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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뒷간 Mar 22. 2022

아침 커피가 업무에 주는 영향

고영란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전날 사용한 텀블러를 깨끗하게 씻고 커피 머신 앞에 서 있으면 다른 팀 팀원들을 하나둘씩 만나게 된다. 그러면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각자의 컵들이 머신 앞으로 줄을 선다. 언제부터인가 이 시간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좋아졌다. 어떤 사람은 시원한 커피를 마시려고 얼음을 꺼내 오거나 어떤 사람은 오늘은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다며 향긋한 홍차를 우리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차를 우리거나 커피를 내리는 짧은 시간에 나누는 대화가 좋다. 그 시간 동안 오늘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 같이 정리하기도 하고, 지난 주말이나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다못해 간밤에 꾼 꿈을 이야기하는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할 때도 있고 어느 날엔 사뭇 진지한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아침에는 길게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짧고 간단하게, 그러면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대화를 위해 오히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다른 팀 팀원들을 만나지 못 만나는 날들도 있다. 그럴 땐 혼자 조용히 커피향을 맡으면서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커피가 떨어지는 소리와 향기 덕분에 마음이 곧잘 차분해지기 때문에 아침 커피 시간은 나에겐 나름 중요한 시간이다. 


대체로 나의 업무는 경매 준비 돌입 시즌과 비수기 시즌으로 구분된다. 경매 준비 돌입 시즌에는 여유롭게 커피를 내리면서 마실 시간조차도 생기지 않을 때가 많다. 아침부터 팀장님을 비롯한 타팀의 요구 사항을 분주히 처리해야 하거나 또는 내가 타팀에 요구했던 사항을 다시 한번 서로 꼼꼼히 체크하는 등의 일들이 펼쳐진다. 만약 오전에 외주 업체와의 스케줄이 잡혀있다면 아침 커피는 구경도 못한다. 

경매 준비 돌입 시즌에는 날이 서있는 편이다. 실수나 누락이 있을까 봐 항상 노심초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작품을 누락하고 검토하지 못한다면 업무의 피로도가 급격히 쌓이기 때문에 후폭풍을 감당하고 싶지 않으려면 지금 날을 세워 바짝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시즌에는 심심치 않게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위탁받은 작품의 액자가 파손된다든지, 습도 조절을 잘못해 작품의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든지 하는 등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시즌에 작품관리팀에서 오는 전화가 달갑지만은 않다. 이러한 나의 날선 마음은 아침 커피 한 잔으로 달래지기도 하는데, 그 커피 한 잔을 못해서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이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다.


나의 경매 준비 돌입 시즌은 경매가 끝나고 나서야 마무리된다. 그러면 잠깐 한숨 돌릴 수 있는 비수기 시즌으로 돌입한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각 손님들의 위탁 작품들과 낙찰 작품들의 입출고를 진행하거나 경매에 사용한 경비를 정산하는 등의 잡무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비수기 시즌에는 내가 좋아하는 아침 커피 시간을 철저히 사수할 수 있다. 오히려 경매를 준비하느라 맞이하지 못한 아침 커피 시간을 보상 받고자 더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려고 한다.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비수기 시즌이다. 오늘 아침에는 혼자 커피를 내리며 잠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가졌다. 몇 주 전 우리 팀에서 진행했던 경매를 성황리에 마무리했으며, 역대 최대의 낙찰 총액을 달성한 덕분에 회사 직원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마감할 수 있어서 나름대로 보람 있었다. 이 기쁨이 가실 무렵인, 바로 며칠 전 또 다른 커다란 경매를 곧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슬픈 이야기를 팀장님으로부터 전해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성과급 이야기를 전달하는 팀장님. 우리팀 팀장님과 일한지도 4년이 되어가는데, 팀원들 다루는 것에 점점 더 노련해지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되었건, 나의 비수기 시즌이 줄어들고 있는 사실이 다만 조금 슬프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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