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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뒷간 May 10. 2021

스페셜리스트?
어쩌면 우린 제너럴리스트

장윤나

스페셜리스트라 하면 미술품 경매 회사에 몸담아 일하는 사람을 두고 일컫는 명칭이다. 쉽게 말하자면,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일을 돕는 아트딜러라는 큰 범주 안에 갤러리에 속한 사람들을 갤러리스트, 경매 회사에 속한다면 스페셜리스트라는 직함이 일반이다. 때론 옥셔니어Auctioneer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이로 한정한다. 흔히 이런 직군은 고상한 일만 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자주는 아니지만, 미디어에 비치는 미술계 사람들을 떠올리면 너나 할 것 없이 깔끔한 검은 정장을 갖춰 입고 고급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여러 사조와 조금은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앞에 걸린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이미지로 묘사된다. 하지만 예상외로 경매라는 이벤트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평소엔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비교적 힘을 뺀? 차림이다. 또한, 갑작스럽고 새로운 일들은 매일 넘쳐나며, 내 연차에서는 생각보다 궂은일들도 업무의 큰 부분을 이룬다. (*참고로 필자는 이전 글에도 밝혔듯 현재 만 3년 차다) 궂은일이라면 물리적인 체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들인데, 경매를 하나 완성하기까지 평균 200점이 넘는 작품들을 출품할 대상작으로 검토할 때마다 매번 발생한다. 이러한 작품을 직접 조심스럽게 핸들링해서 실물 확인을 하고, 작품 감정, 촬영 보조, 재질 파악, 사이즈 실측, 컨디션 체크, 전시장 디피까지 하다 보면 작품 한 점을 들고 나르기를 수십, 수백 번이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 고가인 것들이다 보니 작품을 옮길 때마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숨을 고르고 단전에 힘을 딱! 줘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작품을 직접 보고 파악한 자료들을 정리해 캡션 정보를 만들고 작품 하나하나의 전시와 소장이력Provenance을 확인한다. 이처럼 미술품 경매팀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담당하는 직무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경매를 준비하는 제반 업무부터 미술 시장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시세 파악, 미술사적 지식을 기반으로 작품을 해석해 이해하기 쉬운 글과 말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작품을 손님께 위탁을 받아오거나 판매를 하는 세일즈까지도 수행한다. 이 밖에 크고 작은 업무들도 많지만 하나하나 나열하기엔 무리가 있어 생략한다. 스페셜리스트라는 직함은 한 분야에 대해 깊이 있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자를 뜻하지만, 다양한 업무를 하는 만큼 일에 대해 알아갈수록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각 업무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빠르게 습득해야 하고, 생각지 못한 변수가 언제든 생길 수 있기에 상황에 맞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을 하면서 생각보다 “나는 스페셜리스트요”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외부 업체의 미팅에서나 손님께는 ‘선임’이라는 직위로 자기소개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하나 자신을 스페셜리스트라 할 때가 있는데, 바로 제로베이스 경매에서다. 제로베이스는 기존의 미술 경매 시장에서 다루지 않은 작가들과 함께해 새롭게 이들을 소개하는 경매다. 제로베이스 경매의 도록에는 이른바 ‘스페셜리스트 장윤나’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걸어두고 10줄 내외의 원고를 작성하게 되는데, 내가 이 작가를 왜 섭외했는지, 그리고 어떤 작업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작가 한 사람을 경매 시장에 처음 내보일 때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부담감에 더해 벌써 여러 회차의 경매를 진행했지만 작가에 대해 잘 소개를 해야겠다는 의무 의식 때문인지 매번 글이 쉽게 쓰이진 않는다.


사실 아직까지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기엔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처음 입사하고 난 후 스페셜리스트라고 자신 있게 박힌 명함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민망함과 쑥스러움을 느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무엇에 대한 전문가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도 꽤 부끄럽다. 작품 별 시장 가격에 대한 분석과 파악, 미술사와 작가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작품의 재료에 대한 다양한 특성들을 꿰고 있는 것, 좋은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손님께 소개해드리는 일 등. 어쩌면 제너럴 하게 모든 걸 골고루 깊게 알고 있을 때 비로소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자신할 수 있을 때까지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일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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