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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레 Aug 27. 2023

죽어야 끝난다

지겨워서 눈물도 안 난다. 홍천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수경은 마음속으로 그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조금 있으면 오십이 다 되는 나이인데 아직까지 아버지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다니. 함께 늙어가는 남편에게 부끄러워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정작 운전을 하던 남편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느라 농담을 던지고 있다. 귀에 들어오지 않는 이야기가 공기 중에 튕겨나간다.


“김수경 씨죠? 여기 경찰서인데요. 아버님과 함께 계셨던 분께서 사고를 당하셔서요. 좀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이른 새벽 가게 문을 열러 나가다 걸려온 전화에 온몸의 힘이 빠졌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었다. 다슬기를 줍다가 사람이 죽었다니. 왜 자꾸만 누군가의 죽음이 아버지의 곁에서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홀로 뒷산에 오르다 목매단 사람을 발견한 건 지난봄이었고, 바닷가에서 술을 마시다 친구가 방파제에서 떨어져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 10년 전이다. 소름 끼치도록 기막힌 우연에 수경은 진절머리가 났지만, 하나뿐인 딸에게 미안해 눈물로 밤을 지새울 엄마를 생각하면 이를 악물고 지옥 같은 그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술 없이는 못 사는 아버지에게 타던 차를 넘긴 것이 잘못이었을까. 이젠 늙었으니 엄마와 쉬엄쉬엄 여행이나 다니겠다고 해서 줬던 차였다. 넘겨받을 때도 새 차를 사주지 않는다고 삐죽거리는 그의 입에 모래라도 퍼 넣고 싶었지만. 며칠 뒤 지인들을 대동해 홍천강으로 놀러 갔다는 말은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눈치 안 보고 술 마실 곳을 찾았는지 텐트에서 먹고 자며 며칠 그곳에서 지낸다고. “차 덕분에 네 아빠가 집에 없으니 편하구나. 고맙구나.” 땀구멍 보다 작은 기쁨에도 감사해하는 엄마의 말에 수경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술 여행이 끝나길 바랐던 게 욕심이었나 보다.


저 멀리 경찰차 불빛이 깜박이고 있다. 음습한 다리 밑 아버지의 새 텐트가 요새인양 펼쳐져 있다. 새벽까지 술 마셨던 지인 중 한 명이 혼자 다슬기를 주우러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하네. 우리는 여기 정리하고 영안실 앞에서 아버님 모셔가면 될 것 같아. 경찰과 이야기를 나눈 남편은 자신도 실감 나지 않는지 자꾸만 흘러내리지도 않는 머리를 넘겼다. 드라마인지 실제 상황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남편이 조용히 손을 꽉 잡아주었다.


아직 술이 덜 깬 늙은 남자가 담요를 덮고 덜덜 떨고 있었다. 꼴도 보기 싫었지만 어쨌든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일단 치우자” 남편은 벌써 텐트를 접고 있었다. 이리저리 흩어진 물건 들 중 멀쩡한 것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려고 박스에 담았다. 바구니에 어제 채취한 것 같은 다슬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거 버린다.” 멍하게 강을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 귀한걸 왜 버려. 목숨 같은걸” 수경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다 버려! 다! 필요 없어!” 강바닥으로 후드득 다슬기가 떨어졌다.


남편의 손에 이끌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안실 앞이었다. 거의 끝났으니 조금 있다가 사망자의 가족이 오면 떠나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앳된 얼굴의 남자가 한쪽 구석에서 통화를 했다. “어 엄마? 응. 죽었어. 술만 처먹었는데 잘 죽었지 뭐. 엄마도 이제 고생 끝났다. 정리하고 갈게요.”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그 남자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남편의 위로에도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수경은 그 눈물의 의미를 말할 수 없었다. 부러움의 눈물이었다. 그 남자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누군가 죽어야 끝이라는 걸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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