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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 소녀 하이디 Jul 20. 2019

MBA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배울까?

인생의 나비 효과

“너는 도대체 MBA 가서 뭘 배웠니?"

자다가 벌떡 일어나 받은 전화를 타고 들려온 엄마의 목소리. 엄마는 평소 연락이 뜸한, 한없이 무심한 내가 늘 불만이다.

"엄마 진짜 진짜  미안. 내가 또 깜박했어.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잖아..."

엄마도 이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먼 곳까지 가서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대단한 공부를 한 당신의 자랑스러운 딸이 그 공부에 비해 무척이나 간단해 보이는 식구들에게 종종 소식을 전하는 일에 완벽하지 못한 것이 이해가 안 되시는 듯하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남았는지 엄마의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졸업한 지 10년 만에 엄마의 못난 딸은 생각한다. 그래 엄마의 말마따나, 나는 도대체 MBA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배운 걸 어떻게 의미 있게 써먹고 있나? 배웠지만 홀랑 까먹고 내 버려두고 있는 것은 없는가?


나에 대한 반성과 혹시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를 MBA 수험생에게 조금이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몇 자 적어보았다.




평생 두고두고 쓸 이력서 쓰는 법

친구들은 수업 관련해서는 한 없이 부족한 나를 도와주는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들이나, 취업에 있어서는 경쟁자가 된다. 유럽 출신 친구들은 학교에 유럽에 있었던 관계로 그들 나름대로 입학 전에 쌓아 두었던 네트워크로 취업에 유리한 고지에 있다. 학교 재학 중에도 이들은 세련된 매너와 다국어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인사 담당자의 신임을 얻는다. 아시아 출신 중 가장 경쟁력 있는 그룹은 중국과 인도 출신 친구들이다. 이들은 이미 유럽에 정착한 중국계 인도계 네트워크를 잘 활용한다. 이들을 리크루팅 하는 회사 입장에서도 유리하다. 몇 년 동안 본사에서 트레이닝을 한 후 매출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그들의 모국인 중국과 인도로 보내는 옵션이 매력적이다.


그런 면에서 시장이 작은 한국 출신 학생은 버틸 곳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에 의지하여 정말 많이 노력해야 될까 말까 한 해외 취업이렸다. 이를 위한 나의 전략은 "질 보다 양" 전략이었다. 남들보다 네트워크도 뒤지고 출신 나라의 시장성이 주는 경쟁력도 부족하고 게다가 천재적으로 똑똑하지도 않은 나는 일단 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친구들보다 서너 배 넘는 곳에 이력서를 써서 넣었다. 지원하는 포지션에 대해 공부하고 그에 맞게 내 경력에서 어떤 부분을 하이라이트 할 수 있는지 생각한 후 회사마다 약간 씩 이력서를 수정해서 보냈다. 이력서를 많이 넣으니 나중에는 내가 부러워하던 유럽/중국/인도 출신 친구들보다 내가 더 많은 인터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뿐이니 어쩌면 나는 효율적이지 못한 전략을 구사했으나, 원하는 결과는 얻었으니 만족한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종종 후배들이나 친구들의 이력서도 봐주고, 그들이 관심 있어하는 job의 job description만 보면서 실제로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쉽게 설명도 해 주곤 하니, 졸업 후에도 종종 사용하는 나의 스킬이 되었다.


그래도 아쉬운 것, 친구들의 이력서는 소중히 업데이트해 주었으나 요즈음 내 이력서는 왜 늘 그대로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


어색함을 이기는 뻔뻔함, 네트워킹을 위해 꼭 필요한 자세

우리 학교는 동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각 회사에서 의뢰를 받아 C Suite급 인재를 대상으로 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많이 실시했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마무리할 때쯤이면 꼭 네트워킹 파티가 열렸다. 파티라고 대단한 건 아니고, 테이블 위에 간단한 스낵과 음료를 놓고 열리는 스탠딩 파티 형식의 네크워킹 모임이다. 고맙게도 이런 자리에 학교에서는 MBA 학생들을 늘 초대하면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늘 상기시켰다. 아... 스탠딩 파티... 나는 이 자리가 너무나 어색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 나는 사실 사람들보다는 그 앞에 음식에 관심이 더 많은 식탐녀!


처음에 친구들의 권유로 참석하기 시작한 네트워킹 파티를 계속 반복해서 가다 보니 그 어색함도 나름 익숙해졌다. 그리고 가다 보니 계속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게 된 분 중 한 분은 나중에 학과 커리큘럼 중 하나인 컨설팅 프로젝트의 어드바이저로서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미 퇴직을 하시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분에게 나는 매번 해외에 취업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졸업식 전날 그는 나의 취업 현황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냐고 물으셨다.


