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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레 Sep 02. 2023

스크루지 시아버지

새벽부터 울리는 전화의 발신자는 시아버지였다. 귀신 영화 주인공처럼 등골이 오싹해졌다. 며느리의 본문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어젯밤 문자만 드리고 집 청소를 해 놓은 것이 문제였나? 여행 갔다 돌아오시는 날이니 깨끗하게 해 놓으면 편하실 거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걸까.


남자 혼자 사는 집이 전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시아버님 댁은 유독 질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원인을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 들어오는 빛과 바람 사이로 제 세상처럼 부양하고 있는 먼지들이 깔끔한 수경의 성격을 자극했다. 냉장고에 반찬이나 넣어드리고 가겠다는 가벼운 마음이었으나 자기도 모르게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이 시대에 빗자루라니. 청소기를 사드리겠다고 해도, 저 놈 안 굶기려고 꽂아두는 전기세가 아깝다는 그의 양 미간 주름이 떠올랐다.


작은방의 오래된 장롱을 열었다. 아직도 그 물건이 자리 잡고 있다. 볼 때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오늘도 역시 소름이 돋았다. 수경이 결혼하기 수십 년 전에 그는 지방의 작은 여관을 운영했다. 으슥한 곳을 찾는 불륜커플들이나, 일용직의 달방 전용으로 운영하다 재개발로 돈을 좀 벌었다고 한다. 여관이 없어진 지가 언제인데 그때 깔았던 매트와 이불들이 장롱 안에 가득 차 있었다. 바퀴벌레가 있어도 화석이 되었을 거다. 그곳에 어떤 벌레나 세균들이 득실거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으련만. 시댁에서는 무조건 하루를 자는 줄 알았던 새댁시절. 어린 두 딸을 잠자리에 눕혀두고 남편과 셋이 둘러앉아 무용담 같은 여관 얘기를 들었을 때, 수경은 울뻔했다. 아이들이 쌔근쌔근 자고 있는 저 꽃무늬 매트와 이불이 얼마나 소중하고 더러운 존재인지. 원효대사의 해골 물도 아닌데 그녀는 이 집 물건들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로 시댁 방문 필수품은 방수커버와 이불이 되었다. 차라리 캠핑 가는 마음으로 수건부터 치약까지 모든 것을 준비해 두는 것이 비유에 맞았다. 당장 그 장롱을 그대로 불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눈을 감다시피 하고 청소를 끝냈다. 식탁 위에 반찬가방을 든 순간, 싱크대 손잡이에 뒤집어져 있는 비닐이 눈에 띄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보니 밥통 위에도, 양념통 위에도 하나씩 뒤집어져 있었다. 그것들의 용도를 생각하다 그녀는 헛웃음이 나왔다. 지난달 반찬을 싸서 보낸 위생비닐이었다. 얼마나 썼는지 김치 국물이 빠질 생각이 없는 녀석, 너덜너덜해진 구멍을 또 한 번 묶어 혹처럼 나와있는 녀석 등. 수없이 싸고 비워졌을 내용물과의 사투에서 패잔병처럼 위생비닐들이 늘어져 있었다. 차라리 죽여달라는 것처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쓰레기장 앞이었다. 이미 운명을 다했을 녀석들을 모아 버린 뒤에야 수경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목욕탕에 들릴 참이다. 때 목욕을 해야 몸과 마음이 정화가 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너 어제 내 집에 왔다 갔었냐!?”


새벽부터 카랑카랑한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많이 혼난 것 같은데, 차라리 잠이 깨지 않아 다행이었다. “멀쩡한걸 다 버리고. 너희들이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다신 내 집에 올 생각 마라.” 대답도 안 듣고 매섭게 전화가 끊겼다. 기분이 이상했다. 신기하게 날아갈 듯 가벼웠다. 어떤 남자의 이별통보가 이리 기뻤던가?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았다. 햇볕에 바짝 말린 깨끗한 이불을 덮고 그녀는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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