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은 매미 소리와 함께 시작하다. 당연히 매미가 다 사라지면 여름도 끝이다. 올해는 날씨도, 매미도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아는 외국인은 매미 소리를 ‘괴물’ 같다며 귀를 막기도 했다. 외국인이 아니라도 숲 근처에 살면 낮잠에 방해를 받는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밤에도 울어서 미치겠다고도 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매미 소리는 소음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소음이기는커녕 여름에 매미 소리가 없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물속에 잠긴 기분일 것 같다. 숨이 턱턱 막히는 후텁한 공기 속에서 매미 소리가 시원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더 덥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매미 소리가 없으면 숨이 안 쉬어질 것 같다.
김재덕 선수 같다랄까. 초긴장으로 집중해야 하는 양궁 경기장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파이팅처럼 나에게 매미 소리는 응원으로 들린다. 숨을 헐떡이고 연신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견뎌내고 있을 때 매미 소리는 ‘덥지. 많이 덥지. 정말 덥다. 그래도 곧 지나갈 거야’처럼 들린다. ‘아, 너무 덥다.’는 인간의 소리가 무색하게, 핏대를 세워 더 큰 소리로 ‘맞아 더워, 더워’라며 소리 질러주는 것 같다. 매미의 응원으로 여름을 견딘다. 난 그렇다.
어느 시인은 ‘시퍼렇게 질린 매미 울음’이라고 표현했듯이 통상 매미가 ‘운다’고 한다. 이걸 좀 수정하고 싶다. 매미는 우는 게 아니다. 매미는 복부에 있는 발음근, 발음막, 공기주머니를 이용해 배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소리를 낸다. 온몸으로 연주를 하는 거다. 목청으로 내는 ‘울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실재는 구애의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있다. 온 숲이 오케스트라인 거다.
내 귀에도 매미가 산다. 잠자리에 누우면 귀에서 매미 소리가 들린다. 정확하게는 ‘햇빛이 쨍쨍’하는 소리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어려서 여름에 시골 할머니 댁에서 들은 소리인데, 한낮, 황톳길이 내리쬐는 태양으로 자글자글 끓을 때, 사람들은 점심 후 맞바람 치는 그늘에서 낮잠을 청하고,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있고, 뜨거운 공기가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때, 세상이 온통 매미 소리로 꽉 차 있었다. 그 소리가 쨍쨍 빛나는 햇빛이 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작렬하는 태양이고 들리는 것은 매미소리였으니 그렇게 연결이 된 것 같다.
여하튼 잠자리에서 들리는 매미 소리는 처음부터 신기했다. 눈을 감으면 그 여름이 떠오르고 오수에 빠져들 듯 잠이 들었으니 말이다. 친구가 내 말을 듣고 이명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난리를 쳤는데 당사자가 문제의식이 없다. 이 매미들의 응원가를 여름이 끝나도 들을 수 있고, 겨울에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귀에 집중을 하면 낮에도 들린다. 숲에 들어가면 진짜 매미 소리로 묻히지만 말이다. 이걸 치료해서 귓속에 사는 매미를 다 쫓아내야 하나? 어느 날 너무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고 불평하게 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