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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레 Sep 11. 2023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이야. 이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너에게 고모는 차마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강하게 이야기하면 출발선에 선 너의 무릎을 꺾는 것 같고,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면 꼰대 같을게 뻔하니까. 나는 그저 너보다 몇 년 정도 빨리 태어났을 뿐인 사람인 걸. 경우의 수를 더 많이 가져본 정도지. 네가 좋아하는 총 쏘는 게임으로 치면 너보다 몇 번 더 죽고 몇 번 더 쏴봤을 정도의 게이머.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어.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지금과는 다르게 무지갯빛이었지.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공부하는 척만 하면 부모님은 비행청소년이 아닌 걸 감사하면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반쪽 사랑만 주기도 했어. 사는 목적이 우등생 하나였던 시절에는 차라리 수학 공식이 쉬웠을 10대를 지나 20대가 된 나는 덩그러니 서서 멍해지기도 했어. 어른이 되었다는 마음에 술도 마시고 클럽도 가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일들이 많아졌으니, 신나는 일도 많았지. 하지만 노는 것에도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30대쯤에는 알게 되더라. 체력이 예전만큼 안되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보고 싶은걸 다 해봤기에 뭘 해도 예전처럼 재미없는 상태. 처음에는 내가 이상해진 줄 알았지. 하지만 그건 놀만큼 놀았기 때문에 질렸다는 것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어.


지금의 20대는 어떨까. 놀만큼 놀지도 못하고, SNS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넘쳐나지. 정규직은 꿈도 꾸지 못하고, 과학은 매일 발전해 챗 GPT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고 연일 기사가 쏟아져.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행복. 일상마저 가공된 세상에서 쉽게 피로와 우울감을 느끼지. 내가 만약 늦게 태어나서 지금 너와 나이가 같다면 어찌할 바를 몰라 정신이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사람이 산다는 것에는 보너스처럼 살아갈 이유들을 넣어놓기도 한다고 느껴지지 않니? 어릴 적 보물찾기 기억나지. 햇빛은 쨍쨍해서 날은 더운데 나무와 돌들 사이에 선물이 적힌 작은 쪽지를 선생님이 숨겨 놓았다고 했어. 그걸 찾기 위해 땀이 뻘뻘 나도 괜찮았지. 드디어 쪽지 하나를 열었을 때의 기쁨. 어떤 아이는 뛸 듯이 기뻐하고, 다른 아이는 더 큰 선물을 받은 아이를 보며 부러워했지. 삶이라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가끔 생각해. 어디엔가 보물이 숨겨져 있는데, 그건 찾으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기쁨의 크기도 남들이 아닌 내가 정한다고.


40대 이후에 노안이 시작되는 거 알고 있니.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그 정도 나이에 오더라. 노안이 되면 세상이 가끔 회색으로 뿌옇게 보여. 그때 발견하게 되는 게 신기하게도 항상 곁에 있던 자연이야. 봄에는 화려하게 여름에는 푸르르게, 가을에는 붉게 겨울에는 하얗게. 강아지들이 왜 눈이 오면 뛰는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달까. 흑백으로 보이는 개들은 눈이 오면 세상의 색이 달라짐에 즐거워하는 것을. 눈이 흐릿하게 된 이후에 자연의 색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또한 보물 찾기처럼 자세히 봐야 보인다는 것. 그래서 한창 나가서 놀 나이인 너에게 공원에 자주가라고 말했던 걸 너는 알 수 있을까.


지금 살고 있는 작은 고시원 밖으로 나가 20분을 걸으면 펼쳐진 올림픽 공원을, 너는 고모와 처음 왔다고 했어. 그리고 노을이 질 때쯤 퇴근하는 해를 보려고 초록빛 벌판을 뛰어갔지. 언덕에 올라 핑크빛 하늘이 된 광경을 보는 너의 뒷모습을 나는 뒤에서 핸드폰에 담아서 선물했어. 자연 속에 있는 네 모습은 참 예뻤다고 기억해. 궁금한 게 많다고 집으로 왔던 그날 아침과는 다른 홀가분한 표정을 너도 느꼈을까?


그날 느낀 아름다움과 벅차오름은 사람이 줄 수 없다는 것도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까. 그건 오직 자연에만 존재하는 보물찾기. 매일 다른 해와 달, 밟아도 다시 올라오는 잡초의 생명력, 헤어져도 다시 태어나 새롭게 웃어주는 꽃들, 작고 작은 발걸음이지만 한발 한발 나아가는 곤충들. 오늘 죽을 것을 아는 건지 끝까지 달라붙는 하루살이들. 길고 긴 어둠 속에서 태어나 죽을힘을 다해 울고 있는 매미들. 더러운 물이지만 오늘 먹을 것이 있다면 머리를 처박고 먹을 것을 찾는 오리들. 매일매일 찾아낼 것들이 가득한 자연이라는 보물. 어떤 사람도 너에게 그 아름다움을 줄 수 없다고 고모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그걸 찾아낼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는 것. 찾아내는 방법은 매일 공원이나 산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는 말을 하기 전에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는 내가 정할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답지 않은 세상에 있는 것 같다면, 과감하게 박차고 다른 세상으로 가도 좋다는 것을. 세상을 여러 번 선택할 만큼 인생은 길다는 것을. 네가 있는 그곳에 찾을 보물들이 없다면, 보물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몸과 마음을 이동하면 어떨까.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 언덕을 뛰어오르던 너의 뒷모습이 어울리는 곳이 네가 찾아낸 세상이라면 고모는 참 좋을 것 같아. 그때는 나에게도 너의 세상을 소개해 주기를. 너의 세상을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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