네.. 열심히 했지만 한국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다른 곳도 있지만 역시 한국에서 온 오퍼가 제일 좋아요...역시 해외 취업은 무리였나봐요...  


실망한 나의 모습을 보고 그는 장담은 못하지만 내 이력서를 그가 일했던 회사에 보내주겠다고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미셨다. 그렇게 해서 들어가게 된 곳이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이다. 세상일 정말 어떻게 풀릴지 모르지만 이 경험으로 인해 내가 갖게 된  두 가지 생각. 일단 사람을 알고 봐야 뭐든 된다는 점과 뻔뻔함을 무릅쓰고라도 원하는 것이 있으면 늘 말하고 다니라는 것. 내 진심을 읽어 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실제로 일본에 올 때도 나는 뻔뻔함도 불사하는 용기로 잡을 구했다. 남편을 따라오는 주재원의 아내가 된 나는 회사 HR을 통해서는 내 포지션에 관련한 뉴스를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기다림에 지쳤던 (남편은 다음 달에 일본으로 이사 가는 일정이었다.) 나는 학교 동문 DB에 접속하여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들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어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내 사연을 구구절절 드라마틱하게 쓰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간절히 원한다면 통한다고 했던가, 운 좋게 나는 기존 내가 일하고 있던 회사의 일본 지사에서 사업부 책임자를 맡고 있던 예전 나의 보스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학교 후배가 주재원의 아내가 되면서 커리어를 포기해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성심성의껏 나를 도와줬다. 때 마침 그의 팀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다른 나라와 같이 일하는 프로젝트가 있었고 그 프로젝트 책임자로 나를 뽑아 줬다.


나는 일본이라는 "섬"에서 살고 있다. 일에 치이다 보니 나도 "섬"처럼 고립된 것 같은 기분. MBA 지원 시 추천서를 써 주셨던 과장님도 보고 싶고, 인터뷰 시험 준비할 때 시간을 내어 주신 선배님들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이번 주말 그분들께 안부 인사라도 드려야겠다.


나에 대해 배운 시간들

우리 학교의 강점은 리더십 코칭이다. 마케팅, 파이낸스 같은 과목별 특화 트랙이 없는 대신 30시간의 일대일 코칭 과정이 있다 (나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30시간 이상의 코칭을 받았다. 그 정도로 가치가 있다.)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우선 우리 자신부터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학교에서 배운 리더십의 첫 단계였다.


팀 단위 수업을 하면서 동료들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나의 감정을 세세하게 적어서 이에 대해 논의하고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코치와 대화를 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 입학 전 내 인생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을 공유하고 이에 대해 왜 그런 감정을 갖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심층 해석하는 시간도 갖았다. 나를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살면서 자신과 마주할 시간을 얻을 기회는 많지 않다. 직장에서 수십 년을 보낸 베테랑 일 잘하는 간부들도 때로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팀원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고, 사업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할 때도 있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기에 생기는 실수들이다.


이 경험으로 나는 힘든 학교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남들보다 뒤지는 영어 실력과 네트워킹, 나의 목소리는 러시아 친구의 그것 보다 작기에 느꼈던 괴로움 등으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질 때 그 이상의 추락을 막아 주었다. 지금도 회사에서 이 경험으로부터 배운 기술을 유용히 써먹는다. 그룹 다이내믹도 잘 이해하고 보스의 성향도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채는 편이다. 성공하려면 "머리"만 쓰지 말고 "마음"도 써야 한다는 학교의 가르침이 새삼 고맙다.


내가 졸업한 후 선배가 후배를 멘토링 해 주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나는 프로그램이 생긴 첫해부터 계속 멘터로서 참가하고 있다. 그들이 나에게서 배워 가는 것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내가 그들로부터 많이 배운다. 내가 그들에게 해 주는 조언은 사실 내가 잘하고 있어서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나도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것들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생각한다. 늦지 않았어. 나도 그렇게 해보자.




엄마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이렇게 적어보니 여러 모로 배운 게 많아요.


MBA의 경험은 실제로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원하던 해외 취업의 기회에 나를 연결해 줬고, 그렇게 해서 남편을 만났고, 일본에 와서 살게 되었다. 책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나비 효과가 내 인생에서도 있었던 셈이다.


내 인생에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그 경험이 더욱더 소중해진다. 지금 MBA를 준비하고 있거나 재학 중인 분들에게 나는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지금 학교에서 겪는 즐겁고도 힘든 순간들이 나비 효과처럼 당신들의 삶에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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