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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 소녀 하이디 Aug 25. 2019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무모함이 가져다준 도전, 공부가 주는 삶의 이득

최근에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 나이로는 마흔을 넘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일본에서는 30대 후반이라는 시점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작년 이맘때, 나는 가족들에게 박사 과정 지원 준비를 시작했다는 뉴스를 알리기 시작했다. 전화로 들었던 엄마의 고함 소리와 동생의 한숨 섞인 푸념 소리를 통해 파악한 친정 식구 들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결혼한 지 5년이나 됐는데 애 낳을 생각은 안 하고 뭔가 벌이기만 하니!!!",
"언니, 형부랑 무슨 문제 있어? 조카들에게 동생 만들어 주고 다니는 직장 계속 다니면서 정착하는 삶은 어때?".


개인적으로 간단히 해 본 조사에서도 늦은 나이의 시작하는 박사 과정은 교수나 리서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40대 중반이나 되는 신입 박사에게 누가 교수/연구원 자리를 줄 것이며, 확실하게 공부하고 싶은 박사 과정 리서치의 토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회사를 완전히 그만두고 싶지 않았기에 직장 일과 병행할 수 있는 그런 박사 과정을 하려던 참인데, 그런 박사과정 코스를 찾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참으로 생각 없는 한심한 사람이었다. 나의 마음은 요동쳤다. 나는 왜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는가? 


나는 이 전에도 회사를 다니다 공부를 시작한 적이 있다. 그때는 심지어 회사를 아예 그만두고 유학을 갔다. 20대 후반의 일이었다. 당시 IT 관련 다국적 외국계 한국 지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부족한 점이 많은 나였지만 엑셀의 전문가였던 사수 분과 삼촌 스타일의 아재 개그를 즐기던 회사 차장 부장님들은 나를 많이 챙겨주셨었고, 많은 실수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며, 무엇보다도 커리어나 인생 설계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 주셨다. 5년 정도 생활하면서 나는 많이 배웠고 성장했다. 그러나 내가 외국계 기업에 들어간 목적이었던 "해외 근무"는 그리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기다리면 기회는 생길 수 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의 기다림에 필요한 인내심은 부족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찾아내서 이루고야 마는 성격을 지닌 나에게 "기다림"이라는 것은 정말 어색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장 실현 가능한 방법은 유학을 가서 현지 취업을 하는 것이었다. 직장 5년 차에 갈 수 있는 유학은 바로 MBA였다. 예전 미국 시카고에 어학연수를 가서 보았던 Chicago Booth MBA School의 같은 멋진 빌딩들로 가득한 캠퍼스에서 공부를 하고 졸업 후 성공적으로 현지에서 취업하는 나를 상상하면서 2년 동안 GMAT과 에세이를 준비했고 시카고는 가지 못했지만 다행히 시카고만큼 아름다운 스위스에 위치한 학교에 합격하여 유학을 갔다.


10  전에는 그리 쉽게 갖게 되었던 공부에 대한 의지를 10  박사 과정에 지원하며 다시 불사르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여러  박사 과정을 시작하려 생각했었다. 대학 졸업 즈음에도  , MBA 졸업 즈음에도  , 당시 두바이에 살다 일본으로 전근을 가는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스위스에서 다니던 회사를 옮겨볼까 생각하던 중, 이렇게  번이다. 그때마다 나는 결국 박사과정을 선택하지 않았다.  번의 경우 모두 우연찮게도 회사에서의 취업 통보를 받기도 하였거니와 무엇보다도 "박사" 된다는 것이 내게 너무 높아서 쉽게 넘을  없는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소 3년에서 5, 길게는  이상의 기간 동안의 commitment 있어야 하는 것이고, 교수님이 가르쳐 주는 것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독립"적으로 연구 주제를 찾고 연구를 실행할  있어야만 얻을  있는 것이 박사 학위다. 게다가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학위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아하...  정말 공부 다시 시작할  있을까?


MBA도 마쳤고, 운이 좋게 해외 취업도 해 냈는데, 지난 3-4년 여간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출장 다니며 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에게 소홀한 내가 굳이 이 시점에 그동안 매번 포기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박사 과정에 지원하여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왠지 무모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실낱처럼 드는 직감,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이번에 또 도전하지 않으면 앞으로 기회는 없을 것 같다고요!".




나는 직감대로 행동한다. 무모한 사람이다. 그래서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실낱같은 직감에 의지하며 일단 학교 조사를 시작했다. 나는 도쿄에 위치한 한 사립 명문대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ㅇㅇ선생에게 연락하였다.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 싶다며, 직장 생활을 계속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하였다. MK 선생은 내가 일본으로 이사 올 때 나의 절친한 MBA classmate으로부터 소개받은 교수님이시다. 젊은 나이에 영국의 최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당시 간사이 지방의 유명 사립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학부 과정을 이수한 도쿄에 위치한 모교의 교수직으로 옮기게 되며 기존 대학에서 하던 강의를 나에게 대신 맡아 보라며 뜻하지 않은 놀라운 기회를 줬었다. 이번 연락에서도 MK 선생은 어찌나 나에게 구세주 같았는지, 본인의 연구실에 들어와서 박사 과정을 시작해 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했다. 내가 실무 경험도 있으니, 자신의 연구 분야에 도움이 되고, 학교에 매일 출석하지 않아도 비디오 콘퍼런스로 개인지도와 그룹 토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원서 지원이 코 앞이니, 지원서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계획서를 빨리 준비하라는 당부를 끝으로 그는 전화를 끊었다. 무모함 속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를 얻었다. 네, MK 선생님, 연구 계획서 빨리 준비해 볼게요!!!


