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무지 한 박스가 도착했다. 반찬가게를 하는 가족의 명절 준비는 단순 노동에서 시작해 손님을 대하며 감정 노동으로 끝난다. 가족들 중 타인을 대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은 산적 꼬치 부서를 맡게 된다. 이 분야의 일인자는 철근씨다. 이름부터 강력한 철근씨는 끊기지 않고 흘러나오는 뽕짝 노래 메들리를 준비한다. 음악이 없다면 단순 노동은 지루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네모난 햄을 손가락 크기로 자르고 기준을 잡는다. 어젯밤에 소쿠리에 올려 물기를 빼놓은 노란 단무지, 아삭한 매콤함을 품은 초록빛 마늘종, 빨간 게 맛살이 햄 사이즈에 맞춰 일렬로 쌓아진다. 꼬치에 끼우는 순서는 색이 중요하다. 아래위로 햄을 끼워 재료를 지탱해야 하므로 햄-마늘종-게맛살-마늘종-단무지-마늘종-햄 순서로 정렬한다. 이쑤시개를 들어 햄을 끼워 선두 자리를 잡는다. 초록색 마늘종 사잇길로 빨간색 게 맛살과 노란색 단무지가 자리하면, 마지막으로 햄으로 안전하게 받쳐준다. 그렇게 몇 박스를 만드는 것이 명절 장사의 미션이다.
손은 느리지만 깔끔한 성격의 철근씨는 2~3일 정도 몇 시간씩 꼬치를 끼운다. 부모님을 돕겠다고 나선 직장인 딸과 아들은 30분을 끼다가 허리가 아프다고 일어선다. “아빠 이거 언제 끝나?” 한 박스도 채우지 못하고 기지개를 켜는 자식들을 쳐다보지 않고 그가 대답한다. “재료가 모두 꼬치가 되면 일이 끝나지. 쉬엄쉬엄 천천히 한다고 마음을 먹어봐.” 쉬엄쉬엄 천천히. 이 말은 그의 부인이 가장 혐오하는 노동 신조였다. 천천히 하면 자식들 입에 밥은 언제 넣어주냐고 속이 터진다는 그녀였다.
철근씨는 막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빠르게 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먼저인 곳이었다. 다친다는 것은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넘어져 무릎이 까지는 정도가 아니라 사방에 위험한 장비들이 널려 있었다. 공사 기간에는 몇 번씩 사람들이 병원으로 옮겨진다. 그 역시 오래전에 잘못 떨어져 팔이 크게 다쳤다. 피가 멈추는 하얀 가루를 벌어진 상처에 뿌리며 어린 딸은 상처 안으로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뼈가 보이는 거란다. 안 보이도록 붕대를 잘 감아줘야 해.” 놀라지 않고 치료해 주는 딸이 기특해서 나중에 크면 간호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차곡차곡 느리게 산적 꼬치가 쌓아 올랐다. 박스에 넣으면서도 줄을 맞춘다. 꼬치를 끼우는 것보다 진상 아줌마들과 싸우는 편이 낫겠다고 딸이 일어선다. 엄마를 닮아 성격이 급한 딸은 단순 노동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간호사가 되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점심을 먹고 방석이 깔린 자리로 되돌아간다. 영화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도 울고 갈 단순노동의 절대자. 철근씨가 잠시 멈춰 두었던 트로트를 플레이한다.
쉬엄쉬엄 천천히.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꼬치를 끼우면 돈을 벌 수 있는 단순한 일상에 철근씨는 만족한다. 속 터지는 마누라의 잔소리와 허리의 통증은 일하면서 짬짬이 마시는 노동주에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차곡차곡 쌓인 꼬치 박스 옆에서 쪼르륵 소주 한잔을 따른다. 쌉싸름한 그 맛이 목구멍으로 흐르면 아직 살아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