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지음
좋아하는 작가인 장강명 작가의 산문집이 나왔다길래 도서관 예약도서로 예약을 걸어놓은지 몇 주 만에
읽게 된 책인데 역시나, 내가 좋아했던 장강명 특유의 차분함과 날카로움 그러면서도 절제된 문장들은
독자로 하여금 편안하면서도 글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준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신문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은 산문집이라서 그의 다른 에세이나 소설보다 재미가
좀 없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런 느낌은 역시나 기우였을 뿐임을 깨닫게 해 준다.
몇 가지 좋아하는 대목을 살펴보자면.
"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신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때까지의 세계사는 바로 이것에 불과한 거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악령"에서 "
이 구절은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에필로그 글에 나온 구절인데 작가 본인이 쓴 구절은 아니지만
도스토옙스키 악령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문장 중에서 이 문장을 발췌한 것이 너무 맘에 쏙 들었다.
나 역시도 요즘 신 혹은 종교, 인간과 삶에 대해서 비슷하게 생각하는 바여서 그랬을까.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주제의 글들(정치, 경제, 일상, 문화 등)은 작가가 평소 생각하는 것들을 어쩌면
담담하게 풀어내는데 그래서인지 너무 무겁지도 않고 진지하되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 고령사회가 꼭 활력이 부족할 거라고 예단하진 말자. 북한산에 가보면 젊은 사람들은 눈에 별로 안 띄는데도 등산로가 생기 넘치는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그 기운을 평지로 끌어올 묘수 없을까."
세대 간의 갈등, 이런 주제에 대한 글이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 문장이 너무 마음에 와닿는다. 기자 출신이면서
문학 작가로 활동하고 있기에 팩트에 입각한 건조한 문체 속에서 번뜩이는 은유와 묘사가 잘 섞인
이런 문체가 너무 개인적인 기호에서 '호'인 것이다.
"가끔 부모님 댁에 가서 그 집 강아지를 봐준다. 그런 때 근처에 사는 초등학생 조카들이 놀러 오기도 한다. 어린 푸들과 어린 호모사피엔스들이 방방 뛰는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본다. 그들은 오 년 뒤, 십 년 뒤에 대한 걱정 없이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을 사는데, 그게 그렇게 부럽다. 나의 번민, 불안, 두려움은 대부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데서 온다."
이런 구절은 대통령에 대한 비전이라는 글에 나온 구절인데, 나 역시 같은 이유로 동물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때론 어린 시절이 그립기도 한 이유가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어서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공감되었다.
토막토막 구절들을 몇 개 소개한 것일 뿐이지만, 이 책은 한 권을 다 읽게 되면 번뜩이는 구절들이
꽤나 많았다. 어떤 사건이나 시류적인 흐름에 대해서 자신만의 뷰를 가지고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은
몸담고 있는 분야가 어떤 것이든가에 멋진 것 같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아직은 역량이 좀 부족한 것 같음을 자주 느낀다.
글이란, 이렇게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날카롭고 강력한 무기이다.
이 책에서 그 무기의 파워를 새삼 크게 체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