 하다가 어어어-하고 더듬이 나왔고, 친구들이 웃는 일이 있었다고 아이가 이야기를 했다. 게다가 새로 알게 된 친구가 아이의 말 더듬을 보고 "뭐야, 말을 잘 못 하네. 제대로 말 좀 해봐." 하는 기름에 물을 붓는 사건까지 있었다. (그 친구는 악의가 당연히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를 처음 보는 자리였고, 아이들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자신의 말 더듬을 제대로 자각하기 시작했다. 언어 치료 선생님에겐 제가 말을 더듬어서 하는 거죠? 되묻기도 하고, 말 더듬 하는 건 안 좋은 거예요! 말하기도 했다. 심호흡을 하고 말하면 어떨까? 하는 말에 말 중간중간 심호흡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박수를 치며 말하는 부수적인 태도까지 더해져 간투사만 쓰던 아이가 전형적인 말 더듬이로 가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국내에 몇 개 없는 말 더듬 치료 센터에 대기 예약을 걸어놓고, 소아 정신과에 가서 상담도 받고 아이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항우울제도 처방받아오고, 당장 좋아지기 어려운 이 상황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당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괴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아이의 말 더듬은 눈에 띄게 좋아지진 않았다. 처방받은 약을 먹이지 않았고, 나는 내 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을 했다. 많은 말을 쏟아내는 아이의 말을 진득한 태도로 들어주었고,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또래 친구들에게 많은 말을 쏟아 내고 싶을 때나, 어려운 단어를 말할 때, 말을 시작할 때 자주 말을 더듬었다.
학교에선 학기 초에 말을 더듬는 아이가 친구들의 주의를 끌긴 했으나 놀리는 친구는 없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의 태도가 더 유연한지,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은 아이의 말더듬에도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여줬다. 어른인 나보다도 더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잘 쳐줬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주었다.
겨우 말문을 트여놨더니 이제 말 더듬까지 생기고, 읽기엔 문제가 없던 아이였는데 읽기에도 조금씩 막히기까지 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나는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열심히 치료 수업을 시키고, 기다리는 일 밖에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기다리는 일이 너무 더디어서 어느 날엔 도망치고 싶고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오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나는 씩씩하게 기다려야 한다고 스스로 되뇔 수밖에 없다.
괜히 울컥하고 괜히 서글픈 봄 날이지만 꽃 같은 어여쁘고 귀한 아이를 보며 기운 내서 이 시간을 잘 흘러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