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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Sep 08. 2024

반수 하는 의대생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에 편들어 주는 글 1

나에게 4층에 있는 3학년 교무실은 수업이 연속으로 있을 때 1층까지 내려오지 않고 쉬는 시간에 잠시 머무는 곳이다. 탕비실에는 늘 주전부리가 놓여 있고 따뜻한 보리차도 마실 수 있다. 며칠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잔기지 떡이 놓여 있었다. 기지떡인데 속에 팥앙금이 들어가 있고 작은 사이즈라 한 개씩 집어 먹기 좋다.

     

“어머, 웬 떡이 있네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작년 졸업한 J 알죠? C 의대 간 친구. 걔가 사 왔어요.” 수학 선생님이 머그 컵을 들고 돌아보며 알려준다.

“J가요? 걔가 뭔 일로? 작년에 의대 갔다고 떡 이미 돌렸잖아. 집이 떡집하나?” 괜히 농담을 하며 입속의 달달하고 부드러운 떡을 삼킨다.

“반수한대요.”

“아, 수능원서 쓰러 왔구나.”   

  

들어보니 그 친구뿐 아니라 Y대 지방 캠퍼스 의대를 간 여학생도 같이 왔단다. 이유는 더 좋은 의대를 가기 위해서다. 의대 정원도 늘린다고 하니 한 번 더 도전을 해보려는 걸 게다. 내 주변에 벌써 두 명이 있으면 전국적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반수를 하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 한창 뜨고 있는, 대치동 학원가에 공룡처럼 등장한 S학원에서 의대 반수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서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소문이다. Y 의대 간 여학생은 이미 그곳에서 ‘관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반들거리는 잔기지 떡을 한 개 더 먹으려고 뻗었던 손을 거두며 입 맛이 씁쓸해짐을 느낀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를 쓴 김누리교수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의대에 가기 위해서는 5, 6년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라고 한다. 지속적으로 진짜 의술을 펴고 싶은 순수한 마음인지를 확인하고 받아준다고 한다. 그 이후 교육비는 무료이고 용돈까지 지급한다. 물론 의대의 서열도 없다. 어떤 나라는 이런 게 가능하단 말인데.     


‘묵묵한 살아냄보다 무구한 조작이 우세할수록 삶은 꼬인다는 것’, 뜬금없이 은유작가의 <올드걸의 시집>에서 본 글귀가 떠올랐다. C의대에서 묵묵히, 하고 싶던 의학공부에 빠져서 매진해보라고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학교의 교사들도 새로운 도전이라며 응원해 줄 뿐이다. 더 좋은 의대를 가서 인생이 더 잘 흘러가게 될지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맞서보려는 욕구를 막을 수는 없다.     


단지 젊음에서 나오는 치열함이 당당하거나 대견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마에 금칠을 하고 싶은 욕구는 순수하게 개인에게서 솟아오른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이상한 나라의 괴이한 욕구로 받이 들여지지 않는 공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묻고, 학연이 끈끈하고, 지연이 끈질긴 나라에서 그 공기를 마시고 있으니 당연할지 모른다. 아이들이 자라기에 이 나라의 공기가 탁하다. 시급한 것은 그 공기를 바꿔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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