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맨날 와이프한테 잔소리를 듣는다니깐 “
개학하고 8월에 뵙자고 손 흔들고 나갔던 Y선생님이 다시 교무실로 들어오며 하는 소리다. 몇 년 전에 명퇴 후, 지금은 시간 강사도 하고 교육청 일도 하면서 학교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다. 올 3월부터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주 2일 출근하여 수업만 하고 간다. 책상 위에 둔 핸드폰을 집어 들고 다시 손을 흔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백팩을 멘 뒷모습이 경쾌하다.
키도 훤칠하고 인상도 좋으시고 목소리도 굵은 저음을 유지하고 있으며, 요즘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교사의 사명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역사, 미술, 음악에 관심이 많아 나머지 시간은 고궁 순례를 하거나, 전시회, 공연을 보러 다닌다. 그리고 학교에 와서 자신이 한 일을 다 보고한다. 입으로. 그래서 그분이 오는 월요일과 수요일은 교무실 공기가 웅웅 거린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어찌나 수다스러운지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으나, 학교 밖 세상의 새로운 정보를 풀어놓으면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달변이면서 박식하여 듣다가 보면 재미있기도 하다. 거의 모든 문장에 ‘와이프’가 들어가는 것만 아니라면.
“와이프가 빨리 나가라 해서 일찍 왔지. 집에 있으면 혼나.”
“홋가이도를 가는데 와이프가 내 카드로 다 결재를 했더라고.”
“어제는 와이프가 친구들이랑 노는데 탕수육을 보내줬어.”
어쩌라고!
그동안 한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결혼해서 지금까지 월급은 한 푼도 빠짐없이 다 와이프를 주고 자신은 책을 쓰거나, 보충수업을 해서 용돈을 벌어 썼다. 지금도 받는 연금을 자신은 한 푼도 안 쓰고 다 와이프한테 바친다. 강사나 알바를 해서 용돈을 벌어 아껴 쓴다. 와이프는 아마 전생에 나라를 3번은 구했을 것 같다. 어떻게 저런 '훌륭한' 마인드를 가질 수 있을까 궁금하던 차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이런 고백을 했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친구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일을 해서 돈을 열심히 버는 분이셨다. 한 번은 집에 놀러를 갔는데 어머니 되시는 분이 천사가 따로 없겠다 싶게 아름답게 꾸미고 계셨단다. 그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남자는 자기 여자를 최고로 잘 먹이고 최고로 잘 입혀야 해. 그게 진짜 남자야. 나는 아무렇게나 입어도 되지만 부인은 언제나 최고로 해줘야 한다.” 그날의 강렬한 인상이 뇌에 각인이 되면서 자신도 나중에 그래야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그리고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자신이 최고의 남자라고 생각하겠지. 뭐, 최고이긴 하다. 사윗감으로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관권은, 친구의 아버지를 잘 만나야 하는 것인데. 딸내미 남자친구의 친구 아버지가 딸내미의 남자친구를 앞에 앉혀 놓고 확신이 들도록 말해줘야 하는데. Y 선생님 같은 사위를 찾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전생으로 돌아가 나라를 3번 구하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박물관에나 가야 찾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