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드리 Jul 15. 2024

십 대들의 밸런스 게임에서 알게 된 사실

"10살로 평생 살기, 60살로 평생 살기"

"10살이지."


하이톤의 여자 아이들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방학을 앞두고 축제준비로 어수선한 교실에서 자습지도를 하고 있다가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서너 명의 여자아이들이 의자를 끌어다 편한 자세로 앉아 있고, 앞에는 남학생 하나가 책상 위에 걸터앉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명 밸런스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던 거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던 게임인데, 주로 극단적인 두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십 대들의 수준은 주로 '토마토맛 토?, 토맛 토마토?' '발냄새 심한? 입냄새 심한?' 딱 이 정도 수준이다.


"당연히 10살이지."

"60살이 뭐야. 그 나이에 뭘 해."


아! 듣고 있던 60대가 기분이 살짝 안 좋아지기도 했고, 본능적으로 '이거 글감인데.' 직감하고 돋보기를 내려놓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넌?" 여학생들이 문제를 낸 남학생을 쳐다보며 물었다. "음, 난 60대."

"왜?" 내가 물었다. 뭘 좀 아는 녀석인 줄 알았다. 한참 눈알을 굴리더니 하는 말, "어디서나 다 앉아 갈 수 있잖아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가끔 남자아이들의 뇌는 무슨 색인지 궁금하다.


"왜 10살로 계속 살고 싶어?"

"10살 좋잖아요. 막 놀아도 되고." 그렇구나. 그때는 그럴 수 있겠구나.


"내가 60인데. 60도 괜찮아."

"네에? 완전 동안이시네요. 60으로 안 보이세요."

듣기에 고맙긴 하다만, 수습하기엔 시간 늦었다. 아까는 그 나이에 뭘 하겠냐, 고 한 소리 다 들었다.


"응, 60이 되어도 좋아. 난 60살로 평생살기."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얘들아, 그럼 지금 너희 나이인 18살과 60살, 둘 중에서는 어때?"

기대를 가지고 물어보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다들 이구동성으로 18살이란다.


"왜? 안 힘들어? 난 고등학교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젊잖아요."

"전 공부 열심히 안 해서 힘들지 않아요."

"엄마한테 용돈 받잖아요."


아, 그렇구나. 참 다행이다.


난 10대로도, 20대로도, 아니 과거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공부도 힘들고, 재래식 화장실도 무섭고, 교복도 불편하고, 학교규율도 답답하고, 너무 덥고, 너무 춥고.(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다.) 힘든 기억밖에 없다. 이런!

지금이 편하고 좋다. 환경도 좋아졌지만 팽팽하던 욕망, 희망, 소원, 염원에서 바람이 빠져나가 이제 편안하다. 마음에 이는 파도도 잔잔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있고, 옆에서 간섭하고 지시하는 이도 없고, 해야 할 숙제도 없고. 자유롭다.


아이들도 그럴 수도 있겠다. 돈 벌 걱정도 없고, 학교에 와서 공부는 대충 하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놀고 점심 맛있게 먹고, 엄마가 준 용돈으로 군것질하고. (완전 날라리군.) 무엇보다, 젊다.


내가 18세로 돌아간다면 공부 안 하는 날라리로 살아보고 싶긴 하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지금 해볼까. 아니... 지금 날라리로 살고 있는 건가. 그래서 만족스러운 건가.


여하튼 18세나 60세나 각자가 처한 현재가 좋다니 그냥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은 오늘 축구를 꼭 해야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