연구 계획서를 준비하는 과정은 예상대로 매우 어려웠다. 관련 학술 논문을 많이 읽어 보고 최근 연구 동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된 공부에 손을 놓은 지 10년, 그 사이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책 한 권 정독한 적이 없다. 연구 계획서 샘플들을 읽어 봤는데, 도무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원 준비 시작 이전에도 확신이 없던 나는 연구 계획서를 준비하면서 더욱더 갈팡질팡했다. 나는 주변의 박사과정을 이미 시작하거나 마친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박사 과정 준비가 원래 그런 거라며 다독여 주면서도 그렇다고 "빨리" 연구 계획서를 쓰는 뾰족한 수를 알려주는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공부법과 관련된 "완벽한 공부법"이라는 책을 추천해 줬다. 평소 책의 전권을 잘 읽지 않는 나였지만 공부를 시작한 김에 그토록 "완벽한" 공부법을 알려주는 책이 있다니, 귀가 솔깃했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정독하게 되었고, 이 책을 읽기 전 그토록 골똘히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았던 공부를 시작하는 이유가 책을 읽은 후에는 솔솔 생기는 것이 아닌가?   


몰입이 주는 즐거움: 나는 GMAT을 공부할 때 엄청난 몰입을 경험했다. 원하는 점수를 내려 첫 6개월 준비 기간은 고 3 때보다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평일 퇴근 후 공부할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일에 대한 집중도도 높아졌다. 고 3 때는 없었던 체력의 한계에 링거도 맞으면서 공부했지만, 6개월 후 내가 원한 점수를 얻었을 때 정말 기뻤다. 게다가 그 시험 점수로 인해 가고 싶었던 MBA에 합격하였고, 그로 인해 일어난 내 인생의 변화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 당시 6개월의 몰입의 대가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100점을 넘길 정도로 한 분야에 똑똑해지고 싶어서: 내 회사 생활을 점수로 매긴다면 80-90점 정도이다. 나는 운이 좋게 그동안 3군데의 회사에서 전략, 사업 계획, 마케팅, 재무, 내부 감사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기회를 얻었다. 50-60점짜리 성과를 90점으로 평가해 주는 친절한 동료와 훌륭한 보스를 많이 만나서 그럭저럭 회사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누구와 일하느냐에 따라 같은 성과라도 더 낮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최근 깨달았다. 내가 내 분야에서 확실히 100점을 넘긴다면 이런 일은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나는 그냥 성실한 사람이었고, 성장했지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일본에 온 후 3-4년간 나는 일을 정말 많이 했다. 그나마 있던 취미도 지속하지 않았고, 주말에는 TV와 유튜브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 머릿속으로는 잘 이해하는 간단한 컨셉도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는 때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 생각을 오롯이 글로 정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지식이 쌓이지 않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절대 늦지 않은 자아실현: 살다 보면 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생기지 않거나, 여건이 안 돼서 매번 미루는 그런 일들이 생긴다. 나에게는 박사 과정이 그랬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시작할 용기가 지금 수준만큼 생긴 적이 없었다. 공부에는 때가 없다지만 나에게는 지금이 미루어 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현실 도피형 계획: 박사 과정 지원을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유지만), 바로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나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심리였다. 나는 회사에서 일을 그냥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성실한 면을 좋게 봐 주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주는 사람과도 같이 일해 봤고, 그러한 성실함을 이용하기만 하려는 사람들도 만나 보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회사형 인간이 아니구나 생각하며 마음 고생을 했다. 그러나 논문을 읽다 보니 내가 했던 일들, 내가 겪었던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들이 논문을 쓰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소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기하려 했던 회사 생활을 계속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논문을 쓰는 것 자체도 나에게 큰 배움이지만 이를 통해 경영학, 사회 과학의 발전에 작은 보탬이 된다니, 회사를 다니는 것이 돈을 벌고 내 커리어 자체를 발전시키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서 정말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책을 추천받고, 이렇게 공부할 이유가 생기니 놀랍게도 나는 빠르게 연구 계획서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모든 일에 먼저 이유가 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시작하고 나니 이유를 알게 되는 경우도 정말 많다. 완벽하지 않은 연구 계획서지만  준비 과정을 통해 내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찾았고, 이제는 제법 관련 컨셉과, 그 분야에 유명한 교수님이 누구 인지 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 후 추천서를 받기 위해 대학을 16년 만에 방문했고 나의 지도 교수님이셨던 K 교수님에게 어렵사리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대학 4학년 때 석박사 과정 입학에 대해 조언을 구하러 찾아갔던 바로 그 교수님이셨다. 다른 한 장은 스위스에서 일할 때 나의 보스였고, 낯선 나라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는 나에게 여러 가지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와 리더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은 DH에게 부탁을 드렸다. 두 분 모두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하셨지만 공부에 도움이 필요하면 또 찾아오라는 말씀과 함께, 좋은 결과로 이어질 꺼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다.




제대로 다시 해 보자.

지원 시스템에 각종 서류들을 첨부하고, 구술시험을 거쳐 나는 드디어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내가 결혼 전부터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것을 무심코 이야기하던 것을 기억하던 남편은 내가 이미 학위를 받은 것 마냥 자랑스러워했다. 우리가 다른 나라로 전근을 가더라도 나의 박사 논문 준비, 발표 등으로 일 년에 서너 번은 도쿄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생겨서 도쿄를 사랑하는 남편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아했다.


내가 과연 제대로 공부를 했었던가? 박사 과정 지원 준비를 하면서 나는 정말 많이 배웠고,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더불어 "나는 공부를 그동안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교훈도 얻었다. 합격 후 연구 주제를 다듬고, 그에 알맞은 연구 방법을 찾고, 이론 공부에 도움이 논문들을 더 읽으면서 오늘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몇 년 후 학위를 받을 때, 그때는 꼭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정말 공부 제대로 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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