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쟁이 Jul 14. 2024

내가 건넨 칭찬이 혐오표현이라고?

칭찬이 선물과 비슷한 의미라면, 상대방이 원하는 선물을 주어야

내가 속한 조직이 일하는 방식 중 하나는 우리가 다루는 주요한 이슈를 외부 파트너에게 소개하고 협력을 제안하는 것이다. 얼마 전, 다양한 팀이 참여하는 제안 미팅이 며칠간 연달아 있었다. 나는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채팅 창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날의 미팅이 순조롭게 흘러가서 다들 기분이 좋은 눈치였다. 피칭 상대방도 유독 나이스한 분이셨는지 그분에 대한 칭찬을 곁들인 유쾌한 농담이 이어졌다. 미팅이 끝나고 나서 까지 이어지는 수다 속에는 그의 수려한 외모에 대한 묘사가 이어졌는데, 사람들의 말대로 그는 객관적으로 잘생기고 훤칠한, 누가 봐도 호감형 외모의 사람이었다. 급기야 그날 그분과 함께 사진을 못 찍어 아쉽다는 직원의 모습을 합성한 짤이 채팅방에 공유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날의 미팅이 잘 흘러간 이유가 그의 외모 덕분이라는 식의 농담이 점점 과해져 그 채팅방에 있지도 않은 우리 조직 대표의 외모와 비교하는 데 까지 흘러가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그것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딱히 그 채팅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았던 내가 갑자기 불편함을 표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에서 다행히 수다는 자연스레 잦아들었지만, 이후로 며칠간은 몇몇 사람들과의 실제 대화 속에서 그 미팅이 회자되었다. 그때마다 빠짐없이 그의 외모에 관한 칭찬, 상대방의 외모가 업무 성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농담이 등장했고, 나는 그런 대화에 참여할 때마다 할 수 있는 한 가볍게, 농담인 듯 뼈 있게 문제를 지적하려고 애썼다. 이를테면, '얼굴이 잘생긴 거랑 관계있어요? 일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지'라든가, '저는 그 사람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그래서 저희랑 어떻게 일할 예정인지가 더 궁금한데요. 자꾸 중요한 이야기 안 해주고 딴 얘기만 하고들 계시네요' 같은 식으로.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나는 이 상황이 적잖이 불편하고 또 이상했다. 특히 구성원의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강조하며 다양성과 포용성에 큰 관심을 기울이려 하는 우리 조직의 방향성과는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인데도, 그 미팅에 직접 참석하고 대화에 참여하던 어느 누구 하나 문제를 제기하거나 흐름을 끊으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 걱정스러웠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에 끌린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의 핵심은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외형에 있지 않다. 나는 우리가 함께 일하는 유무형의 공간에서, 우리의 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조건을 평가하고, 마치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처럼 말하는 것을 용인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 외모에 대한 험담이 아닌 칭찬을 했는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묻는다면,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혐오 표현 리포트>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보고서에는 긍정의 의미로, 통계적 사실로, 역사적 사실 진술로 이야기하는 말들도 특정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할 때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기준에 비추어볼 때, 앞선 농담에 가담한 사람들은 '외모가 수려한' 집단은 같이 일하기 수월하다는 편견을, 그 반대의 집단은 같이 일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강화한 셈이다. 특정 인물에 대한 주관적 외모평가가 맞고 틀리고 개인취향이고를 떠나서, 외모와 성과와의 잘못된 인과관계를 만들어 혐오의 인과도 자연스레 용인하게 만드는 표현의 일종이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외모에 대해 자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가 거기 있기 때문이고, 당연히 다른 사람의 외모에 민감하며, 본인이 외모 칭찬에 높은 가치를 두는 만큼 다른 사람의 외모를 칭찬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각자 다르고, 자신의 성과나 노력, 가능성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사람에게 외모에 대한 언급만 하는 것은 비록 칭찬이라 해도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어릴 때는 '눈이 작다', '못생겼다', '키는 크다' 등등의 각종 외모 평가를 받으며 살아온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예뻐졌다' '피부는 좋다' 같은 칭찬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는다' '글을 잘 쓴다' '리더십이 있다' 같은 내 노력에 대한 인정이었다. 칭찬이 선물과 비슷한 의미라면, 상대방이 원하는 선물을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얼렁뚱땅 넘어가기에는 너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위의 대화의 참석자명을 제외한 내용만을 요약해 조직문화 담당 부서에 제보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러한 점을 다루어 달라고. 그리고 사무실에서 만나는 동료에게 얼굴이 어떻다느니 살이 찌고 빠졌다느니 하는 말로 아침인사를 건네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외모 평가 없이도 다정하고 활기 넘치는 직장을 위해.


외모 평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대방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무시한 채 마치 사람을 물건처럼 평가하는데, 이를 ‘대상화’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대상화되는 것에 불쾌함을 느낀다.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비하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양한 인격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을 단지 외모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언짢은 일인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웹진 (2021.4) '예쁘다는 말씀, 듣기 불편합니다!' 중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